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신문기사·사진 등 인용한 파격적 형식
“젊은 시인들의 ‘만들어낸 환상’에 문제 제기”
잃어버린 시의 사실성 살려내려는 실험
“젊은 시인들의 ‘만들어낸 환상’에 문제 제기”
잃어버린 시의 사실성 살려내려는 실험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
이시영 지음/창비·6000원 “때론 한줄의 기사가 그 숱한 ‘가공된 진실’보다 더 시다웠다.” 새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를 내놓은 이시영(58) 시인은 책 뒤에 붙인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시집에는 신문 기사와 사진, 보고서, 다른 이들이 쓴 시와 소설 등이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표제작부터가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집 〈소외〉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시인 자신의 첨언은 인용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한겨레〉 2007년 1월 1일치 기사를 인용한 〈행복〉, 〈경향신문〉 2006년 12월 12일치의 사진과 기사에 바탕한 〈대통령의 눈물〉, 교육방송(EBS) 2007년 1월 15일 〈하나뿐인 지구〉 900회 특집방송을 보고 쓴 〈나무〉 등도 그러하다. 동료 시인 오탁번씨의 시 세 편의 내용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일품이었다” “더욱 일품이었다” “더더욱 일품이었다”는 품평을 곁들인 〈오탁번의 시〉,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카파의 사진〉, 박정희 암살에 가담했다가 총살당한 박흥주 대령의 편지를 소재로 삼은 〈고 박흥주 대령〉 등도 기존 텍스트의 인용과 설명이라는 시작 방법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시인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 각지의 전쟁과 생태계 파괴, 노예 노동 같은 비참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부각시킨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시가 행갈이를 무시한 산문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시라고 할 수 있을까. “시집이란 당대의 시단에 대한 질문이자 응답의 측면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저는 오늘날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의도된 환상시’가 만연하는 풍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봐라. 억지로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미 우리 현실 속에 이런 무시무시한 환상이 들어 있다’는 심사였죠. 우리 시가 잃어버린 사실성이랄까 현실성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실 비판과 고발에 초점을 맞춘 시들과 함께, 평범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시적인 순간 또는 계기를 찾아내는 시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말의 선량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의 가난한 저녁을 알 것만 같다.”(〈성읍 마을을 지나며〉 전문)
“저물녘 눈썹을 내리깔고 조용히 생각에 잠긴 말의 잔등을 한 소녀가 다가가 가만히 쓸어주고 있다.”(〈초원에서〉 전문)
해 저물면 산에 사는 다람쥐를 위해 날밤 다섯 개를 창턱에 내놓는 도종환 시인(〈저녁〉), 그리고 개마고원 베개봉 호텔 커피점의 앳된 여점원을 붙들고 “시집가면 생기는 대로 아이를 펑펑 낳을 것이며 형제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며 특히 아버지께는…”이라고 중얼거리다가 돌연 눈물을 쏟고 마는 또 다른 남녘 시인(〈오라비〉)은 시를 쓴다기보다는 ‘시를 사는’ 사례로서 이시영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들이다.
‘일상의 심미화’라고나 할 이런 시 작법의 핵심을 담은 작품이 진도 봄동을 노래한 〈봄의 내음〉일 것이다. “좀 된발음으로 표기하면 마당가에 방금 눈 아기 봄똥처럼 더욱 파릇해지고 상큼하고 아삭거리는 진도 봄동”의 느낌이야말로 시인이 생각하는 ‘시적인 것’의 정체가 아닐까. 그리고 그 궁극은 지극한 평화일 터.
“내가 만약 바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저 아기다람쥐의 졸리운 낮잠을 깨우지 않으리”(〈평화〉 전문)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이시영 지음/창비·6000원 “때론 한줄의 기사가 그 숱한 ‘가공된 진실’보다 더 시다웠다.” 새 시집 〈우리의 죽은 자들을 위해〉를 내놓은 이시영(58) 시인은 책 뒤에 붙인 ‘시인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아닌 게 아니라 시집에는 신문 기사와 사진, 보고서, 다른 이들이 쓴 시와 소설 등이 가공을 거치지 않은 상태로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표제작부터가 칠레 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소설집 〈소외〉의 일부를 인용한 것으로, 시인 자신의 첨언은 인용문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한겨레〉 2007년 1월 1일치 기사를 인용한 〈행복〉, 〈경향신문〉 2006년 12월 12일치의 사진과 기사에 바탕한 〈대통령의 눈물〉, 교육방송(EBS) 2007년 1월 15일 〈하나뿐인 지구〉 900회 특집방송을 보고 쓴 〈나무〉 등도 그러하다. 동료 시인 오탁번씨의 시 세 편의 내용을 차례로 소개하면서 “일품이었다” “더욱 일품이었다” “더더욱 일품이었다”는 품평을 곁들인 〈오탁번의 시〉,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 대한 설명으로 이루어진 〈카파의 사진〉, 박정희 암살에 가담했다가 총살당한 박흥주 대령의 편지를 소재로 삼은 〈고 박흥주 대령〉 등도 기존 텍스트의 인용과 설명이라는 시작 방법에서는 일맥상통한다. 시인은 이런 방식으로 세계 각지의 전쟁과 생태계 파괴, 노예 노동 같은 비참한 현실을 비판적으로 부각시킨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시가 행갈이를 무시한 산문투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시라고 할 수 있을까. “시집이란 당대의 시단에 대한 질문이자 응답의 측면을 지니게 마련입니다. 저는 오늘날 젊은 시인들을 중심으로 ‘의도된 환상시’가 만연하는 풍토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봐라. 억지로 환상을 만들어내지 않아도 이미 우리 현실 속에 이런 무시무시한 환상이 들어 있다’는 심사였죠. 우리 시가 잃어버린 사실성이랄까 현실성을 되살리자는 취지로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현실 비판과 고발에 초점을 맞춘 시들과 함께, 평범해 보이는 현실 속에서 시적인 순간 또는 계기를 찾아내는 시들 역시 주목할 만하다. “말의 선량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으면 바람이 불어오는 쪽의 가난한 저녁을 알 것만 같다.”(〈성읍 마을을 지나며〉 전문)
이시영 시인
해 저물면 산에 사는 다람쥐를 위해 날밤 다섯 개를 창턱에 내놓는 도종환 시인(〈저녁〉), 그리고 개마고원 베개봉 호텔 커피점의 앳된 여점원을 붙들고 “시집가면 생기는 대로 아이를 펑펑 낳을 것이며 형제들과도 사이좋게 지내며 특히 아버지께는…”이라고 중얼거리다가 돌연 눈물을 쏟고 마는 또 다른 남녘 시인(〈오라비〉)은 시를 쓴다기보다는 ‘시를 사는’ 사례로서 이시영 시인의 눈에 포착된 이들이다.
‘일상의 심미화’라고나 할 이런 시 작법의 핵심을 담은 작품이 진도 봄동을 노래한 〈봄의 내음〉일 것이다. “좀 된발음으로 표기하면 마당가에 방금 눈 아기 봄똥처럼 더욱 파릇해지고 상큼하고 아삭거리는 진도 봄동”의 느낌이야말로 시인이 생각하는 ‘시적인 것’의 정체가 아닐까. 그리고 그 궁극은 지극한 평화일 터.
“내가 만약 바람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미풍이 되어/ 저 아기다람쥐의 졸리운 낮잠을 깨우지 않으리”(〈평화〉 전문)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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