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
크레이그 벤터 지음·노승영 옮김/추수밭·2만5000원 디엔에이가 이중나선 구조임을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처음 발견한 제임스 왓슨의 자전적 회고록 <이중나선>(1967)은 과학 발견의 극적 드라마를 보여준다. 두 젊은 과학자가 이름난 과학자들 틈바구니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때로는 우연한 행운과 도움을 얻고서, 마침내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을 이뤄 역사적 발견에 이르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전한다. 게놈(유전체) 시대의 본격 시작을 알린 미국 과학자 크레이그 벤터(63)의 자서전 <크레이그 벤터 게놈의 기적>에도 비슷한 이야기의 짜임새가 묻어난다. 미국 국립보건원 연구자였던 벤터가 민간 기업 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30억 쌍 인간 게놈을 해독하는 ‘대장정’에 나서면서 겪은 여러 어려움과 모험, 승리가 주된 줄거리다. 그는 디엔에이를 무작위로 빠르게 분석하는 혁신적 기법을 개발해 마침내 2000년 인간 게놈을 해독한 첫 과학자로 기록됐다. 과학저널 <사이언스>의 2001년 2월16일치는 283명 공동저자의 47쪽짜리 논문과 더불어 1.5m에 달하는 게놈 지도를 실어 역사적 위업을 기념했다. 하지만 과정은 “전쟁”이었다. 그가 개발한 ‘발현 서열 꼬리표’(EST) 기법이나 ‘전체 게놈 산탄총 분석’ 기법(일명 ‘샷건 기법’)은 디엔에이 조각들을 무작위로 분석한 뒤 ‘그림 맞추기’처럼 컴퓨터로 겹치는 부분을 이어 붙여 전체 지도를 완성하고, 아르엔에이(RNA)를 이용해 유전자들을 빠르게 식별해내는 혁신이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지원하고 18개국 과학자들이 참여한 인간 게놈 프로젝트와는 경쟁 관계에 놓였다. 이 경쟁을 벤터는 어떻게 기억할까? 책에서 둘의 경쟁은 ‘중세와 현대의 대결’ 식으로 그려진다. 디엔에이 조각을 하나씩 순서대로 분석하는 기존 기법은 “중세 수도사”의 방식이었고, 벤터의 기법은 “디엔에이 부호를 읽어내는 공장”의 방식이었다. 물론 결승점에서 먼저 웃은 이는 벤터였다.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한 <이중나선>의 제임스 왓슨이 <게놈의 기적>에선 벤터의 앞길을 가로막는 인물로 그려진 점은 인상적이다. “왓슨 패거리”는 정부 관료집단과 정부 쪽 게놈 프로젝트에 선 과학자들이며, 벤터는 혁신에 나서는 과학자다. 책에선 게놈 과학사의 산증인인 벤터의 연구 개인사를 자세히 볼 수 있다. 불과 2년 만에 인간 게놈을 해독한 ‘기적’ 같은 일을 해냈고, 이후 바닷물에 떠 있는 미생물 게놈들을 통째로 분석해 수많은 신종 유전자들을 찾아낸 새 기법을 제시했다. 이제 그는 게놈의 ‘분석’에서 ‘종합’으로 나아간다.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인공 박테리아를 만드는 일을 “내가 추구할 마지막 과제”라고 여기는 그는 ‘인공생명체 논란’의 한복판에 서 있다. “과학, 산업, 그리고 정치”라는 3부 제목처럼, 이 책은 주식시장과 경영권 다툼, 특허 전쟁에 출렁이는 기업 연구소의 과학 활동 면모도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과학은 산업이다. 또 과학자들이 이해관계에 따라 경쟁 관계인 <사이언스>와 <네이처>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슬쩍 보여준다. 이 대목에서 과학은 정치다. ‘실패를 두려워해 실험을 피하지 말라’ ‘훌륭한 아이디어를 위대하게 만드는 건 아이디어를 현실로 바꾸는 방법이다’ 같은 격언의 생생한 경험담이 이어진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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