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제국 1·2〉
〈공포의 제국 1·2〉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김진준 옮김/김영사·각 권 9800원 극단적 환경론자에 대한 ‘극단적’ 비판
3년 발품 “온난화는 인류 탓? 조작된 공포”
“현실 왜곡” 과학자들 격앙시킨 문제작 2003년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자리에선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투가 미국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8천명의 국민이 나라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바누투는 평균 고도가 해발 몇 피트에 불과한 나라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를 가졌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으뜸이니 지구 온난화에도 마땅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미국의 환경단체 ‘전국환경자원기금’(환경기금ㆍNERF)은 이듬해 열릴 재판에서 바누투 쪽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소송은 끝내 제기되지 않았으며, 환경기금과 바누투 어느 쪽도 공식적 해명을 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 ‘온난화 소송’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속 얘기다. 바누투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을 빗댄 것이며 실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은 2002년 8월에 열렸다. 크라이튼이 2004년 펴낸 <공포의 제국>이 번역ㆍ출간됐다. 정교하고 구체적인 과학기술과 상상력, 속도감 넘치는 구성으로 이름난 그의 열네 번째 소설이다. 작가는 그래프와 각주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이 작품을 위해 3년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갱이는 환경 변화의 원인, 규모, 위협성은 우리가 대부분 모르고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800여쪽에 걸쳐 테크노스릴러와 한데 버무려져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앞서 든 환경기금은 바다에 잠길 위기에 처한 바누투의 소송을 준비한다. 지구 온난화가 ‘위험’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점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활동의 하나다. 과학적 연구 결과를 모조리 분석하고 필요한 논리를 추출하는 데 드는 비용은 후원자 조지 모턴이 대기로 약속한 상태다. 하지만 모턴은 환경 보호를 구실로 테러를 일삼는 과격단체인 환경해방전선과 이곳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때문에 모턴은 은밀히 후원을 끊기로 마음먹는다. 환경 보호를 ‘작업ㆍ사업’의 대상으로 여기는데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살인과 납치, 조작과 강요까지 일삼는다는 점을 눈치챈 것이다. 하지만 모턴은 어느 날 술 취한 채로 고급 승용차 페라리를 몰고 질주하다 낭떠러지로 추락해 실종된다. 그의 변호사인 피터 에번스와 비서 사라 존스, 그리고 존 케너 교수는 모턴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면서 과격 환경단체의 추악한 탐욕을 하나씩 들춰내게 된다. 남극의 거대 빙하가 온난화 탓에 갈라지고 녹는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허리케인의 위력을 증폭시키려 폭약과 로켓, 신경독까지 이용하려는 극단적 환경론자들과 벌이는 한판 스펙터클은 크라이튼 표 볼거리다.
지구 온난화는 어느새 현대인의 상식이 됐다. 크라이튼은 “인간의 가장 확고한 믿음은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이라며 상식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나선다. “현재의 온난화 추세에서 얼마만큼이 인간의 영향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앞으로 100년 동안 온난화가 어디까지 진행될지는 컴퓨터 모델에 따라 400퍼센트의 차이를 나타내며 이는 사실상 아무도 모른다는 뜻이다.” 인간의 산업활동으로 대기 중에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났으며 이에 따른 온실효과로 대기의 온도가 올라간 결과가 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설명은 한마디로 허구라는 얘기다. 그러나 소설 출간 뒤, 많은 과학자들은 크라이튼의 자료 인용이 부적절하며 현실을 오도한다고 비판했다.(<시애틀 타임스> 2005년 2월10일치, <뉴욕 타임스> 2006년 7월27일치, <유엔 기후변화 정부간 협의체(IPCC)> 2007 4차 보고서 등 참조)
소설과 ‘잘못된 상식’ 가운데 어느 것이 허구에 더 가까운지를 작가는 집요하게 묻고 있다. 우리의 상식이 틀렸다고 말하는 주장은 너무나 선명해 이해가 쉽지만, 선명하므로 그것이 진정 사실일까를 도리어 의심하게 만든다. 소설은 소설이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만 경계한다면 지식과 재미를 두루 얻을 수 있겠다.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마이클 크라이튼 지음·김진준 옮김/김영사·각 권 9800원 극단적 환경론자에 대한 ‘극단적’ 비판
3년 발품 “온난화는 인류 탓? 조작된 공포”
“현실 왜곡” 과학자들 격앙시킨 문제작 2003년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이 열렸다. 그 자리에선 태평양의 섬나라 바누투가 미국 환경보호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8천명의 국민이 나라를 떠나야 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바누투는 평균 고도가 해발 몇 피트에 불과한 나라다. 미국은 세계 최대의 경제 규모를 가졌고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으뜸이니 지구 온난화에도 마땅히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였다. 미국의 환경단체 ‘전국환경자원기금’(환경기금ㆍNERF)은 이듬해 열릴 재판에서 바누투 쪽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소송은 끝내 제기되지 않았으며, 환경기금과 바누투 어느 쪽도 공식적 해명을 하지 않았다. 1년도 채 안 되는 사이 ‘온난화 소송’을 둘러싸고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 속 얘기다. 바누투는 남태평양의 바누아투공화국을 빗댄 것이며 실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정상회담’은 2002년 8월에 열렸다. 크라이튼이 2004년 펴낸 <공포의 제국>이 번역ㆍ출간됐다. 정교하고 구체적인 과학기술과 상상력, 속도감 넘치는 구성으로 이름난 그의 열네 번째 소설이다. 작가는 그래프와 각주가 곳곳에서 등장하는 이 작품을 위해 3년을 연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갱이는 환경 변화의 원인, 규모, 위협성은 우리가 대부분 모르고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며 800여쪽에 걸쳐 테크노스릴러와 한데 버무려져 있다.
‘죽어가는 지구’는 음모다…소설, 과학에 도발
소설과 ‘잘못된 상식’ 가운데 어느 것이 허구에 더 가까운지를 작가는 집요하게 묻고 있다. 우리의 상식이 틀렸다고 말하는 주장은 너무나 선명해 이해가 쉽지만, 선명하므로 그것이 진정 사실일까를 도리어 의심하게 만든다. 소설은 소설이므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만 경계한다면 지식과 재미를 두루 얻을 수 있겠다.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