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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신냉전이 아니라 강대국 중심의 ‘각자도생’이다 [책&생각]

등록 2023-09-22 05:00수정 2023-09-22 09:14

현대 중국, 세계체계 연구해온 사회학자 백승욱
신냉전 아닌 얄타체제 중심으로 국제질서 탐구
“대안적 세계 질서 없는, 체계의 혼돈이 문제”
사회학자 백승욱은 오늘날 국제질서의 위기를 ‘신냉전’이 아니라 ‘얄타체제의 해체’로 풀이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사회학자 백승욱은 오늘날 국제질서의 위기를 ‘신냉전’이 아니라 ‘얄타체제의 해체’로 풀이한다. 클립아트코리아

연결된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한반도 핵위기까지, 얄타체제의 해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백승욱 지음 l 생각의힘 l 2만2000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신냉전’이란 말로 풀이되곤 한다. 미국의 단극체제가 러시아, 중국 같은 경쟁자들의 도전에 직면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일정 부분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의문도 뒤따른다. 냉전과 같은 양극의 갈등이라 한다면, 과거 ‘자본주의 대 사회주의’처럼 오늘날에도 그런 갈등의 축이 되는 체제와 이념 같은 게 과연 있는가?

현대 중국과 세계체계 등을 연구해온 사회학자 백승욱(중앙대 교수)은 ‘연결된 위기’에서 오늘날 국제질서의 변화를 신냉전이 아닌 ‘얄타체제의 해체’로 풀이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중국의 대만 무력점령 위협 및 북한의 핵도발 위협과 연결되어 함께 진행될 것”이라는, ‘연결된 위기’에 대한 예측이 출발점이 됐다. 지은이는 ‘분석의 부재와 의지의 과잉’에 빠지지 않기 위한 ‘이론적 비관주의’를 내세우며, 두 가지 방향의 ‘의지의 과잉’을 지적한다. “한편에서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가치동맹’을 중심으로 끌고 가면서 이를 오래된 ‘반공동맹’의 확장으로 해석하고 그 틀을 그대로 국내 정치에 끌어들이려고 시도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그 거울상으로서, 이 ‘가치동맹’의 국제적 위협을 사회주의 세계에 대한 제국주의적 위협으로 해석하면서 또 다른 반대쪽의 가치동맹을 형성하고자 하는 오래된 시도가 새롭게 힘을 얻고 있다.”

핵심 주장은 현재의 국제정세가 “미국 헤게모니 쇠퇴의 장기적 과정으로서 얄타체제의 해체”라는 것이다. 1945년 2월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은 나치 독일의 2차대전 패전 이후를 논의하기 위해 얄타에서 회담을 했고, 이는 미-소 대립의 ‘냉전시대를 연 서막’으로 평가받아왔다. 그러나 지은이는 루스벨트가 주도하고 스탈린이 협조했던 ‘얄타구상’은 애초 “단일 세계주의”를 목표로 삼고 있었다는 점을 부각한다. “루스벨트는 전후 질서의 핵심을 탈식민체제로 상정하고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강대국 합의에 의한 전쟁 억제 기제가 작동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유엔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라는 방안이 나왔고, 그 실현을 위해서 소련이 필수적인 파트너가 된다.”

1945년 얄타회담의 주역들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맨 왼쪽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의 모습. 얄타체제는 냉전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의 구상은 미국·영국·소련·중국이 ‘네 경찰국’으로 기능하는 ‘단일 세계주의’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1945년 얄타회담의 주역들인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맨 왼쪽부터),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서기장의 모습. 얄타체제는 냉전의 시작점으로 알려져 있으나, 애초의 구상은 미국·영국·소련·중국이 ‘네 경찰국’으로 기능하는 ‘단일 세계주의’였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얄타구상은 19세기의 한계(고전적 자유주의와 제국주의)를 넘어, 강대국이 관리하는 안정적 국제질서 아래 탈식민 독립국가들이 국민경제 단위로 발전주의를 구가하고 이를 완전히 개방된 세계시장으로 품는다는, 이를테면 ‘뉴딜적’ 구상이었다는 주장이다. 당시 소련은 자본주의 세계와 분리된 독자적 세계를 구성하겠다는 의도가 없었고, 오히려 이 새로운 국가 간 체계의 일익을 담당해 강대국으로 인정받고자 했다고 본다. “단일한 세계 내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경쟁”한다는, “소련식 사회주의와 미국식 뉴딜의 길 사이에 모종의 절충적 합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다만 루스벨트 사후(1945년 4월) 해리 트루먼이 두 개의 진영을 분리하는 ‘자유세계주의’(두 세계주의)를 추진하고, 한국전쟁 등 복잡한 굴절들을 겪으며 얄타구상은 원래 궤도에서 이탈해 결국 냉전체제를 공고화하는 ‘얄타체제’로 귀결됐다.

