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나의 힘〉
〈경제는 나의 힘〉
박상률·곽옥미 지음.작은씨앗·3만원 경제학자들이 하지 못한 ‘쉬운 경제’ 도전
우화·퀴즈·편지 등 다양한 화법으로 써내
76편 읽고나면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자연수가 하나씩 적힌 카드 다섯 장이 있다.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1 3 5 7 9’이다. 여기에 잇대어 카드 한 장을 더 놓는다면 어떤 숫자가 될까? 물론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는 전제에서다. ‘평균적’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얼른 숫자 ‘11’을 떠올릴 것이다. 홀수의 나열이므로. 하지만 통념과 달리 이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수열의 규칙이 어떤지에 따라서, 바꿔 말하면 반복되는 수의 패턴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섯 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수는 상당히 많다.(수열을 만든 사람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는 심보를 가졌느냐는 중요치 않다) 맨 앞의 ‘1’을 뺀 나머지 수 ‘3 5 7 9’가 반복되는 규칙의 수열이라면 다음에 올 수는 ‘3’이다. ‘5 7 9’가 반복되는 수열일 땐 ‘5’가 올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예로 든 수열에 대해 우리가 가진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홀수의 배열이 수열 규칙이라는 정보가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보자) 정보의 양이 한정돼 있는 까닭에 예측 가능성은 더 낮아지게 마련이다. 합리적인 사유·행동에다 완전한 정보 환경을 전제로 한 ‘합리 모형’이 되레 비합리적일 때가 많은 이유다. 미래에 대한 판단이 자주 어긋나는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제로 문제 상황을 옮겨 궁리해도 마찬가지다. 온갖 개념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요, 책에서 읽은 도구들을 현실에 적용하려 하면 더 난감할 뿐이다. 쉬우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책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는 일만 잦아지게 된다. 이처럼 마뜩지 않은 때, 용감한 ‘장삼이사’가 나왔다. 소설가와 동화 작가가 의기투합해 펴낸 〈경제는 나의 힘〉의 ‘지은이 말’은 간결하되 정곡을 짚는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나무를 들여다보기에만 바빠 숲은 보지 못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가 아닌 작가가 감히 독자들에게 경제학의 숲을 보여주고 싶다는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작가라는 특장을 살려 경제 관련 개념들을 콩트, 우화, 퀴즈, 편지, 기사, 시나리오 등으로 종횡무진 엮어내 중·고등학생들도 ‘겁 없이’ 집어들 수 있겠다. 경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려, 도움말을 붙이고 물음 몇 개를 던져 ‘생각의 여백’을 남겨둔 점도 눈에 띈다.
‘경제인이냐 경제 동물이냐’에 대한 이야기 하나를 살펴보자. 숲에서 생선 가게를 차린 여우는 최고 가는 부자가 된다. 비밀은 두 가지. 어부 동물들에게 생선을 떼어 와선, 바다가 먼데다 물고기를 잡지 못하는 동물들에게 팔기 때문이다. 생선을 구하기 힘드니 그만큼 값도 비싸게 치를 수밖에 없어서다. 또다른 비밀은 ‘여우 같은’ 저울질. 1㎏에 1천원을 받는다 치면 덤으로 500g을 얹어주는 척하며 실제론 저울 눈금을 속여 왔던 것. 종당엔 첩보를 입수한 경찰 오소리에게 덜미가 잡히고 만다. 여우는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 원칙에 충실했지만, 마늘까지 ‘덤’으로 먹는다 해도 ‘경제인’이 될 수는 없다. 경제학은 경제 원칙뿐 아니라 ‘이기적이어선 안 됨’을 가정하기 때문이다. 우화를 빗대어 우리를 비춰보면 어떤가. 경제인이 아니라 경제 동물의 지위로 추락하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할까. 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1842~1924)이 한 문장으로 갈무리해 놓았다.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 이를 ‘경제적 기사도의 원칙’이라 이른다.
