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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우리가 먹고 마시는 초콜릿과 커피엔 눈물이 배어 있다 [책&생각]

등록 2023-12-01 05:01수정 2023-12-01 11:13

아동노동과 노예노동 만연
생산자 소외시키고 환경 파괴
기호식품 이면에 도사린 모순들

“조금 비싸더라도 공정무역으로!”
빈곤에 시달리는 서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 팔려온 어린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빈곤에 시달리는 서아프리카 나라들에서 코트디부아르와 가나의 카카오 농장에 팔려온 어린이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오랜 시간 강제노동에 시달린다. 위키미디어 코먼스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
축복받은 자연은 어떻게 저주의 역사가 되었는가
조철기 지음 l 따비 l 2만5000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출되는 과일 바나나. 소비자가 바나나를 구입하기 위해 지불하는 돈의 43% 남짓은 소매업자가 가져가고, 플랜테이션 농장 소유주가 17% 가까이를 챙기며, 숙성업자와 운송업자가 각각 13% 남짓을, 도매 및 수입업자가 10% 정도를 확보한다. 바나나 재배와 수확, 세척, 분류, 포장에 관여하는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3.3%에 지나지 않는다. 초콜릿의 원료인 카카오를 재배하는 농민들은 초콜릿 소매가의 6%를 소득으로 얻을 뿐이고, 커피 한잔의 가격 중 재배 농민의 차지는 1%에도 미치지 못한다.

바나나 한 개의 소매가에서 각 주체가 차지하는 몫을 수치로 나타낸 그림. 노동자의 몫이 가장 작다. 따비 제공
바나나 한 개의 소매가에서 각 주체가 차지하는 몫을 수치로 나타낸 그림. 노동자의 몫이 가장 작다. 따비 제공

조철기 경북대 지리교육과 교수가 쓴 책 ‘기호와 탐닉의 음식으로 본 지리’는 기호 식품의 이면에 도사린 어두운 실상을 들춰낸다. 차나무와 홍차, 사탕수수와 설탕, 카카오와 초콜릿, 기름야자와 팜유, 바나나, 새우, 포도와 와인 등 일곱 가지 식재료 및 식품을 골라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전 세계적 ‘상품 사슬’(commodity chain)을 파헤치며 음식을 둘러싼 역사와 맥락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음식의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상품 사슬에 얽힌 모순과 불합리에 깨어 있는 시민 의식으로 맞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묘사한 석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미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1773년 보스턴 차 사건을 묘사한 석판화. 위키미디어 코먼스

신대륙 아메리카에서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을 운영한 유럽인들은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아프리카에서 노예들을 끌어왔다. 카카오 농장 역시 아프리카 노예들을 데려다 썼다. 카카오 재배지가 서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로 확대되고 아프리카 각국이 유럽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뒤에는 초콜릿 생산에서 아동노동이 문제로 대두된다. 코트디부아르와 가나 같은 나라에서는 농촌 어린이의 50% 이상이 학교에 가지 않고 일을 하는데, 그중 25~50%가 카카오 농장에서 일한다. 세계 1위의 새우 수출국인 타이의 새우 양식장에서는 미얀마를 비롯한 인근 나라들에서 인신매매로 넘겨진 어린이·청소년들과 이주노동자들이 노예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아프리카 남동부 말라위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인데, 수출을 위한 사탕수수 재배 면적이 옥수수밭을 잠식하는 바람에 옥수수값이 폭등해 주민 다수가 굶주리고 있다. “사탕수수 생산은 또한 삼림 벌채, 동식물의 서식지 파괴, 물 부족, 수질오염 등을 포함한 환경 문제를 초래한다.” 식물성 기름 팜유의 원료라는 환경친화적 이미지와는 달리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은 열대림 파괴의 주범이다. “세계자연보호기금에 의하면, 한 시간마다 축구장 300개 면적에 해당하는 열대림이 기름야자 플랜테이션을 만들기 위해 불태워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는 기후위기를 가속화한다.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을 묘사한 엽서(1914). 위키미디어 코먼스
쿠바의 사탕수수 농장을 묘사한 엽서(1914). 위키미디어 코먼스

단 한 개의 바나나도 생산하지 않는 미국이 바나나 수출로 가장 많은 돈을 벌고, 카카오가 생산되지 않는 네덜란드가 카카오 수출 순위 5위를 차지한 반면, 아프리카의 카카오 재배 농민 대부분은 죽는 날까지 초콜릿을 구경조차 하지 못한다. 다국적 기업이 지배하는 기호 식품 시장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선진국의 부유한 사람들이 소비하는 커피와 차, 초콜릿 등에는 가난한 생산국 노동자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카리브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사탕수수 줄기를 자르는 모습을 담은 19세기의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카리브해 사탕수수 플랜테이션에서 어린이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이 사탕수수 줄기를 자르는 모습을 담은 19세기의 그림. 게티이미지뱅크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은이의 답은 공정무역에 있다.

“조금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공정무역을 통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상품을 선택함으로써 개발도상국 농민과 농업노동자들의 안정된 생계를 보장하고, 나아가 환경을 보전하는 지속가능한 농법을 지지할 수 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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