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
송정림 지음·전지영 그림/예담·1만5000원 ‘러브레터’의 샤브샤브·정종
‘귀여운 여인’의 핫케이크 등
혀로 느끼는 희로애락 차림표 우수수 우수(憂愁) 떨어진다. 산을 오르면 낙엽이 내리고, 거리를 걸어도 추억이 밟힌다. 칫솔 다루듯 시절을 마름질할 수는 없는 탓에, 때로 가을은 땡감 씹은 뒷맛 같다. “우리는 외로운 존재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다!” 그럴 때, 그이는 영화를 보고 저이는 요리를 할 것이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는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담은 영화에다 ‘혀로 느끼는 우주’라 할 요리를 함께 버무린 책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마음풍경> <명작에게 길을 묻다> 등 여러 책을 펴냈던 지은이 송정림씨는 스스로 ‘감성과 추억의 배달부’로 일컬으며, 영화 스물아홉 편을 불러낸 뒤 각각에 알맞으면서 뚝딱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덧대 맛깔나게 엮었다. 손나발을 한 아가씨가 “오겡키데스카 … 오겡키데스요”라고 소리친다. 겨울 산에서 숨진 연인을 그리는 히로코의 목소리는 바이올린 현처럼 떨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라는 대사가 보는 이의 마음에 불도장을 찍은 명장면이다. 그것의 정체를 지은이는 첫사랑의 추억이라 풀이한다. 박정만 시인이 노래했듯 “잘못도 없이/괜히 가슴만 두근거리는/저 눈부신 한때의 프락치 사건”인데다 “열도 없이/병도 없이/주사기도 없이” 앓는 것이므로. 이와이 슌지가 감독한 <러브레터>(1995)의 풍경이다. 전학을 가게 된 이쓰키(남)가 이쓰키(여)에게 건넨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인 것은, 은유가 아니라 차라리 직설로 읽힌다. “찾지 못하는 (첫사랑의) 시간 …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인 까닭이다. 이쯤 되면 ‘마음의 감기’를 피할 길 묘연할밖에. 그래서일까, 히로코는 연인이 숨지기 전 묵었던 산장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며 몸을 덥힌다. 영화 줄거리를 되새긴 뒤 이어지는 지은이의 요리 제안. “첫사랑이었던 그가 그리워질 때 마음으로 남풍이 불어와 그에게로 우리 마음을 실어갈 때, 따뜻한 샤브샤브에 곁들이는 따끈한 정종 한 잔 어떨까?” 특히, 찍어 먹는 소스가 중요하다며 “작은 볼에 다시마 국물과 간장, 식초, 청주, 송송 썬 실파, 무즙을 넣어 섞고, 거기에 레몬을 띄우면 향긋하고 담백한 간장 소스가 완성된다”는 말도 붙였다.
‘식탁 위에 차려진 맛있는 영화 이야기’가 부제인바, 지은이는 사랑 영화들에 맞춤하도록 음식을 가려 차림표를 내놨다.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감독·1998)에는 “아버지 내음 같은, 일상의 행복 같은 구수한 된장찌개”, <그린파파야 향기>(트란 안 홍 감독·1993)에는 월남쌈, <귀여운 여인>(게리 마셜 감독·1990)에는 신데렐라의 아침 식사 같은 핫케이크, <첨밀밀>(천커신 감독·1996)에는 부드럽고 포근한 떡국이 제짝이다. 음식 따라 영화를 연상해 볼 수도 있다. 김밥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지은이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2006)을 들었다. 유정이 윤수를 위해 난생처음 만들어 간 김밥. 하나 집어 먹은 윤수가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 김밥이 너무 짜요”라고 말했던 그 김밥. 그러나 그것은 죽으려던 윤수에게 살고 싶다는 의욕을 주는 묘약이었다. 따뜻한 우유 한 잔 마시고 싶을 땐 ‘세상에서 가장 슬픈 킬러’의 짧은 사랑이 애절한 <레옹>(뤼크 베송 감독·1994)이 자연스럽다. 레옹에게 우유는 밥이요 술이며 커피였기 때문이다. 지갑이 얇다면 <봄날은 간다>(허진호 감독·2001)가 어떨까. 거기엔 라면 먹는 장면도 많고 라면에 얽힌 대사도 많다. “내가 라면으로 보여?”
이 밖에 커피, 샌드위치, 볶음밥, 닭백숙, 해물스파게티, 왕갈비 등에 어울리는 영화를 꼽아 보는 것도 재밌겠다. 물론, 사부작사부작 설거지부터 하는 게 먼저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송정림 지음·전지영 그림/예담·1만5000원 ‘러브레터’의 샤브샤브·정종
‘귀여운 여인’의 핫케이크 등
혀로 느끼는 희로애락 차림표 우수수 우수(憂愁) 떨어진다. 산을 오르면 낙엽이 내리고, 거리를 걸어도 추억이 밟힌다. 칫솔 다루듯 시절을 마름질할 수는 없는 탓에, 때로 가을은 땡감 씹은 뒷맛 같다. “우리는 외로운 존재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하다!” 그럴 때, 그이는 영화를 보고 저이는 요리를 할 것이다. <영화처럼 사랑을 요리하다>는 희로애락 오욕칠정을 담은 영화에다 ‘혀로 느끼는 우주’라 할 요리를 함께 버무린 책이다. 방송작가로 일하며 <마음풍경> <명작에게 길을 묻다> 등 여러 책을 펴냈던 지은이 송정림씨는 스스로 ‘감성과 추억의 배달부’로 일컬으며, 영화 스물아홉 편을 불러낸 뒤 각각에 알맞으면서 뚝딱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요리법을 덧대 맛깔나게 엮었다. 손나발을 한 아가씨가 “오겡키데스카 … 오겡키데스요”라고 소리친다. 겨울 산에서 숨진 연인을 그리는 히로코의 목소리는 바이올린 현처럼 떨렸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라는 대사가 보는 이의 마음에 불도장을 찍은 명장면이다. 그것의 정체를 지은이는 첫사랑의 추억이라 풀이한다. 박정만 시인이 노래했듯 “잘못도 없이/괜히 가슴만 두근거리는/저 눈부신 한때의 프락치 사건”인데다 “열도 없이/병도 없이/주사기도 없이” 앓는 것이므로. 이와이 슌지가 감독한 <러브레터>(1995)의 풍경이다. 전학을 가게 된 이쓰키(남)가 이쓰키(여)에게 건넨 책이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인 것은, 은유가 아니라 차라리 직설로 읽힌다. “찾지 못하는 (첫사랑의) 시간 … 영원히 잃어버린 시간”인 까닭이다. 이쯤 되면 ‘마음의 감기’를 피할 길 묘연할밖에. 그래서일까, 히로코는 연인이 숨지기 전 묵었던 산장에서 샤브샤브를 먹으며 몸을 덥힌다. 영화 줄거리를 되새긴 뒤 이어지는 지은이의 요리 제안. “첫사랑이었던 그가 그리워질 때 마음으로 남풍이 불어와 그에게로 우리 마음을 실어갈 때, 따뜻한 샤브샤브에 곁들이는 따끈한 정종 한 잔 어떨까?” 특히, 찍어 먹는 소스가 중요하다며 “작은 볼에 다시마 국물과 간장, 식초, 청주, 송송 썬 실파, 무즙을 넣어 섞고, 거기에 레몬을 띄우면 향긋하고 담백한 간장 소스가 완성된다”는 말도 붙였다.
사랑에 배고픈 자여, 영화 속 음식 먹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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