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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강남 살아도 별 수 없는 대한민국

등록 2009-12-25 20:34

〈성탄 피크닉〉
〈성탄 피크닉〉




〈성탄 피크닉〉

동화라면 잔혹동화다. 서울 근교 성남에 살던 한 가족이 로또에 당첨돼서 ‘강남 입성’을 실현한 동화 같은 이야기 뒤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동화의 끝말을 무참하게 짓밟는다. 강남은 대한민국의 ‘성’인가. 강남 입성에 성공했더라도 삶은 만만치 않다. 멀리서 볼 땐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는 화려한 불빛을 날름거리던 그 성벽은 괴이하게도 들어가 살수록 자꾸 높아진다. 로또에 당첨된 뒤 이혼한 부모는 소설 속 주요 인물이 아니다. 20번도 넘게 면접만 보고 다니는 첫째 딸 은영과 게임중독인 고등학생인 막내 아들 은재는 강남에 주소를 두고 있지만 결코 강남에 뿌리내리지 못할 인생들이다. 남자들을 구슬리거나 협박해, 원하는 소비의 수준을 충족하고 사는 둘째 딸 은비가 오히려 이질감이 덜해 보인다. 은비를 혼내주려던 성형외과 의사를 세 남매가 가두고 죽인다는 소설의 줄거리는 ‘소외된 강남신민’이 벌이는 복수극과 다름없다.

<걸 프렌즈>로 등단한 작가는 칙릿 소설과 문학의 경계쯤에서 무거운 줄거리를 반쯤은 경쾌하게, 반쯤은 무표정하게 이어 박는다. 전기톱으로 시체를 난도질하고 나누어 운반하는 세 남매는 물론이고, 아기를 맡기고 도망가는 옆집 여자, 심지어는 의사마저도 가면을 쓴 듯 굳은 얼굴뿐이다. 대신 물탱크에선 썩는 냄새가 나는 압구정동 아파트나 용산의 누추한 골목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비현실적인 인물들이 현실의 민감한 곳을 도발하는 <성탄 피크닉>이 일러주는 것은 강남에 살든 용산에 살든 지금 대한민국의 삶은 악몽이라는 사실일 것이다. /민음사·1만원.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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