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이미지뱅크, 그래픽 장은영 soobin35@hani.co.kr
인류세, 엑소더스
기후격변이 몰고 올 전 지구적 생존 르포르타주
가이아 빈스 지음, 김명주 옮김 l 곰출판 l 2만2000원
기후변화는 점점 더 강하게 사람들을 내몰고, 내몰린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새로운 터전을 찾아 떠난다. 폭증하는 이민의 물결 뒤에 기후 위기가 있다. 온두라스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집단 이주민 행렬 ‘카라반’은, 중남미 지역의 만성적인 부패와 가난뿐 아니라 홍수와 가뭄이 반복되는 기후변화에 의해 촉발됐다. 아직 이주의 압력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저 ‘내 일이 아니’라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2100년까지 지구 온도가 4도가량 올라갈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나’의 이주도 예고된 현실과 다름없다. 운 좋게 북반구의 서늘하고 부유한 지역에서 태어났더라도, 이곳을 찾아올 최대 30억명이나 될 이주민들과 공생해야 할 현실까지 피할 순 없다.
‘네이처’와 ‘뉴사이언티스트’의 선임 편집자로 활동하고 있는 과학 작가 가이아 빈스는 지난해 펴낸 ‘인류세, 엑소더스’에서 “(앞으로 기후변화에 따라)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등 인구가 많은 대부분의 지역에 사람이 살 수 없는 벨트가 형성”될 것이라 예측했다. 다만 ‘기후 이주’ 또는 ‘기후 난민’ 문제를 기후변화에 뒤따르는 재앙이라 보는 시각과 달리, 지은이는 이주야말로 인류가 기후 위기를 극복할 거의 유일한 해법이라고 강조한다. 기후변화의 시계는 이미 되돌릴 수 없으므로, 전 지구적으로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대규모 이주로 미래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2020년 1월 오스트레일리아(호주) 빅토리아주 이스트깁스랜드에 있는 관광도시 오보스트 동쪽이 산불에 휩싸인 모습을 촬영한 위성사진. 로이터 연합뉴스
2020년 폭우로 물에 잠긴 도로를 힘겹게 지나가는 나이지리아 바옐사주 주민들. 10년 만의 최악의 홍수로 나이지리아에서 600명 이상이 숨지고, 130만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다. 연합뉴스
먼저 지은이는 여러 기후 모델 연구 결과들을 들어, 앞으로 8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3~4도 올라가는 미래는 불가피하다고 본다. 모든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2도 상승’을 피할 수 없으며, 손을 놓으면 ‘6도 상승’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류세의 네 기사’, 곧 화재·폭염·가뭄·홍수는 전 지구에 영향을 주겠지만, 특히 남반구와 열대 벨트 등 ‘기후 취약’ 지대에 집중되어 이 지역은 사람이 살아가기 힘든 곳이 된다. 예컨대 ‘4도 상승’이면 아프리카에서는 폭염에 노출되는 날이 100배 이상 증가하고, 전세계 해수면이 1센티미터 상승할 때마다 저지대 지역을 중심으로 17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한다. 유엔국제이주기구는 2050년까지 최대 15억명이 자신이 태어난 나라를 떠나야 할 것이라 추정한다. 다른 연구에서는 2070년까지 최대 30억명이 ‘기후 이주’를 해야 할 것으로 본다.
이들은 어디로 갈 것인가. 전 지구가 기후변화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내륙과 호수, 고지대, 북위도 지역이 적도와 해안, 작은 섬, 건조·사막 지역, 열대우림·삼림지대보다 더 안전하다. 인간 생산성에 최적인 기후는 11~15도라 하는데, 북위 45도선 북쪽 지역은 평균기온이 약 13도다. 그린란드, 러시아, 미국, 캐나다 등에선 얼음이 녹으며 드러난 새로운 땅에 농업이 가능해지고, 북극해 항로가 새로운 무역의 중심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이 지역에는 “효과적인 제도와 안정된 정부를 갖춘 부유한 나라들이 있다.”
기후변화와 함께 찾아올 또 하나의 중요한 미래는 인구 격변이다. 세계 인구는 2060년대에 100억명으로 정점에 달할 것인데, 기후변화로 타격을 입을 지역의 인구 증가가 두드러지는 반면 북위도 지역의 부유한 국가는 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을 전망이다. 그러니 대규모 이주는 전 지구적인 “전례 없는 협력”을 만들어낼 계기다. 특히 지은이는 이 새로운 공생이 도시를 중심으로 이뤄질 것이라며, “향후 80년 동안 인구 100만명 규모의 도시가 10일마다 하나씩 건설될 것”이라 내다본다.
곰출판 제공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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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 여부는 인류가 “정치적 지도와 지리적 위치를 분리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오늘날 인간은 자신이 태어난 곳에 소속된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이주민을 배척하는 “지정학적 정체성과 제약”에 빠져 있다. 국경을 높게 세우고 폭력까지 앞세워 이주민을 적대하고 배제·차별하는 행태가 여기에서 나온다. 그러나 지은이는 애초 인류는 ‘이주하는 종’으로 진화해왔음을, “협력 네트워크를 통해 자원을 교환하는 능력”이 이를 뒷받침해왔음을 역설한다. 현대 문명을 이룬 정주와 농업마저도, ‘이주하는 종’으로서 인간이 발전시켜온 ‘초사회적’ 특징에 기댄 것이다. “이주가 변칙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지금의 국가 정체성과 국경이야말로 변칙”이며, 이는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서로를 배척하는 거대한 사회적 불평등을 만들어냈다.
지은이는 이제껏 국민국가가 이뤄온 효용성을 활용하면서도, 그것을 최대한 포용적으로 ‘재창조’하는 길을 제시한다. 혈통이나 피부색, 출생지 등에 집착하는 ‘종족적 민족주의’ 대신 공동선에 기반한 ‘시민 민족주의’를 토대로 삼아 시민권의 근거를 국제사회 전체로 넓혀보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협력의 구조와 제도를 갖추고 있는 기존 국민국가들이 힘을 합쳐 “강제력을 갖춘 일종의 글로벌 거버넌스”를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제 시민권’ 개념을 중심으로 삼는 이 기구는 갈등·분쟁 대신 협력에 기대어 전 지구적 차원의 대규모 이주가 가능하도록 적극적인 ‘관리’에 앞장설 것이다. 이를 통해 거주 불가능해지는 지역의 국가가 거주 가능한 북반구 지역을 ‘전세’로 확보하는 일,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찾아 자유롭게 이동하게 해주는 일, 새로운 이주민 도시에 대한 투자와 평등한 분배를 이끄는 일, 장기적으로 기후변화를 멈추고 지구를 복원하는 일, 회복된 지역으로 사람들을 다시 이주시키는 일 등이 가능할 것이란 주장이다.
‘네이처’ 선임 편집자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과학 작가 가이아 빈스. 곰출판 제공
지은이는 이주할당제, 무국적자 여권, 전세 도시 등 구체적인 아이디어들로 자신의 과감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편, 풍력 펌프로 북극의 바다 얼음을 다시 얼린다거나 성층권에 황산염을 살포해 햇빛을 반사시키는 등 일각에서 ‘지구 공학’이라 비판받는 아이디어들까지 서슴없이 제시한다. ‘탈성장’류의 논의는 “청교도적 주장”이라며 냉담하게 차단한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다 해야 한다’는 태도다. ‘이미 시작된 현실’에 대한 절박함이 “미래를 통제해야 한다”는 도발로 이어졌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