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사라 블래퍼 홀디 지음·유병선 옮김. 서해문집 펴냄.1만2500원
잠깐독서/여성은 진화하지 않았다
열정적이고 능동적인 수컷과 수줍고 수동적인 암컷.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주장한 이래 지금까지도 유통되는 암·수의 성적 본성에 대한 도식이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이자 영장류 학자인 사라 블래퍼 홀디가 쓴 이 책은 이런 고정관념에 까칠한 종주먹을 날린다.
‘수줍은 암컷’ 관념은 발정기만 되면 어쩔 줄 몰라하는 원숭이 암컷의 방랑벽을 설명하지 못한다. 인류와 98%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는 침팬지 암컷은 여러 마리의 수컷 파트너를 유혹한다. 수십마리 수컷과 수천번의 교미를 할 만큼 색정적이다. 유인원 암컷들은 임신에 필요한 것보다 훨씬 많은 수컷들과 짝짓기를 하려고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완력이 센 수컷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진화의 길에서 완력이 약한 암컷이 사용했던 강력한 무기는 ‘누가 아비이냐’를 모호하게 하는 것. 곧, 친부에 대한 불확실성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무때나 섹스가 가능한 성적 수용력, 배란 은폐, 적극적 섹스 따위다. 영장류 암컷은 이런 점에서 역동적 전략가다.
인간 여성이 영장류 암컷으로부터 진화해왔다고 믿는 지은이는 ‘역동적 전략가’ 암컷이 인류의 발전과정에서 어떻게 왜곡되고 은폐되었는지를 뜯어 보여준다. 모든 영장류 가운데 가장 지위가 열악한 것은 인간 암컷, 곧 여성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여아살해, 음순봉합, 아내의 남편 따라죽기 따위는 ‘부계 거주 패턴’ 등이 빚은 인류 문명만의 소산이었다. 성적으로 수줍고 경쟁을 싫어하고 오로지 자녀 양육에 몰두하는 여성은 결코 영장류 암컷으로부터 진화돼 나올 수 없었다는 주장이다.
1980년대에 씌어진 이 책은 진화생물학에 ‘암컷의 시각’을 도입했다는 점에서 동료 생물학자들의 공격을 받았다. 정작 본인은 생물학자의 입장에서 페미니즘과의 대화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당시 진화생물학과 페미니즘의 통합을 가져온’ 최초의 책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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