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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안겨봐요, 당산할매 넉넉한 품에…

등록 2009-11-13 19:11

〈당산할매와 나〉
〈당산할매와 나〉
200살 팽나무와 나눈 교감과 서정
포근한 질감 살린 ‘이야기 풍경화’




〈당산할매와 나〉

윤구병 글·이담 그림/휴먼어린이·1만2000원

철학자이면서 변산공동체를 만들어 농사꾼이 됐던 윤구병이 새로 낸 그림책이 낯설다. <심심해서 그랬어> <바빠요 바빠> <꼬물꼬물 일과 놀이사전> 등에서 너른 밭을 책상 삼아 농촌 풍경과 사람, 동물살이를 자상하게 일러주던 작가가 아닌가. “이 나무가 당산할매다”라며 시작하는 <당산할매와 나>는 별난 가르침 드러내지 않고 구름뫼에 당산할매 곁다리로 살 때 이야기를 담은 풍경화 같은 그림책이다. 화가 이담이 왁스페인트를 바른 위에 철필로 긁어내며 그렸다는 당산할매 그림은 일반 물감으론 표현하기 어려웠을 나무의 질감으로 육중하다. 사계절을 담아낸 풍경이 책장마다 압권이다.

책의 시작이 변산에서 살 곳을 찾아 계곡을 헤매던 1995년이라고 하니 변산공동체를 다음 세대에 넘기고 떠버린 작년까지 13년 세월을 담은 셈이다. 그러나 이 책에선 분주한 사연도, 그 나무에 깃들인 오만가지 생명체 이야기도 일체 걷어내버렸다. 이야기라면 작가가 당산할매라고 이름 붙인 이백년쯤 묵은 팽나무에 아침저녁으로 절하던 이야기, 여름이면 당산할매에 아이들이나 반딧불이가 찾아드는 풍경을 몰래 훔쳐보던 이야기랄까.

안겨봐요, 당산할매 넉넉한 품에…
안겨봐요, 당산할매 넉넉한 품에…

변산공동체를 돌아보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왜 하필 이름 없는 고목 이야기였을까. 당산할매는 밭머리에 지키고 있으면서도 일껏 심은 곡식 다 훔쳐먹는 새도 안 내쫓고 들쥐도 모른 척하신다면서 왜 그 나무에 기대어 살았을까. 이 책 전에도 작가 윤구병은 팽나무 할매에 대한 특별한 애정을 전했다. 꼭두새벽 별을 보는 곳도 이 나무 밑이요, 오체투지를 드리는 것도 가끔 끌어안고 볼을 부비는 대상도 이 나무라고 했다.(<가난하지만 행복하게>) “지금 당장 ‘만드는 문화’에서 ‘기르는 문화’로 전환하지 않으면 너희에겐 미래가 없다”는 팽나무 할매의 역정 섞인 가르침을 살갗으로 듣기 위해서였나보다.(<잡초는 없다>) <당산할매와 나무>에선 “뼈가 허옇게 드러나도록 다친 손마디”를 그대로 내버려두었더니 감쪽같이 아물었다며 이것도 당산할매 덕분이란다. 오랜 세월 동안 속은 썩어서 텅 비어버렸지만 탄탄한 껍질로 자신을 감싸서 더 굳건하게 만드는 당산할매의 자기 치유 능력을 본받은 결과라는 것이다. 책 말미에 칠순이 가까워지는 주인공은 그동안 의지하던 당산할매마저도 마음속에서 떠다밀고 그 자리를 뜬다. 이제 그만하면 자신이 나무가 되어서 상생의 지혜를 전할 차례가 됐다는 뜻일까.

작가는 “예전 같으면 교육정보도 줄 겸 여러 생명체 이야기를 살아 있는 교과서 만들듯 썼겠지만 이 책은 나무에 대한 교감과 서정을 일깨우는 책으로 썼다”고 했다. 또 “이 책만큼은 꼭 엄마가 읽어주며 아이가 그림을 만지작거리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어머니를 찾는 이유는 그간 작가가 당산할매 젖꼭지를 만지며 잔뜩 배를 불린 덕분이겠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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