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이상문학상 최진영 신작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최진영 작가가 새 장편 ‘단 한 사람’을 내놓았다. 10년여 천착한 질문을 더 많은 질문으로 풀었다.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최진영 지음 l 한겨레출판 l 1만5000원 소설가 최진영에게 ‘위로’는 소설의 이음동의어 같다. ‘소설을 쓴다’ 하고 ‘위로를 쓴다’ 되뇌는 격이다. 여러 작품 속 그것이 최진영이 믿는 ‘어른’의 자세요, 몫이다. 사건 뒤 죽음만 생각했던 제야 곁에서 엄마친구 강릉 이모는 말한다. “사람은 노력해야 해. 소중한 존재에 대해서는 특히 더 그래야 해”(장편 ‘이제야 언니에게’). 조카(와 상대들) 입장을 헤아려보려는 중 마흔살 고모는 생각한다. “나는 여전히 어른스러운 게 뭔지 잘 모르고, 모르니까 긴장했다.”(단편 ‘유진’) 위로는 대상의 상태와 감정을 감각하여 슬픔을 더는 행위다. 연결짓는 일이고, 하여 누군가의 ‘오늘’을 살아가게 하는 일이다. 작가가 고백해온바, 자기비하와 자기부정을 오래도록 버텨내며 “아무도 찾지 않길 바라면서 누구라도 찾아와 주길 바랐”던 과거 자신(의 마음)이 그 연결의 매개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신작 ‘단 한 사람’은 의도되었든 의도되지 않았든 독자들에게 각기 다른 잔향과 의문을 남길 것이다. 혹여 누군가는 주춤할지도 모른다. ‘단 한 사람’은 위로가 되는 답보다 질문에 치중하고, 무엇보다 유한한 인간의 말이 아니라 무한한 생명, 유구한 존재의 말을 들으려 하고 있다. 위로의 말 걸기도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한다는 작가의 말대로라면, 또 다른 위로를 쓴다는 건 없던 질문을 고통스럽게 던져야 하는 일이겠다. 작은 새가 떨어뜨린 씨앗에서 발아한 어린나무 둘의 뿌리가 닿고, 수천년 연리지 한 그루로 감당하는 죽음과 삶을 흡사 신약성서의 마태복음 1장처럼 조망하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나무는 거대한 태풍 뒤 자라길 멈춰 죽은 듯 살기로 하다, 달콤한 햇볕에 유혹되어 토하듯 잎과 꽃을 틔우다, 인간에 의해 파괴적 죽음을 경험하다, 그 인간들을 살리기도 한다. 이어 신복일과 장미수의 가족이 등장한다. 다섯 아이를 낳았는데 일화 월화 금화 목화 목수라 이른다. 금화가 나무에 깔려 죽은 듯 사라지고, 언니를 살리지 못했다 자책하는 목화에게 곧 모계로 이어지는 기이한 운명이 주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열여섯살이 되자 예지몽처럼 숱한 사람들의 임박한 죽음을 꿈에서 목도하되 오직 한 사람만을 살리게 되는 일이다. 외할머니 임천자는 “수십 명 중 한 명”이란 생각 대신 “오십 대 오십” 즉 “한 사람을 살리느냐 죽게 두느냐의 문제”라며 제 운명을 수긍해 왔다. 엄마 장미수는 “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죽도록 내버려두는 존재”가 내린 ‘벌’로 여겨 삶을 비관하고 경멸한다. 과연 신과 믿음이 있다면, 임천자에게 그것은 “두려움”과 “기적”이요, 장미수에겐 “전능에 도취한” “악마”다. 이를 따르지 않을 때의 고통은 온전히 이 여인들 몫이다. 열여섯 목화는 자신에게 과업을 맡긴 주체가 “둘이었다가 하나가 된 나무. 부활한 나무. 시간을 초월한 생명. 무성한 생에서 나뭇잎 한 장만큼의 시간을 떼어 죽어가는 인간을 되살리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삶에 대한 낙관도, 죽음에 대한 비관도 아닌, 판단중지(에포케)로서 새로운 유형의 연결자(‘중개인’)가 되고자 한다. “세계 중심의 작은 나무, 그 나무가 뿜어내는 깊은 감정, 나무를 호위하는 숲, 숲을 움켜쥐고 있는 거대한 뿌리”라는 거대한 현상적 본질을 깨우쳐가며 제 역할을 받아들인다. 바로 “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이다. 이는 삶의 행색이나 가치에 대한 판단조차 중지해야 가능하다. 소방관과 아이 대신 방화범을 살리고, 일가족 중 단 하나만을 살리고, 살린 20대가 다시 시도하는 자살을 보면서도 말이다. 세월호가 가라앉는 동안 임천자, 장미수, 신목화 누구도 불려가지 않았던 사실을 복기하면서도 말이다. 불려간들 ‘겨우 세명 더’로 무너졌을 텐데도 말이다. 질문은 의문을 낳고, 의문은 허무를 낳지만, 허무가 비관만 가져오진 않는다. 마치 미지의 사랑이 지닌 속성과 같다. 소설 속 대목이다.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이 사랑은 환희인가, 환란인가. 시작하여 끝나기 전까진 알 수 없다. 해서 최진영은, 목화는, 또 다른 과업을 이제 막 물려받은 조카 루나는 낙관하는가 비관하는가 물을 필요가 없겠다. 독자들의 해석은, 최진영 장편 특유의 ‘환상적 사실주의’의 서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단 한 사람’으로 감당 중인 삶의 무게, 죽음과의 거리 감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023년 이상문학상 대상을 받은 작가의 단편 ‘홈 스위트 홈’에서 항암치료를 거부하는 주인공은 말한다. “나는 선택하고 싶었다. 나의 미래를. 나의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아닌 살아 있다는 감각에 충실하고 싶었다.” 체념도 허무도 비극도 냉소도 ‘오늘’의 몫은 아니고, 그 오늘이 산 사람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의 오늘을 위로하는 ‘단 한 사람’이 또한 당신이다. 최진영이 ‘단 한 사람’에서 새로 쓴 위로의 모양이다.
후기 위로의 소설가 “죽음에 이렇게 몰두해본 적 없다”
작가 최진영이 “10여년간 붙들고 지낸 질문”을 더 많은 질문으로 던져낸 것이 이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는 21일 한겨레에 “이번 소설에서만큼 죽음이란 주제에 몰두해본 적이 없어 힘들었다”며 “죽음을 그만큼 더 보았고, 더 가까워졌으며 특히 있을 수 없는 사회적 참사들을 보아야 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막 받아보았다는 책이 지난 고통을 상기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기존 작품들에 견줘, 작가의 품은 가장 넓어졌다 해야겠다. 그간 최진영의 태도는 비교적 선명했다. 성폭행을 당했던 제야(‘이제야 언니에게’)처럼 주인공들의 슬픔, 고통이 선명한 탓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조금 물러선 것 같다. 살아 있는 사람들 한 존재로서의 고통을 생각했다”고 말한다.
물러서기까지, 또 이 소설을 계약하고 완성하기까지 10년가량이 흘렀다. 흔한 일인가 묻자 작가는 웃어버렸다. 그때의 최진영과 지금의 최진영은 같은 작가가 아니다. “한 편의 소설을 쓰고 나면 쓰기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된다”는 작가의 고백대로라면, 변화의 마법은 하루 단위 시나브로 전개되는 것이리라. 단 한 사람의 오늘 단 하루들이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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