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을 버려야 경제가 산다
〈탐욕의 종말〉
이달 들어 증시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뉴욕 증시는 위기감을 벗어난 듯하며, 우리나라 코스피 지수는 1500선을 당장에라도 뚫을 듯한 기세다. ‘반토막’ 났던 적립식 펀드가 원금을 회복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드디어 회복기에 들어선 것일까? <탐욕의 종말>의 필자 폴 메이슨은 이런 ‘조기 바닥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이번 금융위기는 적어도 지난 10년 동안 벌어진 금융산업 ‘일탈’(금융 규제 완화, 파생금융상품 발흥 등)의 결과인 만큼, 그렇게 쉽게 극복될 문제가 아니라는 진단이다.
특히 필자의 주장은 어려운 경제이론에 바탕한 것보다 현장 취재의 결과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필자는 2001년부터 영국 <비비시>(BBC)의 ‘뉴스나이트’ 프로그램에서 경제 담당 에디터로 미국 월가를 현장에서 취재해왔다. 이 과정에서 월가에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 편의 경제소설이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어려운 금융산업의 난해한 전문 용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아도, 수백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 최고의 금융기관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파산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초보자를 위한 경제교과서 구실도 할 듯하다. 금융 엘리트들의 거대한 오만에 대한 분노도 적절해 보인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필자는 결론을 향해 조심스럽게 접근해간다. 이번의 금융위기는 근본적으로 ‘자유시장’이라는 허상에 기반한 신자유주의의 종말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필자는 ‘더 좋은 경제 모델’ 찾기라는 과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솔직하게 끝맺고 있다. 김병순 옮김/한겨레출판·1만3000원.
안창현 기자
blue@hani.co.kr
정치세상에 뛰어든 ‘불량 청년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몽상하는 ~.”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씨가 ‘이들’에게 붙여준 수식어다. 이들은 이명원과 오창은, 하승우씨다. 학계 부조리와 문화권력에 도전해온 ‘불량 청년들’은 2년 전 의기투합해 지행네트워크(이하 지행)를 꾸렸다. <나는 순응주의자가 아닙니다>는 지행이 그간 얻은 성과와 시행착오의 결과물이다. 손쉽게 타협하지 않는 지행의 지적 작업은 기존의 것들을 흔들고 뒤집는 데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정치공동체를 꿈꾸고 “실천 가능성을 성실히 모색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다.”(김종철) 책의 절반에서 풀뿌리민주주의, 생활정치, 농민공동체, 직접행동 민주주의를 다루는 데서 알 수 있다. 에필로그에서는 국가와 시장의 극복을 위한 협동조합 모델을 제시하고 지식협동조합을 제안한다. 지행도 그 실험 가운데 하나다.
‘불량 청년들’의 실험은 전일적 자본주의에 포섭된 ‘앎과 삶이 분리된 지식인’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다. 하여 공부의 즐거움에 함몰될 기미를 보이는 기존의 비제도적 지식공동체와도 차별성을 지닌다. 이들에게 대중을 향한 실천을 떼놓은 앎은 의미가 적거나 무의미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현실에 대항해 지식인들은 자신이 유착한 지배엘리트 그룹과 단절을 감행하는 동시에, 자신이 관심을 닫은 대중들을 향해 지적 실천을 개방해야 한다”(이명원)고 선언한다. 이 책은 모두를 위한 책은 아니다. 술술 읽히는 책도 아니다. 하지만 순응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시장과 국가의 권력에서 벗어나 새로운 공동체를 몽상하고 싶다면, 꼭 읽어봐야 할 책이다. 지행네트워크 지음/도서출판 난장·1만7000원.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민주주의X’로 희망의 항해
〈미지의 민주주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의 ‘미지’는 양면적 개념이다. 미지는 때론 불안감으로, 때론 희망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안정된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자에게 미지는 불안감이다. 그 어떤 변화도 그에겐 손실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미지는 희망이다. 왜냐하면 알려지지 않은 미래일지라도, 그것이 변화를 의미한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어떤 사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1982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상준 경희대 엔지오대학원 교수의 <미지의 민주주의>는 미지가 갖는 불안감이 아니라, 희망에 기대어 얘기를 풀어간다. 여기서 <미지…>는 명확하게 두 가지를 반대한다. 그 하나는 ‘역사의 종언’으로 대표되는 정체다. 이 책은 1990년대 초 사회주의권의 체제전환 직후 쏟아져 나온 그 많은 ‘종언’들에 다시 종언을 고하고 있다. ‘역사의 종언 그 너머의 역사’를 얘기하기 때문이다. <미지…>는 역사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하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썩는 것임을 강조한다. 하지만 <미지…>는 또한 80년대식의 ‘확정된 미래’ 역시 반대한다. 지은이가 대학을 떠나 노동운동에 전념했던 90년대 초까지의 시기는 ‘확정적 변혁이론의 시기’였다. 하지만 그 확정성 또한 ‘종언 담론’이 만들어낸 현실의 정체와 비슷한 효과를 낳았음을 80년대에 열정을 바쳐 운동에 참여했던 많은 이들이 기억한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그러나 미래로 열려 있는 것.’ 지은이는 그것을 우리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지목한다. 그가 가리키는 미래는 사뭇 역동적이다. /아카넷·1만8000원.
