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탐구-내 삶의 지적 연대기〉
‘마르크스주의는 비과학적’ 비판한 포퍼
불완전한 사회가치 충돌이 역사발전 인식
진정한 과학적 사유법 탐구에 천착
불완전한 사회가치 충돌이 역사발전 인식
진정한 과학적 사유법 탐구에 천착
끝없는 탐구-내 삶의 지적 연대기
카를 포퍼 지음·박중서 옮김/갈라파고스·2만원 카를 라이문트 포퍼(1902~1994)를 빼고 20세기 과학철학·정치철학을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뤄 낸 성취만큼이나 격렬한 오해도 함께 받았던 포퍼의 자서전 <끝없는 탐구-내 삶의 지적 연대기>가 30여 년 만에 번역·출판됐다. 애초 포퍼는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라는 이론적 문제에 몰두했고 그 방면의 책을 먼저 펴냈지만(<탐구의 논리>·1934) 정작 철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정치철학 분야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뚫고 그가 펴낸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이, 전체주의와 극단주의가 서구 문명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뻔한 위기를 겪은 지식인들에게 강렬한 충격파를 안겼던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플라톤·마르크스·헤겔 ‘삼인방’을 정면으로 겨냥해 ‘역사주의’라는 비과학적 미신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경고했다. 특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혹독한 것이었다. 스스로 “두세 달 동안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하는 열일곱 살배기 포퍼가 마르크스주의를 극도로 혐오한 이유는 이랬다. “(마르크스주의의) 논제는 혁명에 있어 일부 희생자는 필수이리라는, 그래도 자본주의의 희생자보다는 사회주의 혁명의 희생자 수가 훨씬 적으리라는 것이었다.” 포퍼는 이런 계산법이 진실로 ‘과학’적 근거를 지닌 것인가를 자문하게 됐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창출하겠다는 ‘약속’과 ‘지식’에 근거하는 마르크스주의가 내세우는 ‘역사적 발전의 법칙’, 곧 역사주의(historism)라는 신조야말로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을 이루어내는 데 협조하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그는 비판했다.
포퍼는 이러한 경험으로 회의주의자를 거쳐 모든 합리주의에 철저히 반발하는 길을 걷는다. 사정이 이렇다 해서 그가 비합리주의나 반합리주의를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포퍼는 평생 ‘비판적 합리주의’를 철저히 실현한 사람이다. 논리의 핵심은 비판적 사고이며, 비판적 사고란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판적 합리주의는 우리가 합리주의라는 이름으로 ‘믿는’ 대상이 과연 ‘합리적’인가라고 되묻는 행위와 같다. 포퍼는 이를 두고 “이성과 분별력이 지닌 최고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비판에 열려 있음, 곧 비판받으려는 용의, 그리고 스스로를 비판하려는 열의”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항상 불완전한 사회에 살 수밖에 없다는 자각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하다. 불완전한 사회라는 것은 가치들 사이의 해결 불가능한 충돌을 피할 수 없다는 뜻인바, 충돌의 감소를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지만 “가치들과 원칙들의 충돌이 때로는 값진 것일 수도 있으며, 사실상 열린 사회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라는 게 포퍼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논리를 밀고 나가면, 어떤 이론이나 가설도 불완전하므로 그것의 타당성을 부정하는 또다른 가설·실험이 나오면 애초의 이론은 대체돼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포퍼는 이런 반증가능성을 과학과 사이비 과학을 가르는 결정적 ‘구획’으로 삼았으며 프로이트·아들러의 심리학을 ‘과학’으로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또한 경험적 사실에서 추상적 이론을 끌어내는 귀납이 과학적 방법론의 하나라는 ‘상식’도 깨뜨리려 했다. 모든 관찰은 아무리 단순하더라도 하나의 ‘이론 또는 가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귀납 대신 시행과 착오 제거의 방법을 적용하려 했다. “과학은 문제로 시작해서 문제로 끝난다”고 믿었던 포퍼는 자신의 가설-연역적 방법론을 ‘문제(P1)→잠정적 이론(TT)→착오 제거(EE)→새로운 문제(P2)’가 순환하는 변증법적 도식으로 간결히 요약하기도 했다.
포퍼는 자서전에서 여느 사람과 달리 구체적인 삶의 세목을 늘어놓지 않았다. 부제 ‘내 삶의 지적 연대기’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자신의 사상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됐는가를 보이는 데 집중한다. 그럼에도, 짧은 시간이었을지언정 목수·보육교사·막노동을 경험해야 했던 궁핍한 시절, 독일어만큼 영어가 유창하지 못해 글을 쓸 때마다 동료들의 조언을 줄기차게 구해야 했던 상황, 아인슈타인·괴델·하이에크 등 당대의 천재들과 나눈 우정과 갈등을 억지로 감추지도 않았다.
포퍼의 정치철학은 냉전과 소련의 붕괴 등을 거치며 여러 곳에서 정치적 덧칠과 탈색이 이뤄지기도 했다. ‘유통 기한’이 지났다거나 보수 반동의 철학자로 몰리기까지 했다. “신념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오히려 신념을 ‘보류하는’ 것만이 합리적이다”라고 믿었던 포퍼. 그는 이 책의 후기에 다음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 “지식인들은 제법 진보적이다. 하지만 진보란 이루기가 쉬운 게 아니며, 단순한 진보주의란 도리어 잘못된 결정을 낳기가 쉬운 까닭에 도리어 위험한 것이다.” 그는 ‘진보’를 말하기에 앞서 ‘유보’할 줄 아는 철학자였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카를 포퍼 지음·박중서 옮김/갈라파고스·2만원 카를 라이문트 포퍼(1902~1994)를 빼고 20세기 과학철학·정치철학을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뤄 낸 성취만큼이나 격렬한 오해도 함께 받았던 포퍼의 자서전 <끝없는 탐구-내 삶의 지적 연대기>가 30여 년 만에 번역·출판됐다. 애초 포퍼는 진정한 과학적 방법론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라는 이론적 문제에 몰두했고 그 방면의 책을 먼저 펴냈지만(<탐구의 논리>·1934) 정작 철학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정치철학 분야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뚫고 그가 펴낸 <열린 사회와 그 적들>(1945)이, 전체주의와 극단주의가 서구 문명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뻔한 위기를 겪은 지식인들에게 강렬한 충격파를 안겼던 것이다. 그는 이 책에서 플라톤·마르크스·헤겔 ‘삼인방’을 정면으로 겨냥해 ‘역사주의’라는 비과학적 미신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경고했다. 특히 ‘과학적 사회주의’를 자처했던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비판은 혹독한 것이었다. 스스로 “두세 달 동안 공산주의자”였다고 말하는 열일곱 살배기 포퍼가 마르크스주의를 극도로 혐오한 이유는 이랬다. “(마르크스주의의) 논제는 혁명에 있어 일부 희생자는 필수이리라는, 그래도 자본주의의 희생자보다는 사회주의 혁명의 희생자 수가 훨씬 적으리라는 것이었다.” 포퍼는 이런 계산법이 진실로 ‘과학’적 근거를 지닌 것인가를 자문하게 됐다고 말한다. 더 나은 세상을 창출하겠다는 ‘약속’과 ‘지식’에 근거하는 마르크스주의가 내세우는 ‘역사적 발전의 법칙’, 곧 역사주의(historism)라는 신조야말로 “필연적으로 벌어질 일을 이루어내는 데 협조하라”는 동어반복에 불과하다고 그는 비판했다.
카를 포퍼의 사상은 “우리는 우리의 실수로부터 배울 수 있다”는 신념의 다양한 표현이다. 갈라파고스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