이 밖에 ‘박 판서의 제사법’은 똑똑한 인간의 덜떨어진 관행을, ‘서기 2050년의 코리아’는 우리의 가까운 미래 경제 생활을 짐작케 하며 ‘누구를 위하여 약을 만드나?’ 편에선 세계화 시대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선명히 느낄 수 있다. 겉치레로는 노동 유연성이지만 실상은 ‘가지치기’에 진배없는 지금의 고용 상황에선 ‘나사고 씨의 꿈-누구나 실업자가 될 수 있어요’ 이야기도 울림이 적지 않다.
글의 초입에서 든 수열의 예에 비겨볼진대, 정보가 모자라 상황을 오판해 본 이가 어디 한둘이랴. 그러므로 정보의 값은 귀하다. 때문에 지은이들이 맛깔나게 꾸민 경제 이야기 일흔여섯 편을 읽고 나면 드는 첫 생각.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그림 작은씨앗 제공
박상률·곽옥미 지음.작은씨앗·3만원 경제학자들이 하지 못한 ‘쉬운 경제’ 도전
우화·퀴즈·편지 등 다양한 화법으로 써내
76편 읽고나면 ‘아니 이렇게 깊은 뜻이!’ 자연수가 하나씩 적힌 카드 다섯 장이 있다. 순서대로 늘어놓으면 ‘1 3 5 7 9’이다. 여기에 잇대어 카드 한 장을 더 놓는다면 어떤 숫자가 될까? 물론 일정한 규칙성이 있다는 전제에서다. ‘평균적’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얼른 숫자 ‘11’을 떠올릴 것이다. 홀수의 나열이므로. 하지만 통념과 달리 이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수열의 규칙이 어떤지에 따라서, 바꿔 말하면 반복되는 수의 패턴이 무엇인지에 따라 여섯 번째 자리에 올 수 있는 수는 상당히 많다.(수열을 만든 사람이 우리를 골탕 먹이려는 심보를 가졌느냐는 중요치 않다) 맨 앞의 ‘1’을 뺀 나머지 수 ‘3 5 7 9’가 반복되는 규칙의 수열이라면 다음에 올 수는 ‘3’이다. ‘5 7 9’가 반복되는 수열일 땐 ‘5’가 올 것이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올까? 예로 든 수열에 대해 우리가 가진 정보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홀수의 배열이 수열 규칙이라는 정보가 애초에 주어지지 않았던 점을 생각해 보자) 정보의 양이 한정돼 있는 까닭에 예측 가능성은 더 낮아지게 마련이다. 합리적인 사유·행동에다 완전한 정보 환경을 전제로 한 ‘합리 모형’이 되레 비합리적일 때가 많은 이유다. 미래에 대한 판단이 자주 어긋나는 근본 원인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경제로 문제 상황을 옮겨 궁리해도 마찬가지다. 온갖 개념들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기 십상이요, 책에서 읽은 도구들을 현실에 적용하려 하면 더 난감할 뿐이다. 쉬우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책 어디 없나 두리번거리는 일만 잦아지게 된다. 이처럼 마뜩지 않은 때, 용감한 ‘장삼이사’가 나왔다. 소설가와 동화 작가가 의기투합해 펴낸 〈경제는 나의 힘〉의 ‘지은이 말’은 간결하되 정곡을 짚는다. “학자들은 자신들이 연구하는 나무를 들여다보기에만 바빠 숲은 보지 못하는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경제학자가 아닌 작가가 감히 독자들에게 경제학의 숲을 보여주고 싶다는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작가라는 특장을 살려 경제 관련 개념들을 콩트, 우화, 퀴즈, 편지, 기사, 시나리오 등으로 종횡무진 엮어내 중·고등학생들도 ‘겁 없이’ 집어들 수 있겠다. 경제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려, 도움말을 붙이고 물음 몇 개를 던져 ‘생각의 여백’을 남겨둔 점도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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