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가족〉
■ 아내·엄마…그러나 여자는 없었다
〈착한 가족〉
여자는 묵묵히 엄마, 아내, 며느리, 올케로 살았다. 암에 걸려 임종 직전에 이르러서야 그는 가슴에 물처럼 차오르는 슬픔을 느낀다. “너는 다른 사람 상처 내는 일, 싫은 소리, 해 되는 짓 절대 안 하잖아. 그게 다 네 상처로 돌아간 게 아닌가 싶어.”(35쪽, <슬픔이 자라면 무엇이 될까>) 다른 한 여자는 시답잖은 친구들에 휩쓸려 다른 학생을 집단 폭행한 착한 아들과 유약하고 순진해 직장 내 암투 끝에 쫓겨날 판인 남편, 애국가만 들려도 눈물 흘리는 순하디순한 딸을 건사하느라 하루에도 여러 번 말투와 표정과 옷차림을 바꾼다.(<착한 가족>) 또다른 여자도 그때그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역할의 유통기한이 끝나면 아예 이름도 바꿔버린다.(<슈거, 혹은 솔트>)
소설가 서하진씨의 여섯 번째 소설집 <착한 가족>에서 등장인물들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자리가 요구하는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한다. 단단하고 매끈한 겉껍데기에 균열이 생기는 때는 몸에 악성 종양이 생겨 죽음을 앞뒀을 때(<모두들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도의 극한 상황에서다. “일상이라는 것은 언제나 사소한 인내, 사소한 굴욕, 사소한 연기를 요구하는 법”임을 이들은 잘 알고 있다. 해설을 쓴 정여울 문학평론가의 말처럼 이들은 “9회말 투아웃 상황까지 자신의 욕망을 유예시키다가 마침내 임계점에 다다른 사람들”이다. 욕망을 유예시키는 이들이 대는 변명은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이지만, 실은 거듭되는 역할극 끝에 자신이 욕망하는 바를 영영 모르게 됐다는 편이 맞을 듯싶다. 서하진 지음/문학과지성사·1만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 다윈은 ‘진화’를 말하지 않았다?
〈다윈 이후〉
찰스 로버트 다윈(1809~1882). ‘자연선택에 따른 생물 진화’ 이론의 창시자, ‘진화론의 아버지’. 하지만 그는 생물학의 역사와 인류의 세계관을 바꾼 기념비적 저작 <종의 기원>에서 ‘진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다. ‘변이를 수반한 유전’이라고 표현했다. 1744년 스위스 생물학자 알브레히트 폰 할러가 진화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했다. 올해 <종의 기원> 출간 150돌, 다윈 탄생 200돌을 맞지만 그와 그의 이론에 대한 오해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서양 세계는 아직도 다윈과 화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진화론이 갖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윈의 이론에 담긴 철학이 서양의 가치 체계에 도전하는 ‘급진적’ 사상이었던 탓이다.
