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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112년이 한결같은 부채바람 ‘비방’

등록 2009-12-04 19:54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선구적 경영에 민족기업 면모까지
최초·최장수 브랜드 ‘활명수’ 톺아봐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
예종석 지음/리더스북·1만3000원

“아, 드디어 사랑하는 님과 만나기로 한 약속의 그날이 왔건만 난 어찌하여 미련하게 과음 과식을 하였단 말이냐?/ 아이고 배야!/ 그러나 여기 활명수가 있는 것이었으니 시원하고도 뒤가 깨끗하구나./ 아 잊으랴 잊을쏘냐?/ 배 아픈 데 활명수, 부채표 활명수!” 1960년대 말 동화약품이 텔레비전에 내보낸 ‘부채표 활명수’ 광고다. 속이 더부룩할 때 ‘까스활명수’ 한번 안 찾아본 이 없을 것이다. 예전엔 콜라·사이다보다 더 맛있는 ‘청량음료’이기도 했다. 활명수의 인지도가 97.9%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한글을 뗀 사람이면 누구나 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이자 최장수 브랜드인 활명수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 나왔다. 예종석 교수(한양대 경영대학장)가 낸 <활명수 100년 성장의 비밀>은 경영학으로 톺아본 활명수 이야기다.

지은이는 궁중 비방에서 탄생한 활명수가 시대를 앞선 경영에 힘입어 ‘히트 상품’이 된 계기부터 일제 말기, 한국전쟁, 5·16 쿠데타 등 한국사의 곡절을 거치며 겪은 역정을 10개의 장으로 나눠 살폈다. 장마다 ‘활명수 경영 레슨’ 꼭지도 덧붙여, 읽는 이들이 생각을 가지런히 다듬도록 도왔다.

“오늘의 험난한 기업 환경을 헤쳐나가야 하는 경영자들이 한 세기 전의 선조에게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온고지신이다. 112년간 80억병이 넘게 팔리며 사람들의 속을 다스린 활명수에 비춰 회사 경영, 나아가 삶의 지혜를 배우자는 말이다.

1965년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도입한 광고. 배가 아파 활명수를 찾는 사람을 코믹하게 그렸다. 60년대 중반 처음 출시된 발포성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발매 70돌을 앞세운 팸플릿 광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의 초창기 제품 모습.(위 사진부터)   리더스북 제공
1965년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처음으로 애니메이션을 도입한 광고. 배가 아파 활명수를 찾는 사람을 코믹하게 그렸다. 60년대 중반 처음 출시된 발포성 소화제 ‘까스활명수’와 발매 70돌을 앞세운 팸플릿 광고.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인 활명수의 초창기 제품 모습.(위 사진부터) 리더스북 제공
활명수는 조선 말 선전관(왕명의 출납을 맡은 무관)을 지낸 노천 민병호가 궁중 비방을 변형해 만든 약품이다. 창업 연도는 1897년으로, 아스피린보다 2년 이르다. 당시 가장 흔한 병이 위장장애(소화불량)였고 치료가 지금처럼 수월하지 못했으니, 목숨을 살린다는 뜻의 활명(活命)이 지나친 이름은 아닌 셈이다. 전통 한약재와 수입 약재를 섞고 멘톨(박하뇌)을 넣어 독특한 풍미를 입힌 활명수는 탕약을 달이는 번거로움을 없애 곧바로 큰 호응을 얻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부채표라는 이름도 큰 몫을 했다. <시경>의 ‘지죽상합 생기청풍’(紙竹相合 生氣淸風)에서 따온 말로,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만나니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이다. 활명수는 당시 조선에 분 ‘의약품의 새바람’이었던 셈이다. 이로써 부채표와 활명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짝패가 된다.

지은이가 보기에, 활명수가 걸어온 길은 경영의 각 분야에서 놀라울 정도로 선구적이다. 강력한 브랜드 네임·마크를 통한 차별화, 초기의 고가 전략으로 고급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심은 점, 각 지역의 유지들로 튼튼한 유통망을 꾸린 것, 지점·특약점을 통해서만 제품을 공급해 중간상인의 이익을 보호한 영업 전략, 과감한 광고와 판촉으로 거둔 시너지 효과, 당시에 부족했던 생필품 등을 함께 공급한 사업 다각화, 공익성 경품 행사로 한 학교에 재정을 후원한 사회공헌활동 등 100년 전에 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창의적이고 정교하다. 일찌감치 사규를 만들고 사원 복지를 체계화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활명수의 동화약품이 빛나는 지점은 민족기업의 면모다.

창업주 민병호의 아들 민강은 일제강점기 대동청년당을 중심으로 상해 임시정부와 비밀리에 연락하며 군자금과 정보를 대는 몫을 맡았다. 서울 시내 한복판(순화동)에 약방으로 위장한 연통부를 만들기도 했다.(연통부가 있던 순화동 터는 조선 숙종의 계비인 인현왕후의 생가가 있던 곳이며, 서울시는 1995년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런 일로 ‘불령선인’이 된 그는 여러 차례 일경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으며 끝내 48살의 이른 나이에 숨지고 만다.

사정이 이러해 경영 위기에 놓인 회사를 구한 이가 보당 윤창식이다. 그 역시 조선산직장려계·보린회를 이끌며 물산장려와 빈민구휼에 앞장선 애국지사였다. 동화약품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덕망과 능력을 두루 갖춘 윤창식에게 회사 인수를 제의한다. 이로써 1937년 우리나라 최초의 인수·합병(M&A)이 성사된다. 이후에도 일제에 부역하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이뤘을 뿐 아니라, 1930~40년대 전시경제의 극심한 물자 부족과 탄압에서도 살아남은 생명력이 곡진하다. 탁발한 리더십의 결실이라는 게 지은이의 평가다.

요컨대 지은이가 가리키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사람이다. 활명수의 112년 역사를 일군 ‘사람들’의 지혜에 주목할 때 ‘장애’를 겪는 기업의 숨통을 틔울 수 있다는 말이다. 가장 훌륭한 리더의 덕목 가운데 하나는 이렇다. “결과가 나쁠 때는 창밖이 아니라 거울을 들여다보며 자신에게 책임을 돌려라.” 물감어수 감어인(勿鑒於水 鑒於人), 맑았다 흐렸다 하는 물이 아니라 한결같이 올곧고 어진 사람에게 자신을 비추라는 교훈이 담겼다. 경영자에겐 ‘활명수’가 그러하겠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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