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가 1651년 펴낸 책 ‘리바이어던’의 표지. 홉스는 이 책을 통해 근대국가의 주요 이미지를 정초했다. 출처 위키미디어 코먼스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이야기를 최근 자주 듣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의 정치 이론을 논한 조엘 웨인라이트·제프 만의 ‘기후 리바이어던’(앨피), 벨기에 출신 기술철학자 마크 코켈버그의 ‘그린 리바이어던’(씨아이알)이 국내 출간됐습니다. 최근 방한한 영국 정치학자 존 던은 칸트가 아닌 홉스의 ‘평화’ 개념을 강조하더군요. 허물어지는 국제질서, 기후위기·인공지능의 위협 등 혼란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전쟁’ 상황에 빠져들지 않도록 우리를 제어할 정치공동체에 대한 상상이 새삼 절실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겠죠.
‘기후 리바이어던’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정치적 경로를, 주권과 자본에 대한 태도를 기준으로 삼아 네 가지로 가릅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행성적 차원의 주권을 조직해 대응하는 한편 자본주의 체제를 지키려는 경로는 ‘기후 리바이어던’, 전지구적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지만 비자본주의적·권위주의적 경로는 ‘기후 마오’, 자본주의에 매달리지만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이 없는 경로는 ‘기후 베헤못’ 등입니다. 리바이어던, 베헤못, 마오 같은 이름들만 봐도 어떤 체제인지 감이 온달까요.
다만 마지막 경로의 이름에는 별다른 표상이 없습니다. 경제구조 측면에서 ‘자본주의’, 정치구조 측면에서 ‘국가’ 등 오래되고 익숙한 길을 거부하는, 아직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라서 ‘엑스’(X)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혼란이 커질수록, 오래되고 익숙한 길은 미래를 더듬어나가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다만 그 대척점에 항상 ‘엑스’를 남겨놓는 일의 중요성도 함께 새겨봅니다.
최원형 책지성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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