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라벌 사람들’
신의 나라의 재해석
2002년 <나의 아름다운 정원>으로 제7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가 심윤경(36)씨가 신라의 왕족과 화랑, 승려들을 등장시킨 연작소설집 <서라벌 사람들>(실천문학사)을 펴냈다. 계간 <실천문학>에 연재했던 단편 다섯이 묶였다.
첫편인 <연제태후>는 지증왕의 부인 연제부인을 주인공 삼았다. <삼국유사>에 기록된바, 한 자 다섯 치에 이르는 지증왕의 양물을 감당할 만한 배필로 간택된, 칠 척 오 촌의 키를 지닌 거인이 바로 연제부인이다. 작가는 이 연작집에서 신라의 왕과 왕비를 시종 황제와 황후라 일컫는데, 거기에는 거인족 출신인 신라 왕실에 대한 경외감이 담겨 있다.
지증왕 사후 아들인 법흥왕은 불교를 받아들이고자 하지만, 성(性)을 중시하는 신라의 토착 종교를 고집하는 연제태후는 아들과 날카롭게 맞선다. 여기에다가 불교를 위해 기꺼이 순교하고자 하는 이차돈의 고집이 맞물리면서 상황은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지증왕의 거대한 양물이나 이차돈의 참수 같은 역사적 사실을 두 세계의 충돌에 대한 상징으로 보고자 했습니다. 신국(神國) 신라의 토착신앙에 중국에서 건너온 불교와 유교라는 새로운 가치가 충돌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가 궁금했어요.”
작가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사료에서 접한 단편적인 사실들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함으로써 신라와 신라 사람들을
새롭게 해석하고자 했다. <연제태후>에 이어지는 <준랑의 혼인>에서는 나이 든 화랑과 어린 화랑 사이의 동성애가 자연스럽게 묘사되며, <혜성가>에서는 남녀 사이의 교합례를 주관하려는 신궁 제관들과 이를 막으려는 불교도 사이의 충돌이 그려진다.
“국립경주박물관에 보관된 토우장식장경호와 같은 유물은 남자의 커다란 성기와 여자의 섹시한 엉덩이를 유별나게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런 유물들을 보면 신라가 성을 숭배하는 토착종교를 지닌 사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위서 논란에 휩싸여 있긴 하지만 <화랑세기>는 저의 그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었습니다. <서라벌 사람들> 연작은 말하자면 <화랑세기>의 시각으로 본 <삼국유사>의 세계라 할 수 있습니다.”
<화랑세기>에 묘사된 신라의 ‘문란한’ 성 풍속을 다룬 또다른 소설로 김별아씨의 장편 <미실>이 있다. 그러나 작가는 <미실>과의 비교가 전혀 달갑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가 이 소설을 쓸 때 지상 목표로 삼은 것이 바로 <화랑세기>와의 차별성과 독립성이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다룬 이야기들은 어디까지나 <삼국유사>에 기록된 ‘정사’들입니다.”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심윤경
글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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