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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미 쇠고기, ‘게임이론’으로 봐도 한국이 손해

등록 2009-04-17 20:14

미 쇠고기, ‘게임이론’으로 봐도 한국이 손해
미 쇠고기, ‘게임이론’으로 봐도 한국이 손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 ‘셸링 이론’ 적용
한-미 협상 경제적 득실 함수로 따져
MB 지지율 변동 과학적 명제로 설명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이종필 지음/글항아리·1만3500원

결국 <문화방송>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는 쫓겨났고 ‘피디 수첩’ 김보슬 피디는 ‘체포’당했다.

미국산 쇠고기는 더는 안전을 의심해볼 필요조차 없고 협상은 그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명예훼손이 될 정도로 완벽했던가? 이제 캐나다산 쇠고기에 대해서마저 같은 조건으로 문을 열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다시 물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인 입자물리학자 이종필씨가 쓴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에는 ‘게임이론’으로 한-미 쇠고기협상을 분석한 글이 들어 있다.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하 협정)이 체결됐을 때 한국이 얻는 이득을 100으로 잡는다.(논란이 있겠지만 정부의 주장을 반영했다) 미국도 이득을 얻게 되지만 미국 경제 규모가 한국의 10배 정도인 점을 참작해 그 규모를 10으로 잡았다. 그다음 요소는 쇠고기 수입 효과. 값싼 쇠고기 수입으로 축산농가를 비롯한 한국 쪽 시장은 타격을 받는다. 그 손해를 50으로 잡는다. 거꾸로 미국은 이익을 보겠지만 역시 경제규모를 고려해 그 10분의 1인 5로 잡는다.

이것으로 4가지 조합, 곧 한국이 미국 쇠고기에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도 협정을 인준하는 경우(A), 한국이 쇠고기를 수입하는데도 미국이 협정을 거부하는 경우(B),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거부하고 미국은 협정을 인준하는 경우(C),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거부하고 미국도 협정을 거부하는 경우(D)를 상정한다. D의 경우 양쪽 모두 손해도 이익도 없다. 이를 (x, y)=(한국의 이익, 미국의 이익) 식으로 표기하면 (0, 0)이 된다. A는 (50, 15), B는 (-50, 5), C는 (100, 10)이다. 따라서 양쪽이 합리적이라면 서로 득이 되는 C, 곧 한국은 쇠고기 수입을 거부해서 100을 얻고 미국은 협정을 비준해 10을 얻는 쪽을 택해야 한다. 이런 윈-윈 게임을 ‘비영합 게임’이라고 한다.

그런데 월등 힘이 센데다 안보상 특수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은 10을 얻는 C보다는 15를 얻는 A를 선호할 것이고, “한국이 쇠고기 수입을 거부하면 우리는 자유무역협정을 하지 않겠다”고 위협할 것이다. 그럴 경우 한국은 아무 이득도 없는 D보다는 그래도 50을 얻을 수 있는 A로 가야 한다. 이게 바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찬성하는 한국 정부 관료들의 한결같은 논리구조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그러나 이게 과연 최선일까? 지은이는 여기서 2005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전략이론가 토머스 셸링의 이론을 들고 나와 논박한다. 만일 한국 쪽이 쇠고기 수입으로 입을 손해 규모가 협정 체결 이득의 두 배인 200이라 주장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럴 경우 A는 (-100, 15), B는 (-200, 5), C는 (100, 10), D는 (0, 0)이 된다. 말하자면 한국이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면 어떤 경우의 조합이든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셸링에 따르면 성공적인 협상방법은 상대방에게 “그걸 이행하면 당신보다 내가 더 많이 다친다”는 사실을 제시하며 압박하는 것이다.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면 손해가 50이 될지 200이 될지는 중요하지 않다. 설사 실제 손해가 50이 나더라도 협상자는 200을 손해본다고 들이대며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관리들은 거꾸로 행동했다. 지레 손해 규모를 50이라 설정해 자기 손을 묶어 놓고는, (100, 10)은 안 되니 (50, 15) 조합이 최선이라고 오히려 자국민들을 회유하고 압박했다. 급기야 거기에 반대하는 시민과 언론인들을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고 유력 신문들은 이를 선동했다.

물론 위 모델에서 수치를 바꾸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 이익을 더 크게, 손해를 더 적게 잡을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손해가 200이 아니라 300, 500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광우병은 프리온 단백질이 원인물질인지조차 아직 명백히 밝혀져 있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정체가 모호하다. 게다가 긴 잠복기와 통계의 불확실성 등으로 누구도 쇠고기의 안전을 장담할 수 없다. 특히 미국 쇠고기의 위험성에 대해선 일본 등 아시아 다른 나라들이나 유럽 국가들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판에 국민의 생명과 건강, 통상주권을 몇 푼의 경제적 이득(이것도 사실은 불확실하다)과 맞바꿀 수 없다는 주장과 미국 쇠고기는 안심하고 먹어도 된다는 주장 어느 쪽이 더 위험한가? 10년 뒤에 발병할지도 모른다는 다수의 불안감을 “그렇게 느끼는 사람은 사먹지 않으면 된다”는 말로 해소하려는 정부를 가진 나라가 정상적인 국가인가?

