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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책 중독’ 행복한 열병에 빠진 인생들

등록 2009-09-25 18:32수정 2009-09-25 18:33

〈한국의 책쟁이들〉
〈한국의 책쟁이들〉




〈한국의 책쟁이들〉
임종업 지음/청림출판·1만3800원

책쟁이들이 시조로 모실 만한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는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단다. 그는 추위를 견딜 수 없을 땐 <한서> 한 질을 깔고 잠을 청하고, 식구들이 굶주림을 이기지 못할 땐 <맹자> 한 질을 팔아 식량을 구했다니 책은 마음의 양식일 뿐 아니라 생활의 자산인 셈이다.

여기 이덕무의 후예들이 있다. 쌓이는 책 때문에 방구들이 내려앉거나 간수할 자리가 없어서 집을 옮긴다. 주체할 수 없는 책 욕심으로 월급을 탕진하는 이들은 양반이고, 빚더미에 눌리기도 한다. 아예 직업을 바꾼 사람도 여럿이다. <한국의 책쟁이들>은 책 때문에 아니면 책 덕분에 인생의 큰 가닥을 바꾸고 흔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다. <한겨레> 임종업 선임기자가 2006년 5월26일부터 1년 동안 <한겨레> 지면에 연재했던 28명 책쟁이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책 제목을 보면서는 한 포털에서 연재한 ‘지식인의 서재’라는 기획처럼 권수와 책장이 압도적인 서재를 보겠다는 기대를 할 법도 하지만 웬걸,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만으로 한 권이 빼곡하다. 하루에 3권씩을 읽는 민희식 교수나 10만여점의 고서와 자료를 모은 화봉책박물관 여승구 관장처럼 혀를 내두를 만한 열독가도 있고 수집가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중간쯤 어드메서 그저 책이 좋아 찾고, 모으고, 읽는 사람들이다.

낮에는 옥수수를 팔고 밤에는 전작주의자가 되는 화천 상서우체국장 조희봉씨, 오토바이에 책을 싣고 40년 동안 고물상과 헌책방 사이를 오간 김창기씨, 집에 4000권 책을 쌓아 두고도 휴일마다 도서관에서 사는 김태석씨 등이 그들이다. 성서, 도교 경전에다 유대교 경전까지 탐독하는 청소담당 공무원 이기대씨는 또 어떤가. 평범한 내 이웃들 속에 이런 사람이 있었냐고 눈이 번쩍 뜨일 일이다. 책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자신의 중독증은 어느 수준인지 가늠해볼 만하겠다. 지은이도 몇 년 전 집의 책이 5000권 정도가 되었을 때부터 헤아리기를 그만두었단다.

이들의 못 말리는 책 사랑이 여타 수집벽과 다른 점은 소유하는 그 순간부터 어떻게든 읽고 나눌 궁리를 하게 된다는 점이다. 국민대 교수직을 정년퇴임하면서 1.5t 트럭 여섯 대 분량의 책을 강남대 도서관에 기증한 이상보 박사, 아끼던 책을 수해로 잃고 나서는 책이 모이는 대로 남에게 보내버리는 동두천 시인 김경식·이주원 부부, 비종교인들에게 교회 도서관을 거리낌없이 열어젖힌 은광교회 김종대 목사 등은 한결같이 책의 중간역을 자처한다. 여럿에게 읽힐 뜻으로 만들어진 책의 소용을 일깨운다.

아끼고 남은 책들로 꾸려진 서재는 누군가의 삶과 필생의 과제를 보여주기도 한다. 헌책방 마니아로 이름 높은 박상준씨는 에스에프(SF)소설에서 독보적인 존재다. 방대한 한국어사전을 수집해온 국어학자 박형익씨는 ‘한국어사전 편찬사’를 계획한다. 2만권 장서를 깔끔히 아끼고 다듬는 박세록씨는 그동안 모은 개화기 풍경 몇 가지를 책으로 낼 생각이다.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아끼고 모은 자료를 보태 드디어 <친일인명사전>을 펴냈다. 그저 책이 좋아서 샀다지만 삶을 보태니 더없이 행복한 풍경이다. 책 구경 한번 잘 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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