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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씩씩하고 유쾌한 진짜 공주들의 동화

등록 2009-05-01 18:34수정 2009-05-01 18:47

〈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
〈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




〈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
하인츠 야니쉬 글·젤다 마를린 조간치 그림·강명희 옮김/한겨레아이들·1만2000원

이 책에도 공주들이 나온다. 매트리스 100장 밑에 깔린 완두콩 한알 때문에 뒤척이고, 왕자가 구두를 들고 올 때까지 기다리고, 울면서 괴물에게 시집가는 예민하고 섬약한 공주들이 없을 뿐이다. 대신 호박을 깔고 누워도 곯아떨어지고, 스스로 단장해서 왕을 찾아가고, 무서워도 이를 앙다물고 앞을 향해 걷는 딸들이 있다. <딸에게 용기를 주는 27가지 이야기>엔 보는 사람 속이 터질 것 같은 고전동화 속의 미욱한 여자들 대신 씩씩한데다 유쾌하기까지 한 여자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런데 이 책은 <흑설공주> 같은 여성주의 시각으로 다시 쓴 동화와도 거리가 있다. 굳이 동화의 전복을 꿈꾸지 않기에 영리한 여자들이 세상을 구하느라고 피곤하거나 잔인해질 까닭이 없다. 공주가 패션쇼에도 나오고, 남자들을 두루 편력하는 세상에서도 사과를 먹고 쓰러지는 어리석은 공주 이야기가 수백 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옛이야기의 다면성과 힘을 믿는 작가는 원전에 조금씩만 손을 대서 몰라보게 달라진 딸들의 세계를 그려냈다.

씩씩하고 유쾌한 진짜 공주들의 동화
씩씩하고 유쾌한 진짜 공주들의 동화
그림 형제의 ‘꾀 많은 요리사 그레텔’ 이야기는 이 책에도 그대로 나온다. 원전에서는 주제넘어 보이던 그레텔이 어쩐지 이 책에선 영리하고 자존감 높은 요리사로 보일 뿐이다. 빨간 모자가 늑대에게 속아서 사냥꾼이 구해주는 것은 알려진 동화 그대로지만, 다른 늑대를 만났을 때는 할머니와 힘을 합쳐서 늑대를 물리친다. 파리 일곱 마리를 때려잡은 힘으로 공주와 결혼한 그림 형제의 ‘용감한 꼬마 재단사’는 왕자까지 휘어잡는 ‘용감한 여자 재단사’로 변신하는데, 그 모양이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어딘가에 분명 ‘단 한 방에 일곱 놈’이라고 쓴 허리띠를 휘두르는 여자 재단사가 살았을 것만 같다.

여성성에 알록달록 색을 입히면서도 옛이야기를 충실히 전달하는 것이 미덕인 이 책은 비련의 인어공주를 잊느라 힘들었던 엄마에게 새로운 판타지를 심어준다. 내 딸은 아예 공주들의 잿빛 성에 들르지 말고, 하인츠 야니쉬의 ‘호박공주’가 새로 페인트칠 한 하늘색 성으로 곧장 나아가, 매일매일 신나게 춤추는 리스헨, 포도주를 좋아하는 그레텔, 기적의 새와 이야기할 줄 아는 사라 들이 숨쉬는, 자족적이고 충만한 세계에 살았으면 좋겠다. 치아 교정기 낀 소녀를 만나러 오는 소년, 용기 있는 여자를 기다리는 추장, 호박공주를 알아보는 왕자들은 초대 가능하니 읽혀 보시라.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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