<다윈 이후>는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스티브 제이 굴드가 ‘진화론의 투사’, 다윈 해설가로 나서서 쓴 책이다. 부제 ‘다윈주의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말하다’가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다윈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확산되었고,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려낸다. 다윈의 저술에 담긴 다원주의적 정신을 강조하며, 유전학·발생학·수학·통계학·지질학 등이 진화론적 관점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설명해간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완성한 뒤 21년이 지나서야 출간한 사연부터 생명과 지구의 역사, 인종차별주의까지 넘나든다.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도 질타한다. 홍욱희·홍동선 옮김/사이언스북스·2만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민주화 외치던 절규와 눈물의 공간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
황인성 전 한겨레통일문화재단 사무총장은 남산 쪽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에게 남산은 몽둥이로 얻어맞고, 물고문을 당했던 공포의 현장이다. 안기부를 의미하는 은어인 ‘남산’은 1970~80년대의 보통 사람들에게도 괜스레 꺼려지는 말이었다. 그러나 악명 높던 ‘남산’의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질지 모른다. 남산의 옛 안기부 본관 건물은 2006년 서울유스호스텔로 간판을 바꿔 달았다. 황인성씨는 남산을 기억에서 지울 수는 없다고 한다. “남산은 국가폭력의 증거물입니다 … 뼈아픈 과거라 할지라도 남기고 보존해서 다시는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지키고자 한 양심과 진실을 돌이켜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소설가 손홍규씨 등이 집필하고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펴낸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는 민주화를 외치던 이들의 절규와 눈물이 가득했던 광장·건물·거리 등을 알려준다. 공간은 말이 없지만, 자신을 알아보는 이들에겐 지켜봤던 과거를 내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칠 마포의 한 빌딩은 1979년 ‘와이에이치(YH)무역’ 여성 노동자들의 목숨 건 투쟁터였던 신민당사 자리다. 서대문형무소 사형장 입구 왼쪽에 자리잡은 미루나무에는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하게 사형당한 8명의 한이 서려 있다. 감옥의 소임을 다한 서대문형무소는 현재 그 일부가 보존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겪은 수난의 역사를 보여준다. 그러나 독재 시절, 탄압받던 이들의 역사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김기선·김순천·김종철·원종국·손홍규 지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1만5000원.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이번 불황 다음은 초인플레이션”
〈금융 아마겟돈〉
몇년 전만 해도 마이클 팬츠너는 ‘괜한 걱정으로 세상을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으로 간주됐다. 그러나 월가발 금융위기가 전세계로 번진 지금 그는 금융위기를 용감히 예측한 ‘예언자’로 변했다. 몇몇 사람들이 월가 및 전세계적 거품 현상을 비판하고 우려했지만, 그만큼 단언적으로 오늘의 위기를 예측하지는 못했다.
금융위기의 시작인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본격화된 2007년 3월 출간된 팬츠너의 <금융 아마겟돈>은 그 이후 사태 전개를 마치 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경제불안-시스템 위기-불황-초인플레이션으로 단계를 나눠 경제위기를 묘사한 2장을 보면, 우리는 지금 시스템 위기에서 불황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와 있다. 이제 “연준은 스스로 자신의 어깨에 멨던 절제의 멍에를 벗어던지고 통화공급 확대의 방향으로 마음껏 질주할 것이다. 연준이 이렇게 행동하면 그것은 거대한 와해의 두 번째 국면이 시작됐음을 알려주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팬츠너에 따르면, 우리는 앞으로 자산가격 하락 등의 디플레이션적 불황을 거쳐 초인플레이션을 거쳐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위기를 진단하는 분석서로 여전히 유효하다. 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개인재무관리 전략’이라는 부제에서 보듯이 이런 경제위기 속에 개인들이 취해야 할 재무관리도 덧붙인다. 팬츠너는 말한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최선의 상황을 희망하되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에 대비하라.” 경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가 소개하는 정보 소스나 방법들은 아주 유익하다. 이주명 옮김/필맥·1만3000원.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