김보근 기자
tree21@hani.co.kr
‘잠-일-술 세대’ 노동자의 살길은
〈아빠는 현금인출기가 아니야〉
세상이 무인도다. 제 앞가림 걱정뿐이니 생존을 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등 국민 취급 받으며 허우적대는 비정규직. 시장만능주의가 부른 위기 앞에선 정규직이라 해도 뻐길 것 없다. 지쳐 잠자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며, 짬이 나면 술이나 마시는 건 마찬가지니. 금속노조 정책국장인 저자 조건준은 이 시대의 노동자를 가리켜 ‘잠-일-술 세대’라 말한다. 양극화는 자본주의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대기업 노조와 하청 비정규직 노조, 중앙노조와 단위노조, 잘리는 자와 살아남은 자. 고용불안에 질질 끌려다닌 10여 년, 잠일술 세대의 노동운동도 울퉁불퉁 처지다. “고용불안증이라는 프레임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경쟁자로 만들었고, 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고용방패로 삼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이 ‘고용 경쟁’의 악순환을 넘어서자 한다. 고립된 대공장 노조 중심의 공성전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진지전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눔은 곧 곱하기다. 나눔으로써 조직되지 않았을지라도 조직된 노동자들보다 몇 배의 노동자들이 함께 공감하는 다수의 힘을 만들 수 있다.” 위태로운 노동운동에 새 날개를 달자는 주장이다. 끌려가지 말고 끌고 가자 한다. 1998년 현대차 정리해고부터 최근 쌍용차 사태까지 실무자로 참여해 두루 살핀 현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민주노총 ‘과두정치’부터 대공장 노조 ‘깃발부대’까지 날선 비판도 마다 않는다. 인간을 위한 노동운동이 인간다움을 포기해선 안 될 일. 조건준의 화두는 “함께 살자”다. /매일노동뉴스·1만5000원.
최정봉 기자
bong2ne@hani.co.kr
역사적 사실이란 ‘해석학적 사실’
〈이야기의 철학〉
역사란 무엇인가? 고전적 질문에 언어철학 전공자인 글쓴이는 ‘인간은 과거를 어떻게 인식하는가’로 답한다. 과거는 결국 ‘기억하는 것’(상기)이다. 문헌사료조차 이미 언어화하는 과정의 해석을 거쳤기에, 역사적 사실은 결국 이야기하는 행위가 여러 차례 변용된 ‘해석학적 사실’일 뿐이다. “루마니아 혁명을 전후로 차우셰스쿠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일변하자 서둘러 ‘과거’를 수정한 사람들이 있었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역사’라는 이름이 담보한다고 여겨졌던 객관성을, 한계를 내포한 ‘상기’로 대체하는 작업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활발하게 진행중이다. ‘객관성’의 탈신화란, 보수언론을 비판할 때 그들의 프레임보다도 일관성 없음에 초점을 두는 누리꾼들부터도 체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이야기’가 논란이 됐던 이유는 오히려 저자 후기에서 찾을 수 있다. “이야기론 그 자체로부터는 ‘정치적’ 또는 ‘윤리적’인 결정을 정당화하는 어떤 기준도 도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니, 나는 좀더 나아가 ‘도출될 수 없다’가 아니라 ‘도출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여러 시선들의 ‘이야기의 집성’이다. “‘계급투쟁의 역사’와 ‘만세 일계의 천황가의 역사’ 모두가 이야기 행위의 소산이라는 관점”처럼, 해체된 권력 속 역사는 이야기라는 이름 아래 균질해진다. 그래서 소위 역사적 주류에서 ‘소외된’, 실질적 권력은 쥐었으되 해석의 권력을 쥐지 못한 이들이 둘러쓰는 가면은 때로 탈역사주의와 유사하게 느껴진다. “역사가는 당장의 정치 상황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지적 공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란 말이 막연한 것도 그래서다. 노에 게이치 지음·김영주 옮김/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1만8000원.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온갖 과학+그래픽 ‘새 지식소설’
〈스피벳-어느 천재의 기묘한 여행〉
미국 몬태나의 한적한 시골에 사는 12살 소년 테쿰세 스패로 스피벳에게 어느날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대륙 반대편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이 소년에게 위대한 자연과학자에게 주는 베어드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니 워싱턴으로 오라고 했다.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그동안 유명 학술지에 세밀한 과학도해를 기고했던 스피벳은 다음날 새벽 집을 나서며 1800마일의 긴 여정을 떠난다. 그는 이 여정에서 겪은 온갖 사건들을 세밀한 도해로 그리고 인문지리, 자연과학, 역사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스피벳의 여정은 북미대륙의 잡동사니 역사이자, 지질학이자, 자연생태이자, 민속학이다. 자신이 워싱턴으로 가는 길을 거슬러 몬태나까지 올라간 조상들의 개척과 모험의 비밀도 밝혀지면서, 픽션의 재미도 가미된다. 이 때문에 <스피벳>은 성장소설이자, 새로운 지식소설이다. 페이지마다 실린 총 300여컷의 세밀하고 기발한 그림과 지도는 소설의 새로운 영역 개척이라 할 만하다. 세밀한 지도, 백과사전을 방불케 하는 잡다한 지식의 소개, 컷과 도해들과 어우러진 편집 등은 이 책이 소설인지 논픽션인지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모든 장르의 정수를 담았다”고 평가했다. 대학 시절부터 이 작품을 구상했다는 저자 레이프 라슨은 파리의 감옥에 갇힌 노인의 회상이라는 애초의 구상을 천재 소년의 대륙횡단기로 바꾸며, 그 여정을 취재했다고 한다. 소설의 형식이 이렇게도 변할 수 있는지, 또 앞으로 소설가는 글재주뿐 아니라 그래픽 디자이너 재주까지 겸비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레이프 라슨 지음·조동섭 옮김/비채·2만2000원.
정의길 기자
Egi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