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독일 아나키즘 선구자
슈티르너의 문제적 저작 우리말로
유일자란 고유한 존재인 나 자신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국가·신 거부
슈티르너의 문제적 저작 우리말로
유일자란 고유한 존재인 나 자신
개인 위에 군림하는 국가·신 거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그린 청년헤겔파 그림 ‘자유인’.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이 막스 슈티르너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막스 슈티르너 지음, 박홍규 옮김 l 아카넷 l 3만3000원 아나키즘은 19세기에 급진적 혁명운동의 주도권을 놓고 마르크스주의와 맹렬히 다투었다. 그 아나키즘 운동의 선구자 가운데 한 사람이 독일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1806~1856)다. 슈티르너는 자신의 아나키즘 사상을 한 권의 저작에 집약했는데, ‘유일자와 그의 소유’가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은 주장의 극단성과 과격성 탓에 오랫동안 외면받다가 근년에 다시 주목을 끌고 있다. 슈티르너의 이름과 등치되는 이 저작이 아나키즘 사상을 소개해온 박홍규 영남대 명예교수의 손으로 번역됐다. 지난 2월 먼저 출간된 슈티르너 전공자 박종성 건국대 교수의 번역본과 비교해 읽어볼 만하다. 슈티르너의 일생은 불운의 연속이었다. 플루트 제작자였던 아버지는 슈티르너가 한 살 때 병사했고, 어머니는 뒤에 정신병에 걸려 아들에게 큰 짐이 됐다. 스무 살 슈티르너는 베를린대학에 들어갔지만 결핵으로 중도에 학업을 중단했고 8년여 만에야 대학 과정을 겨우 마쳤다. 두 번의 결혼도 행복한 삶을 열어주지 못했다. 첫 부인은 아이를 낳던 중 세상을 떠났고, 두 번째 부인도 불화 끝에 3년 만에 떠났다. 이후 슈티르너는 생계를 꾸리려 이런저런 일에 손을 댔으나 모두 실패하고 빚쟁이가 돼 두 번이나 감옥살이를 한 끝에 쉰에 삶을 마쳤다. 슈티르너의 불운한 삶에 잠깐 빛이 든 때가 있었는데, 1839년부터 1844년까지 베를린의 사립 여학교 교사로 있던 시절이었다. 1842년부터 슈티르너는 ‘청년헤겔파’ 사람들과 어울렸다. ‘자유인’이라는 이름의 급진주의자 모임이었는데, 맥주홀에서 열린 그 모임에는 슈티르너보다 먼저 마르크스가 참여했고, 마르크스가 떠난 뒤 엥겔스가 동참했다. 엥겔스는 슈티르너를 침묵 속에 시끄러운 논쟁을 지켜보는 인물로 묘사한 그림을 남기기도 했다. 그 시절 슈티르너가 청년헤겔파의 토론을 들으며 써 내려간 책이 바로 ‘유일자와 그의 소유’(1844)다. 엥겔스는 처음에 슈티르너 책을 읽고 그 주장에 동조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마르크스와 함께 슈티르너에 대한 강력한 반대자가 됐다. 두 사람은 ‘독일 이데올로기’(1845~1846)에서 책의 절반에 해당하는 방대한 분량을 슈티르너 주장을 비판하는 데 바쳤다. 슈티르너의 사상이 그만큼 강력했다는 방증이다. 슈티르너의 책은 30년 뒤 젊은 프리드리히 니체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바젤대학 교수이던 니체는 그 책을 읽고 난 뒤 “홉스 이후로 가장 용감하고 철두철미한 책”이라고 평가했다. 국가와 종교를 단호하게 거부하고 ‘유일자’를 내세우는 슈티르너에게서 동질감을 느꼈던 것이다. 슈티르너가 주장한 유일자가 뒷날 니체 사상 속에서 변모해 초인(위버멘슈)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도 있다. 슈티르너가 말하는 유일자(der Einzige)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자’라는 뜻이다. ‘나’ 곧 에고가 슈티르너의 유일자다. 다른 무엇도,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나’의 존재다. 머리말에서 슈티르너는 말한다. “나에게는 나를 넘어서는 그 어떤 것도 없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는 한 편의 기나긴 에고이즘 선언문이다. 이때의 에고이즘은 자아중심주의 혹은 자기중심주의를 뜻한다. 또 책 제목이 말하는 ‘소유’(Eigentum)란 당대 부르주아의 사적 소유, 곧 재산 소유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고유한 것’, 다시 말해 자유‧생명‧주권 같은 본질적인 것을 가리킨다. 어떤 외부의 힘도 나의 자유, 나의 생명, 나의 주권을 침탈할 수 없다는 선언인 셈이다.
‘유일자와 그의 소유’를 쓴 독일 철학자 막스 슈티르너.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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