유엔 안보리를 통해 강대국들이 서로 전쟁과 영토 확장을 억제하고 그 아래 신생 독립국들이 ‘발전’하는 등 얄타구상의 기본 틀 자체는 20세기 국제질서로 정착됐다. 그러나 “냉전의 공고화 이후 체제로서의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별도의 이질적인 지향으로 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사회주의는 자본주의 세계 또는 20세기적으로 전환한 자유주의 제도들과 교류-논쟁점을 상실하였다.” 그 결과 “많은 도전이 순차적으로 진압되어갔고 마침내 신자유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핵심 문제는 사회주의 같은 대안이 없는 가운데 신자유주의가 ‘내부로부터 붕괴’하고 있다는 사실로, 지은이는 이것이 오늘날 위기의 본질이라 지적한다. 미국은 축적의 위기를 돌파하고 자신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 전세계를 금융으로 통합(원심력)시켰는데, 이 신자유주의는 그간 얄타체제 아래 개별 국가들이 추구해온 국민경제 단위의 발전주의를 희생하게 만들었다. 개별 국가는 이에 대응해 통치의 자율성(구심력)을 확보하려 하는데, 사회 해체와 양극화, 정치의 위기 아래 포퓰리즘·권위주의 대두 등 대체로 “국가 통제의 강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기적 환상이 고조”된다.

2020년 10월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대회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 ‘항미원조’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2020년 10월23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참전 70주년 기념대회 참석을 위해 입장하고 있다. 시진핑 시대에 ‘항미원조’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고 있다. 베이징/EPA 연합뉴스

지은이는 이 같은 얄타체제의 해체가 더 나은 세계질서를 담보하지 않는 ‘공위기’라서 문제라고 지적한다. ‘자유주의의 내파’이기 때문에 어떤 체제·이념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그저 강대국들을 중심으로 한 ‘각자도생’으로 귀결될 것이란 주장이다. 그러나 신냉전이란 인식은 ‘수구적 냉전세력’과 ‘탈냉전 저항세력’ 사이의 허구적인 대립만 상상하게 함으로써 사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가로막는다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그에 ‘연결된 위기’인 중국의 대만 침공이나 북한의 핵도발 위험 등은 ‘사회주의 반미동맹’ 같은 대안적인 체제의 출발이 아닌, “강대국들이 영토 유지를 위해 내세우는 확장된 ‘내정’의 논리”로 봐야 한다고도 주장한다.

세계체계론에 기댄 지은이의 분석은 새롭고 도발적이지만, ‘과도한 단순화’라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 지은이는 전후 세계질서가 사실상 거대한 자유주의적 기획 아래에 형성되었고 소련·중국 등 사회주의권도 여기에 ‘올라타는’ 방식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자유주의를 지나치게 광범하게 설정한 뒤 다채롭고 복합적인 역사적 경로들을 모두 그 아래 몰아넣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자유주의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는 ‘선택지’를 폭 좁게 제한하기도 한다. 동아시아로 ‘연결된 위기’ 속에서 우리의 대응 선택지를 중국, 북한, 한-미 동맹 세 가지로 제한한 뒤, ‘일본과의 공조를 강화해 중·미를 압박’하는 방안을 우선시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지은이의 말처럼 ‘대란대치’(大亂大治)가 대안이 될 순 없다. 다만 그에 대한 두려움이 기존의 체계를 유지시키고 강화하는 작용과 효과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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