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기억〉
〈도시의 기억〉
고종석 지음/개마고원·1만8000원 고종석이 접했던 세계 도시 41곳
걷고 보며 그린 ‘마음속 지도’
탄탄한 교양 세련된 문장에 담아 〈도시의 기억〉은 언론인 고종석씨의 스무 번째 책이다. 그의 첫 책은 1993년에 낸 〈기자들〉이라는 소설이었다. 그에게 소설가의 관을 씌우고 이후 〈제망매〉와 〈엘리아의 제야〉 두 권의 소설집을 더 내도록 이끈 것이 바로 그 책이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유럽의 기자들’이라는 기자 연수 프로그램 참가 경험에 바탕을 둔 매우 자전적인 책이었다. 1992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프랑스 파리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취재차 둘러보았던 그 경험은 이번 책 〈도시의 기억〉의 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은 오사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그가 다녀 본 (이국의) 도시 41곳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 기억은 물론 사사로운 것들이지만, 지은이 특유의 탄탄한 교양과 세련된 문장 덕분에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공감을 자아낸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어떤 낭만주의의 심리적 질료들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고향을 그리워할 때 그 고향은 그리움의 주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마련이고, 먼 곳을 그리워할 때 그리움의 주체는 그 먼 곳을 제 진짜 고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존재와 생활의 근거지를 떠나 낯선 곳을 찾는 원심적 움직임과, 결국 떠났던 근거지로 돌아오는 구심적 움직임을 ‘향수’라는 동일한 심리의 같지만 서로 다른 표출로 이해하는 데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가령 지은이가 ‘유럽의 기자들’ 시절의 파리를 두고 “내게 꼭 맞는 옷 같았다”고 말할 때 그에게는 파리가 ‘진짜 고향’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시간의 미화작용에 기대어 뒷날 돌이켜보는 행복 말고 순간순간 겨워했던 행복이 내 삶에 있었다면, 그것은 파리에서의 그 세 계절이었다.”
그러나 1994년 2월 두 번째로, 그리고 이번에는 연수 목적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파리에 갔던 그가 4년 뒤 고국을 강타한 외환위기의 여파로 귀국 짐을 쌀 수밖에 없었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닫게 된다: “겉멋에 들려 파리 사람인 양 살았지만, 내 알량한 허영심을 물질적으로 뒷받침해온 것은 서울이었음을. 나는 파리에 살면서도 뿌리를 서울에 박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파리에 떠 있는 서울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들려오는 비명은 곧 내가 지르는 비명이었다.”
살러 간 파리에서든 취재나 여행 목적으로 간 다른 곳에서든 낯선 도시에 처음 내렸을 때 그가 그 도시와 사귀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걷기였다. “처음 발을 디딘 도시를 길들이기 위해 내가 쓰는 방법은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무작정 걷는 것이다.” 지도를 들고 이 골목 저 거리를 답파하다 보면 차를 타고 스쳐 지날 때와는 달리 마음속 지도에 도시의 무늬가 또렷이 새겨진다.
두 발을 이용한 답사와 함께 바지런한 문헌 섭렵 역시 그의 도시 이해를 튼실하게 만든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를 여행하면서 아랍어에서 차용한 스페인어와 영어·프랑스어 어휘들을 떠올릴 때, 유고 내전 당시의 베오그라드에서 세르비아 정교에 대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그리고 무슬림의 ‘이지메’를 꼬집을 때,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안네 프랑크 집에서 인종주의의 피해자에서 그 자신 “최악의 인종주의자들”로 바뀐 유대인을 나무랄 때, 그의 교양과 윤리의식은 한껏 돋보인다.
북한의 저명한 역사학자 김석형을 인터뷰하기 위해 호텔 방에 무단 잠입했다가 봉변을 당한 일,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사소한 일로 웨이터와 말다툼을 벌인 일 같은 쓰라린 기억이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도시 체험은 아리땁고 싱그럽다. 왜 아니겠는가. 여행의 기억은 머물렀던 공간에 대한 기억일 뿐만 아니라 흘러가버린 시간에 대한 기억이기도 한 것을.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고종석 지음/개마고원·1만8000원 고종석이 접했던 세계 도시 41곳
걷고 보며 그린 ‘마음속 지도’
탄탄한 교양 세련된 문장에 담아 〈도시의 기억〉은 언론인 고종석씨의 스무 번째 책이다. 그의 첫 책은 1993년에 낸 〈기자들〉이라는 소설이었다. 그에게 소설가의 관을 씌우고 이후 〈제망매〉와 〈엘리아의 제야〉 두 권의 소설집을 더 내도록 이끈 것이 바로 그 책이다. 소설이라고는 해도 ‘유럽의 기자들’이라는 기자 연수 프로그램 참가 경험에 바탕을 둔 매우 자전적인 책이었다. 1992년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프랑스 파리에 근거지를 두고 유럽의 여러 도시를 취재차 둘러보았던 그 경험은 이번 책 〈도시의 기억〉의 한 축을 이룬다. 이 책은 오사카에서 샌프란시스코까지 그가 다녀 본 (이국의) 도시 41곳에 관한 기억을 담고 있다. 그 기억은 물론 사사로운 것들이지만, 지은이 특유의 탄탄한 교양과 세련된 문장 덕분에 독자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공감을 자아낸다. “먼 곳을 향한 그리움과 고향을 향한 그리움은 어떤 낭만주의의 심리적 질료들이다. 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고향을 그리워할 때 그 고향은 그리움의 주체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마련이고, 먼 곳을 그리워할 때 그리움의 주체는 그 먼 곳을 제 진짜 고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존재와 생활의 근거지를 떠나 낯선 곳을 찾는 원심적 움직임과, 결국 떠났던 근거지로 돌아오는 구심적 움직임을 ‘향수’라는 동일한 심리의 같지만 서로 다른 표출로 이해하는 데에서 이 책은 출발한다. 가령 지은이가 ‘유럽의 기자들’ 시절의 파리를 두고 “내게 꼭 맞는 옷 같았다”고 말할 때 그에게는 파리가 ‘진짜 고향’으로 여겨졌을 법하다. “시간의 미화작용에 기대어 뒷날 돌이켜보는 행복 말고 순간순간 겨워했던 행복이 내 삶에 있었다면, 그것은 파리에서의 그 세 계절이었다.”
언론인 고종석씨가 유럽과 일본, 미국의 도시 41곳에 대한 추억을 풀어놓은 책 〈도시의 기억〉을 내놨다. 사진은 체코 수도 프라하의 카를루프 다리와 건너편 성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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