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6년께 피아노 앞에 앉아 있는 라흐마니노프의 모습. 위키미디어 코먼스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 포노(PHONO) | 2만2000원 “진정한 영감은 내면에서 일어나야 한다. 내면에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다면 외부에서 그 어떤 자극이 주어져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1928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세르게이 바실리예비치 라흐마니노프가 남긴 글은 예술가의 고독한 환희를 설명하는 듯하다. 1873년 러시아 제국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1917년 러시아 혁명 이전까지 러시아에서 많은 곡을 썼지만 혁명 이후 유럽으로 피신해야 했다. 다시 유럽을 집어삼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에 정착한 뒤 194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에서 영면했다. 그는 자신을 “낯설어진 세계를 떠도는 유령” 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예술을 갈망하는 영감만이 그의 내면을 가득 채웠다. 이 책은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라흐마니노프의 국내 유일한 평전이다. 그는 2022년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국제콩쿠르 결선에서 연주했고 1997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음악영화 ‘샤인’에서 흘러나온 ‘피아노협주곡 제3번’ 등 유명 교향곡·협주곡 수십곡을 만든 작곡가이자 연주가·지휘자다. 음악 전문 출판사 포노가 2010년부터 만들어 온 ‘우리가 사랑하는 음악가’ 시리즈 17번째 주인공이다. 출판사는 출간 13년 만에 시리즈의 판형과 편집 디자인 등을 전면 개정했다. 이 책은 라흐마니노프 주변 사람들의 기록과 인터뷰를 통해 위대한 작곡가의 삶을 다각적으로 접근하고 입체적으로 묘사하는 점이 매력 있다. 그의 곡에는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이 대안적 형태의 지식과 표현을 추구한 20세기 초의 낭만과 찬란함이 스며들어 있다. 다만 문명이 충돌하고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시기에 개인의 삶은 외부의 자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청년 시절 ‘음악을 하지 않았다면 아무도 내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라고 우울하게 말했던 그에게 음악은 열정과 외로움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거울이었다. 그의 팬이자 친구며 뮤즈인 마리예타 샤기냔과 주고받은 여러 장의 편지에는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지만, 고향과 멀어진 라흐마니노프의 두려움과 심리적 고뇌가 담겨 있다. 임신 8개월이던 딸이 남편을 잃자 딸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악보와 러시아어로 된 책을 출판하는 출판사를 설립하기도 한 부정(父情)도 확인할 수 있다. 저자는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자기 자리를 찾으려 분투했다는 면에서 전형적인 현대의 산물”이라고 그를 소개한다. 턱을 괴고 정면을 응시한 눈빛이 인상적인 표지 사진 속 그는 어떤 내일을 기다렸을까.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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