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연결·관계 부각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희생되는 소리 다양성
‘윤리의 뿌리’이자 정보인 야생의 소리 되찾아야
인간의 필요와 욕구에 희생되는 소리 다양성
‘윤리의 뿌리’이자 정보인 야생의 소리 되찾아야
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경이로운 소리들, 진화의 창조성, 감각의 멸종 위기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지음, 노승영 옮김 l 에이도스 l 3만3000원 45억 년 역사를 지닌 지구 표면에 처음으로 동물의 소리가 울려 퍼진 것은 2억7000만 년 전이었다. 프랑스 중남부 고원 지역에서 화석으로 발견된 고대 귀뚜라미 페르모스트리둘루스는 바람 소리와 물소리, 천둥소리 말고는 고요하기만 했던 육상 세계에 생명의 소리의 출현을 알렸다. 꽃식물이 번성하면서 곤충의 다양성이 급속히 증가했고, “이 번성은 지구의 소리를 바꿨다.” 그러므로 여치와 메뚜기, 매미 등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곤충에 의해 소리로 전환된 식물의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소리를 매개로 식물과 곤충, 인간이 연결되는 것이다. 숲에서 우주를 보고 나무의 노래를 들었던 과학자가 이번에는 야생의 소리를 찾아 나섰다. ‘숲에서 우주를 보다’와 ‘나무의 노래’ 두 책으로 한국에도 많은 독자를 지닌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의 신작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 이야기다. 원제가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Sounds Wild and Broken)인 이 책에서 해스컬은 소리를 매개로 인간과 자연의 연결 및 관계에 관한 통찰을 펼친다. “모든 생명은 연결과 관계로 이루어졌”는데, 야생의 부서진 소리들은 인류가 직면한 감각의 위기를 대표한다는 것, “윤리의 뿌리가 되고 방향을 알려주는 정보와 감각”으로서 야생의 소리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듣기의 출발은 세포막의 작고 꼬불꼬불한 털 섬모로 거슬러 올라간다. 섬모는 “세포 밖의 움직임을 세포 내부의 화학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생명이 음파를 지각하는 토대가 되었다.” 인간의 속귀에 있는 1만5000개의 소리 감지 세포 하나하나에도 작은 털 다발이 난 섬모가 왕관처럼 덮여 있다. 인간의 듣기에도 섬모가 동원되는 것이다. 인간의 귓속 고리관은 체액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것은 “물속에 사는 먼 친척과의 (…) 감각 경험의 동일성”을 알려준다. “공기 중에서 말하고 육지에서 걷고 숨 쉬면서도 물이 담긴 귓속 고리관에서 떨리는 털세포를 통해 바다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인간은 물고기와 닮았다. 독일 남부의 빙기(氷期) 동굴에서는 4만 년 전 새 뼈와 매머드 엄니로 만든 피리가 발견되었다. 악기의 탄생이었다. 악기의 소재와 제작 방식, 연주법은 자연에 기반한 것이었고, 음악은 인간이 바깥 세계와 맺는 관계를 보여주었다. 음악은 “여러 형태의 인류 문화뿐 아니라 바위, 흙, 살아 있는 존재의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성질을 나타낸다.” 음악적 아름다움을 경험하며 우리는 생명 공동체의 그물망 속으로 다시 엮여 들어간다.
인간이 전 세계 바다에서 일으키는 소음은 고래를 비롯한 수중 생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음악을 비롯한 미적 경험은 우리가 더 큰 생명과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주지만, 인간의 필요와 욕구는 야생의 소리를 부수는 쪽으로 발현되어왔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의 생물학자 데이비드 조지 해스컬. ‘야생의 치유하는 소리’는 ‘숲에서 우주를 보다’, ‘나무의 노래’ 등으로 “미국 최고의 자연작가”라는 평가를 받아온 그의 새 책이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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