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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왜곡된 ‘공정’에 짓눌린 ‘공존’의 상상력을 찾아서 [책&생각]

등록 2023-09-22 05:01수정 2023-09-22 09:34

청소노동자 집회에 ‘수업권 침해’ 등
‘에브리타임’에 번진 혐오·반지성주의
‘사회문제와 공정’ 강의를 계기로
청년 세대의 공정담론 두루 톺아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공정감각
‘에브리타임’에서 썰리고 퇴출당하며 벼려낸 청년들의 시대 감각
나임윤경·허가영·최유정·은현·우무·온정·오디·안즈·신현·사바나히나·데어·김지윤·김세명·김민재 지음 l 문예출판사 l 1만8500원

공정(公正), ‘공평하고 올바름’이라는 뜻이니 이보다 더 좋은 상태, 상황 혹은 과정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누가’ 주창하느냐에 따라, ‘어떤’ 공정을 내세우느냐에 따라 공정의 사전적 정의는 빛을 잃고 만다. 나임윤경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와 ‘사회문제와 공정’ 강의를 수강한 13명의 학생들이 함께 쓴 ‘공정감각’은 우리 시대의 공정에 대한 감각과 향방을 묻는 책이다.

2022년 5월, 한 학생이 청소노동자들의 집회 소음이 “수업권을 침해한다며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고, 6월에는 두 명이 더 가세해 손해배상도 청구했다. 온라인 대학교 커뮤니티 플랫폼 ‘에브리타임’에는 비판 글도 적지 않았지만, 이들을 지지하는 온갖 글들과 함께 가짜 뉴스가 도배되었다. 지은이들이 보기에 397개 대학, 658만여 명이 가입해 있는 에브리타임은 “조롱과 멸시, 혐오가 영향력을 발휘하는, 반지성주의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곳”이다. 글다운 글은 삭제되고 “청소노동자, 여성, 지방대, 분교, 장애인, 성소수자, 비건 등에 대한” 도를 넘은 공격이 “일종의 ‘놀이’ 형태로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글이 “자꾸 삭제되니 책으로 만들어버리자”는 결기가 모여 ‘공정감각’이 탄생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주로 다룬 신현은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일부 영세한 일터”에서나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한국의 사학 ‘명문’이라는 연세대학교에서도 버젓이 일어나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당연한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은 “최고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우리의 현실적 미래”라는 게 글쓴이의 일관된 주장이다. 한편 은현은 여성혐오가 “여성 개인에게 미친 영향이 이후로 여성 집단 전체에 폭력 피해에 대한 공포, 안전하지 않다는 감각 등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기는 것까지 함축하는 개념”이라고 명토 박는다. 밤길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현실, 외모에 대한 평가와 차별 등은 결국 여성혐오가 야기한 징후적 사실들이다.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연세대를 피고로 빨간딱지에 이유를 적어 붙인 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연세대학교 학생들과 청소경비 노동자들이 지난해 7월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양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연세대가 청소경비 노동자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연세대를 피고로 빨간딱지에 이유를 적어 붙인 뒤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020년 11월25개 청년, 인권,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익명의 악플이 만든 대학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에브리타임과 대학은 학내 사이버불링, 혐오표현 방치 중단하라'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2020년 11월25개 청년, 인권,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익명의 악플이 만든 대학생 사망사건과 관련해 ‘에브리타임과 대학은 학내 사이버불링, 혐오표현 방치 중단하라'라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종근 선임기자 root2@hani.co.kr

코로나 기간 동안 사회복무를 한 김민재는 그 경험을 통해 “정책이나 복지 서비스가 말하는 ‘효율’과 ‘방역 지침’ 앞에서 장애인의 이동권과 의사소통할 권리는 무력했다”고 토로한다. 특히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알려진 “셔틀버스와 콜택시는 각각 일방적으로 운행을 멈췄고, 툭하면 호출이 취소”되곤 했다. 중요한 것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대부분 사회복지사의 입을 거쳐야 전달될 수” 있는데, 그마저도 “담당 사회복지사의 업무 편의나 퇴근 시간 등의 자의적 기준에 따라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덧붙이는 문장이 마음을 후빈다. “다른 이들의 손에 자신의 권리가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장애인은 어떻게 ‘문명적으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가.”

나임윤경 교수의 말마따나 한국은 지금 “배부르지만 ‘공존 상상력’은 빈곤한 후진적” 사회로 퇴화했다. 공정에 대한 감각이 저마다 다르고, 더하여 각자도생하며 삶을 견디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임윤경 교수는 미래를 낙관한다. ‘사회문제와 공정’을 함께했던 학생들은 물론 “한 사회의 심장”인 20대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임 교수는 희망을 건다. 그 희망이 유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공정의 참된 의미를 다시금 되찾아야 한다.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사무처장,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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