여러 실책에도 불구하고 정권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까닭을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는 ‘뒤엠-콰인 명제’(증거에 의한 이론의 과소결정)로 설명한다. 예컨대 수성의 근일점 이동 관측을 통해 뉴턴 역학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사람들은 대부분 오히려 관측에 문제가 있거나 고려하지 못한 여러 요소들의 부수적 효과 때문일 거라며 뉴턴 역학에 대한 믿음을 철회하지 않았다. 뉴턴 역학을 무너뜨린 것은 아인슈타인의 중력이론, 곧 일반상대성이론이었다. 아인슈타인 이론이 훨씬 더 포괄적이고 더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더 그럴듯한 이론이 등장하지 않는 한 기존 이론은 여러 오류가 검증되더라도 유지된다. ‘관찰의 이론 의존성’과도 상통하는 이 명제는 예컨대 대선 과정에서의 비비케이 의혹, 당선 이후 경제공약, 쇠고기 개방, 용산 참사, 남북관계 등과 관련한 여러 정책 오류에도 불구하고 정권 지지율에 큰 변동이 없는 현상을 설명하는 데도 그럴듯하게 적용된다. 지은이가 보기에, 요컨대 ‘이명박 이론’이 다른 후보들 ‘이론’보다 더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 이론은 ‘조작’되고 ‘구성’됐으며 그 주역을 가진 자들과 유력신문들이 담당했다고 본다. 국내외적으로 평가받는 권위 있는 ‘학술지’가 없는 우리 현실에서 구성된 이론은 더욱 그럴듯해 보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과학적 사고방식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론물리학자가 설파하는 ‘세상 새롭게 읽는 법’이다. 정치, 사회뿐만 아니라 드라마 <태왕사신기>와 <주몽>, 영화 <신기전>, 그리고 김수현과 <니모를 찾아서> 등을 비교하고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출현하는 양자역학의 세계도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살핀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 지은이와 함께

“피디 체포, ‘기초 과학 마인드’ 없는 탓”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저자 이종필(38)씨.
〈대통령을 위한 과학에세이〉 저자 이종필(38)씨.

“우리 사회가 과연 문명사회라고 할 수 있나?” 기초과학에서부터 정치·사회까지 막힘없이 얘기하던 이종필(38)씨는 “답답하다”고 했고, “3류” “분서갱유”라는 말까지 입에 올렸다.

“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로 가는 데는 나라에 대한 총체적 평가, 곧 브랜드 효과가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 일본에는 대형 입자가속 설비가 넷쯤 될 텐데, 거기서 과학자 수천명이 일하고 있다. 그 실험 결과들이 유수의 국제 학회지들에 좍 실리고 세계 선두그룹들이 모두 그걸 들여다보고 인용한다. 그 가치, 브랜드 효과가 얼마나 크겠는가.” 그는 대학원에 가서 기초과학 교과서들에 일본 과학자들이 숱하게 등장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기초과학 수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했다. 일본 쓰쿠바의 고에너지연구소(KEK)에 있는 입자검출기는 쿼크들의 섞임에 관한 고바야시-마스카와 이론을 실험적으로 검증하여 그들한테 노벨상을 안기기 위해 건설되었다. 2008년 노벨 물리학상의 절반은 그들한테 돌아갔다. 이씨는 거기에 한국 5개 대학이 컨소시엄 형식의 연구에 동참하고 있는데 “상주인력으로 달랑 석사과정 학생 2명만 파견하고 있다”고 했다. 그쪽과 보조를 맞출 수 없을 만큼 실력 차가 큰 것도 문제지만 “마인드가 더 문제”란다. 특히 “제대로 후학을 키운다는 교육 마인드가 전혀 없는 (한국 과학계) 시니어들의 이중잣대”를 그는 개탄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엔 과기부를 통폐합해버린 정부의 마인드는 더 한심하다. “기초과학에 대한 개념부터 전혀 다르다. 정부는 기초과학을 순수과학이 아니라 돈벌이와 직접 관련되는 기술이나 공학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씨는 새 정부 등장 이후 “개념에 일대 혼란이 일어났다”고 했다. 실용·친북·좌파 등의 분류 기준, 검찰·법원 등 공권력의 대처 방식을 보면 완전히 뒤죽박죽이 돼 과학을 떠받치는 일관성·보편성·필연성 등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과학에선 권위나 기성 가치에 도전하는 대안(얼터너티브), 다른 생각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건 축복이며 북돋워줘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그게 건국 이래 철저히 차단당했다. 기득권층이 빨갱이니 친북 따위로 편가르기를 하며 질식시켰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바로 그런 대안의견을 허용하라는 요구이기도 했다. 전두환 시대로 그런 시절이 끝나나 했는데, 이명박 정권 이후 다시 그 시절이 되돌아오고 있다.”

그가 “열 받죠”라고 얘기한 신경민 앵커 교체나 김보슬 피디 체포도 같은 맥락에서 본다. “방통위 뜨고 할 때 지금이 어느 시댄데 설마…라고들 했지만 지금 보면 결국 장기집권 계획을 바탕부터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새로운 매트릭스를 깔고 있는 것이다. 신 앵커의 클로징멘트를 많은 사람들이 속 시원하다며 반긴 것은 침묵하는 다수의 생각이 표출된 걸로 볼 수 있다. 그걸 막는 건 결국 그 사람들을 위협세력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위협이 될 만큼 다수라고 판단하지 않았다면 굳이 교체하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네르바 구속 사건까지 덧붙여 그는 이를 “분서갱유”라고 했다.

이씨는 21세기 최대의 안보위협은 기상이변과 자원고갈이 될 것이라며 “그게 다 기초과학과 관련이 있다”고 했다. 기초과학의 성과를 활용한 <니모를 찾아서>가 만들어낸 엄청난 부가가치를 한국 영화들은 따라갈 수 없고 한류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우리 주변 세상을 우리가 제대로 인식할 능력이 있느냐의 여부가 문명화의 척도”라며, 기초과학 육성 없이 문명이니 선진화니 하는 건 헛소리라고 했다.

글 한승동 선임기자,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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