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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월 31일 잠깐 독서

등록 2009-01-30 21:16수정 2009-02-08 13:43

〈안녕, 추파춥스 키드〉
〈안녕, 추파춥스 키드〉




■ 추파춥스에서 쓴맛이 난다

〈안녕, 추파춥스 키드〉

스물여섯 살의 겨울, 희수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이력서를 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정류장에서 대희를 만난다. 대희는 뿌리째 뽑혀 허공을 떠도는 나무처럼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떠다니는 불안정한 인간이다. 타인에 대한 무심함과 냉담함을 갑옷처럼 두르고 굴곡진 삶을 버텨온 엄마 손에 홀로 자란 희수는 대희보다는 건강하지만, 역시나 불완전한 개인이다. <안녕, 추파춥스 키드>는 이들이 만나 하는 불완전한 연애와 고통 끝의 성장을 감각적이고 정교한 문체로 성실하게 그렸다.

“혹여 사랑은 이런 게 아닐까. 약속되지 않은 날, 나 자신조차 알지 못하던 내가 나를 방문하는 것.” 짧은 환희와 긴 고통을 담금질하듯 번갈아 오가며 희수가 내린 결론이다. 연인이 훌쩍 떠나버리자 희수는 “내 사랑은 남들이 수백년 수천년 동안 겪어온 감정을 베끼는 것에 불과하다”고 되뇐다. 사랑은 그렇게 희수의 어머니와 할머니, 강화도 아저씨도 모두 거쳐간 ‘보편적인’ 경험일지 모르지만,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경험은 희수와 대희의 삶에 지워지지 않는 무늬를 아로새긴다. 지금은 유랑하는 자신의 삶 대신 뿌리부터 곧게 하늘로 뻗은 자작나무를 찾아 밖에서만 절박하게 헤매던 대희는 “자신의 몸을 나무 삼아, 사다리 삼아 살아야” 함을 깨닫고, 희수는 아무리 아픈 이별이 있어도 인생은 “해피도 없고 엔딩도 없는,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컬트무비”임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최옥정 지음/문학의문학·1만1000원.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 주눅들지 않고 문학과 놀기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

탄생과 절망, 공포와 분노, 모순과 동경, 그리고 사랑. 삶은 문학의 뿌리이며, 삶을 빼버리면 문학은 기댈 곳이 없다. <문학이 태어나는 자리>는 이승수 경희대 혜정박물관 연구교수가 “문학이라는 창으로 삶을 엿보고, 밭 사이에 나 있는 길을 거닐며 삶을 돌아본 이야기다.” 탄생과 고독 등 26개 주제어를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 속에 피어난 삶의 순간들을 담았다. 동양과 서양, 고대와 현대, 소설과 시를 무시로 넘나든다. 지은이는 박지원의 <허생전>과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에서 절망을 끄집어낸다. 푸시킨의 <대위의 딸>과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는 사랑을 되새긴다. 문학은 죽음을 외면할 수 없다. 카뮈의 <이방인>은 “오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고리키의 <어린 시절>의 첫 장면은 수의를 입고 누운 아버지의 주검에 대한 묘사다. <닥터 지바고>는 어머니의 장례 행렬로 시작한다. <공무도하가>는 물에 빠져 죽은 남편이 그리워 “아아 당신을 어이할거나” 목 놓아 흐느낀다.


이렇듯, 삶에서 문학이 태어나고 문학은 다시 삶을 낳는다. 복잡한 기교와 ‘위대함’이란 선입견, “거짓 관념이 문학을 우리 삶에서 소외시켰”을 뿐이다. “현학적인 말들로 덧칠을 하니, 시는 늘 우리 삶과 겉돌게 마련이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교실은 난수표를 해독하는 고통의 시간이 된다.” 지은이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문학이 태어난 자리도, 들어갈 자리도 모두 나와 이웃의 삶이다.” /산처럼·9500원. 김순배 기자 marcos@hani.co.kr

■ 백과사전처럼 읽는 세계사


〈히스토리〉
〈히스토리〉
〈히스토리〉

역사를 다룬 책은 고르기부터 까다롭다. 단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고 싶어 집은 책도 결국, 그 일을 어떻게 얘기하느냐만 읽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역사책은 누군가의 관점일 수밖에 없다. <히스토리>는 역사의 편린들을 하나로 꿰는 보편적 사관의 욕심을 조금 버린다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장 인류의 기원에서부터 7장 현대까지 전 시대와 전 지역에 걸친 역사를 요약한 연대기다. 집필은 주로 글을 맛깔나게 쓰는 32명의 전업 작가들이 맡았지만, 장마다 특정 분야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역사가들이 감수를 했다.

루이 14세, 러시아 혁명,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 등 그 시대에 영향을 끼친 의미 있는 인물과 사건은 물론이고,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치·경제·문화적 특성들을 설명한 백과사전식 서술 형태이기 때문에 군데군데 아무 곳이나 펼쳐 읽기 편하다. 원제에 딸린 부제(The definitive visual guide)가 말해주듯이 책 속에 가득한 사진과 지도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우리는 패배의 개연성에 관심이 없다”고 한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입을 꽉 다문 모습에선 고집스러움이 묻어난다. “(많은 비판이 있지만) 유교는 조선에서 철저한 실용철학이었다. 인간들이 사회적으로 관계를 맺는 방식과, 특히 국왕이 더 넓은 자연세계와 소통하는 방식을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170쪽) 글은 항목마다 두 쪽을 넘지 않도록 간략하게 서술한 탓에 깊이는 느낄 수 없으나, 나름대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려고 애쓴 흔적은 있다. 윤은주·정범진·최재인 옮김/북하우스·5만8000원.