■ 유전자-음식 ‘세대차’가 비만 원인
〈빈곤한 만찬〉
늘어나는 몸무게와 나날이 굵어지는 허리. 텔레비전 화면 속 근사한 연예인들 앞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작아지진 않는지. ‘내가 너무 절제심이 부족하고 게으른 것일까?’ 자괴감에 빠진 당신에게 <빈곤한 만찬>은 ‘당신이 뚱뚱한 것은 결코 당신의 탓이 아니다’라는 솔깃한 주장을 펼친다. 농공학자인 지은이는 영양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역사를 되밟아, 현대인의 비만의 원인을 ‘나이 든 유전자’와 ‘새로운 음식물’ 사이의 ‘세대차’라고 설명한다.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인류의 조상들은 어려운 때를 대비해 가능한 한 영양소를 비축하고자 했고, 이런 성향은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져 현대인들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 내려왔다. 하지만 그간 인류가 먹는 음식은 놀라울 정도로 달라져 간극이 생겼다는 것이다. 한발 더 나가, 우리는 조상들과 똑같은 양의 음식을 먹고, 똑같은 양의 운동을 한다고 해도 조상들보다 더 뚱뚱해질 운명이라고 지은이는 얘기한다. 사람에게 고기를 제공하는 축산동물 등에게 옥수수와 콩 등 지방을 비축하는 ‘오메가 6’ 성분이 많은 사료를 주고 있는 게 원인이다. 그 결과, 지난 40년 동안 사람들이 섭취하는 음식의 양은 줄었지만 오히려 비만과 관련 질병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는 우리가 먹는 음식뿐만 아니라 가축들의 먹이도 개선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할인매장에서 ‘최저가 식품’만 살 것이 아니라, 좋은 먹을거리를 적절한 값에 살 수 있는 새로운 생산 방식, 새로운 농사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피에르 베일 지음·양영란 옮김/궁리·1만5000원.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대처리즘의 허구성 신랄한 비판
〈영국인의 문화와 정체성〉
또 하나의 신화 깨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는 “‘영국병’을 치료하고 경제를 회복시켰다”고 오랫동안 찬사를 받아왔다. 지금 거대 여당의 가장 큰 파벌을 거느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3년 전부터 한국판 대처리즘의 분신으로 자신의 이미지를 가꿔왔다. 그만큼 대처리즘은 대한민국에선 속칭 ‘먹어 준다’. 빈 머릿속을 채우려던 보수에겐 특히나 그랬다. 지은이는 “그동안 우리에게 알려진 대처의 이미지는 다분히 언론이나 뉴라이트 추종자들이 만들어낸 일종의 신화”라며 “영국의 공동체성을 훼손시킨 역사적 과오가 더 큰 인물”로 고발한다. 정치·경제적 접근에 가미된 문화적 접근이 돋보인다. 정치적으론 개혁주의 전통의 퇴조, 인위적인 주택경기 부양과 무리한 금융대출은 대처가 뿌린 이번 금융위기의 씨앗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대처주의가 등장한 1980년대 이후 상업화의 물결 속에 선도적이었던 영국 문화의 역할도 사라졌다고 했다. ‘재산소유 민주주의’ ‘주식소유 민주주의’로 일컬어지는 대처리즘은 집권 동안 연평균 1.75% 성장에 그쳤다. 이전 노동당 정부 10년 동안의 평균 2.4%에도 미치지 못했다. 지역별·계층별 빈부 양극화의 간극은 더 심해져 ‘두 국민화’가 이뤄졌다. 지은이가 <영국인의 문화와 정체성>의 열쇳말을 대처로 삼은 것은, 영국이 대처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처 이후 영국의 전통사회가 붕괴됐다.” 대처리즘의 온갖 실험들이 실패로 드러나고 있는 지금 지은이의 안내를 받아볼 만하다. 박우룡 지음/소나무·1만8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다윈 이후〉
<다윈 이후>는 저명한 진화생물학자이자 과학저술가인 스티브 제이 굴드가 ‘진화론의 투사’, 다윈 해설가로 나서서 쓴 책이다. 부제 ‘다윈주의에 대한 오해와 이해를 말하다’가 책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지은이는 다윈의 사상이 어떻게 왜곡·확산되었고,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끼쳤는지 그려낸다. 다윈의 저술에 담긴 다원주의적 정신을 강조하며, 유전학·발생학·수학·통계학·지질학 등이 진화론적 관점을 어떻게 발전시켰는지 설명해간다. 다윈이 <종의 기원>을 완성한 뒤 21년이 지나서야 출간한 사연부터 생명과 지구의 역사, 인종차별주의까지 넘나든다.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도 질타한다. 홍욱희·홍동선 옮김/사이언스북스·2만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민주화 외치던 절규와 눈물의 공간
〈그날 그들은 그곳에서〉
〈금융 아마겟돈〉
〈빈곤한 만찬〉
〈영국인의 문화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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