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진화한다〉
결정론-비결정론 화해 시도
“선택능력도 오랜 진화의 산물”
“선택능력도 오랜 진화의 산물”
〈자유는 진화한다〉
대니얼 데닛 지음·이한음 옮김/동녘사이언스·1만8000원 내가 마음을 먹고 내 손가락을 한 번 까닥거렸다고 하자. “(그) 결정은 자발적일까? 아니면 우리에게 그저 일어나는 것일까?” 1980년대 벤저민 리벳이라는 신경과학자가 오래된 ‘자유의지 논쟁’에 다시 불을 지피는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한테 의지에 따라 손가락을 까닥거리게 하고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의 뇌에 일어나는 전기신호 반응을 관찰했더니, 까닥거림 결정을 내렸다고 의식하기 0.3~0.5초 전에 이미 뇌는 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후에 여러 다른 실험들에서 뇌의 이런 ‘사전 준비’는 결정의 순간보다 거의 1초가량 또는 그 이상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실험들은 우리가 믿는 자유의지라는 게 뭔지, 그것은 단지 뇌에서 그저 일어나는 무엇일 뿐 실체는 없는 게 아닌지 하는 심각한 논쟁을 일으켜왔다. 인지과학·철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대니얼 데닛(67·미국 터프츠대학) 교수의 저서 <자유는 진화한다>는 이런 논쟁의 한복판에 서서, 난해한 물음에 진지하게 응하는 철학과 과학 탐구의 산물이다. 책의 목적은 지은이가 말했듯이, “비물질적인 영혼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의 발전 덕택에 신빙성을 잃은 상태”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고 말하는) 그들의 생각이 왜 잘못되었는지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는 강한 결정론과 자유지상주의를 모두 비판한다. 물리 세계는 인과관계에 따라 결과가 정해져 있다는 강한 결정론의 논리 모형들을 꼼꼼히 따져보며 균열을 찾아내고, 또한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에 기대는 자유지상주의의 순진함을 드러내고, 또한 자연과학의 성과를 두루 흡수하는 식으로, 복잡한 논증과 사색의 길을 걷고 나서 그가 내놓은 결론은 한마디로 ‘과학과 철학의 화해’이며, ‘결정론과 자유지상주의의 화해’다.
다윈주의자 ‘자유의지’를 품다
강한 결정론은 물리 세계에서 원인과 결과는 모두 분석되고 예측할 수 있으며 자유의지는 착각이거나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데닛이 파고든 결정론의 허점은 결정론에 늘 따라붙는 ‘불가피성’이 지나친 주장이라는 것이다. 물리 세계에 정해진 시스템이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그런 결정론적 시스템을 어떻게 설계하느냐는 또다른 문제이며, 설계자에 따라 어떤 결과는 ‘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앎’과 ‘피할 수 있음’은 자유에서 중요한 개념이 된다. 비결정론의 자유를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에 대해선, 양자물리학의 비결정론이 어떻게 이 경이로운 자유의지를 낳는지 명확하고 일관된 그림으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데닛은 비판한다. 결정론을 거부할 뿐 비결정론을 증명하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데닛은 자연과학의 유물론과 결정론을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의 의식과 자유의지를 물질의 결정물만으로 바라보지도 않는다. 이런 점에서 그가 전하는 제3의 논증은 상당히 섬세하게 읽혀야 한다. 그렇더라도 논증의 원동력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은 ‘다윈 진화론’이다. 책의 제목이 보여주듯이,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며 지상에서 일어난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얻어진 산물이라는 것이다. 영국의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가 얘기했던 문화 유전자 ‘밈’(meme)과 생물 유전자 ‘진’(gene)의 상호작용에 의해 획득됐으며, 자연 환경에 대응해 최선의 선택을 할 줄 알았던 ‘선택 기계’ 인간만의 능력인 것이다. 신경 반응 실험만으로 자유의지의 존재에 급진적 의문을 제기했던 벤저민 리벳 유의 실험들도 데닛의 강한 비판 대상이 된다. 번역서에 실린 해제에서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는 “많은 철학자, 인문주의자, 종교 사상가들은 일종의 자유론자들이라고 볼 수 있고, 강성 결정론자의 대부분은 과학자들”이라며, “(데닛은) 결정론과 운명론이 동의어가 아니고 결정론과 자유가 모순 관계가 아니며 자유의지는 환상이 아니라 실재라고 주장”하는 ‘약한 결정론’ 쪽에 서 있다고 소개했다. 철학자로서 데닛은 인지과학, 신경과학,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발견이 심리와 자유의지, 윤리를 성찰하는 철학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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