함석진 기자 sjham@hani.co.kr

■ 24년차 기자의 ‘한국 현실정치 해부’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

어정버정할 시간 없다. 자리도 적다. 200자 원고지 11장은 엄연하다. 생각을 자르고 으깨고 덜어야 한다. 칼럼 쓰는 기자의 괴로움이다. 권투 선수의 뜀박질처럼 짧고 세며 굵게 딛는 문장은 거기서 꽃핀다. 기자의 마음도 그 비좁은 곳에서 칼잠을 잔다. 그리고 꿈꾼다. “다른 세상을 꿈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땀 흘리고 있는 사람들, 이 체제로부터 고통받고 있는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 익명의 그들을 여기에 기록하고 싶다.” <경향신문> 정치·국제 에디터인 이대근 기자가 신문사 생활 24년 만에 첫 책을 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위하여>에는 지난 5년간 한국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모순을 헤집다가, 때론 슬픔에 몸 떤 칼럼 58편이 묶였다. 제목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가 그린 풍경처럼 “좌절하고 소외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달았다고 한다. “왜 가난한 이들은 자기의 슬픔과 분노와 고통과 꿈을 부자들에게 의탁해 풀려고 하는지. 왜 대표하는 자와 대표되는 자는 이렇게 어긋나고 마는지. 이 부조화, 어긋남이 목엣가시처럼 불편하다”라는 문장이 묵직하다. 거기엔 관객 민주주의로 전락한 대의 제도, 유치한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정당 구조, 현실을 개선하는 도구로 작동하지 못하는 정치 현실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 없이는 못 산다. 냉정은 냉소와, 열정은 열망과 통한다. 우리는 아직 열망해야 할 일이 많다. 낙원 같은 ‘와이키키’를 한반도에 이뤄내야 한다. 민주주의에 관객은 없다 …. 지은이는 여전히 2주마다 ‘정치 칼럼’을 쓴다. /후마니타스·1만3000원.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 프랑스인이 본 19세기 조선 감옥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

“그때가 거의 저녁을 먹는 때였는데, 옥졸들이 도둑 옥간 안으로 들어가서 어느 죄수에게 ‘나와! 목매러 가자’ 하였다. 벼락 같은 이 말에 도둑들은 이런 종류의 사형 집행에 익숙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또 굶주림으로 애타게 기다렸던 밥인데도 불구하고 모두 밥알 한 알도 삼키지 못하고 밥 사발을 내려놓았다.”(143쪽) 프랑스인 펠릭스 클레르 리델이 1878년 5월 3일에 목격한 조선의 교수형 집행 장면 중 한 대목이다. 포교 활동을 위해 조선으로 들어왔다 체포된 리델은 5개월간의 수감생활을 거쳐 석방 뒤 만주에 도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감옥에서 만난 조선인 교도관·죄수들의 모습, 형벌 방식, 벼룩의 크기까지 기록돼 있다. <나의 서울 감옥생활 1878>(유소연 옮김·1만6000원)은 이 회고록을 우리말로 옮긴 것으로, 한국문학번역원·명지대·엘지(LG)연암문고가 서양 고서를 번역해 내놓고 있는 ‘그들이 본 우리 총서’ 시리즈 중 여섯 번째 책이다. 함께 출간된 시리즈 일곱 번째 책인 <일본의 한국 통치에 관한 세밀한 보고서>(김윤정 옮김·2만3000원)는 미국 행정학자 얼레인 아일런드가 1900년대 초 일본의 통치 뒤 한국의 변화를 수치로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는 왕조시대보다 식민지 정부의 통치가 더 잘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식민지 근대화론과 맥을 같이하는 주장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다. 지은이는 조선 총독부 발간 자료와 스스로 입수한 자료를 기반으로 보고서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자료들이 실제로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는 이 책을 통해서 확인할 길이 없다. 살림 펴냄. 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

■ ‘풍요로운 공유’ 위한 코뮌주의


〈신자유주의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
〈신자유주의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
〈신자유주의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

최근 20~30년간 열병처럼 세계를 휩쓸었던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논리가 파탄을 맞았다. 신자유주의 전도사였던 미국과 영국이 앞장서서 자신들이 숭배했던 도그마를 탄핵한다. 정녕 신자유주의의 종말이 온 것일까? 한국의 대표적 좌파 문화운동가인 강내희 중앙대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특히 세계적 처방전과는 반대로 자본의 무한질주를 부추기는 한국(이명박 정부)에서, “신자유주의는 종언은커녕 위기라 부르기도 어려울 정도”다.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는 신자유주의의 지배, 나아가 자본주의에의 종속 자체를 극복하려는 대안으로 ‘코뮌주의’를 제시하고 전망을 탐색하는 책이다. 지은이의 관심은 코뮌주의를 문화적 관점에서 재해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문화운동의 방향과 과제를 설정하는 것이다. 코뮌(공동체)이란 낱말은 ‘함께, 서로’(com)와 ‘선물’(munus)이라는 라틴어 묶음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의 지배 이념은 상품미학과 소비문화다.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의 문화정책은 이런 현상에 권위주의 정치권력이 결합되고 그 폭압적 성격을 은폐한 기형아에 다름아니다. 1987년 체제는 형식적 민주주의의 요건을 갖췄지만, 그 본질은 사회 운영노선이 정치 우위에서 경제 우위로 바뀌는 과정이었다. 이런 ‘경제적 이성’의 전횡을 코뮌주의의 ‘풍요로운 공유’로 대체하는 문화사회 건설이 바로 문화운동이다. 지은이는 이를 위한 두 가지 실천적 의제로, 예술미학을 넘어선 사회미학과 교육운동에 대한 전략적 개입을 제시한다. /문화과학사·1만8000원.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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