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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권력자를 떨게 할 재밌는 역사

등록 2010-02-05 19:25

〈근현대사신문 근대편·현대편〉
〈근현대사신문 근대편·현대편〉
‘신문형식으로 읽는 역사’ 시리즈 완결편
개항부터 ‘촛불’까지 근현대사 생생히 재현




〈근현대사신문 근대편·현대편〉
문사철 기획·강응천 외 지음/사계절·각 권 2만3000원

“우리 근현대사에 대한 자부심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역사신문>(전 6권)과 <세계사신문>(전 3권)에 이어 출판사 사계절에서 <근현대사신문>을 내며 밝힌 뜻이다. 권세 있는 이들이 옛적의 못된 짓만을 답습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시절이라선가. 법고창신(法古創新)을 앞세운 지은이들의 뜻이 곡진하다. 이들은 한국 사람이 지녀야 할 자부심의 근거를 이렇게 풀었다. “우리가 정말 자랑스러워할 것은 한국인이 온갖 불행을 겪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제국주의, 분단, 빈곤, 독재 등 근현대 세계가 배설한 가장 고약한 범죄와 맞서 싸워왔다는 사실이다. … 그러나 한국인이 갈 길은 아직도 멀다. 분단의 굴레는 여전히 한국의 정치와 사회를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으며, 나날이 촘촘해지는 국제 금융자본의 그물망은 한국 경제를 물샐틈없이 포위해 들어오고 있다.”

책은 ‘신문’의 틀을 빌려 당대의 사건과 사람을 생생히 전한다. 1876년 개항부터 1945년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를 ‘근대편’으로 묶고, 촛불집회가 한반도를 밝혔던 2003년까지를 ‘현대편’에 담아 모두 40호를 꾸렸다. 1면은 해당 호의 ‘압권’답게 그 시기를 상징하는 사진과 쪽글을 실었다. 2·3면에선 한국과 세계의 주요 사건을 나란히 배치해 한국사와 세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도왔다. 4면은 지은이들의 역사의식이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곳으로, 사설·인터뷰·특별기고·만평 등을 담았다. 5·6·7면은 사회·경제, 과학, 문화로 나눠 당대의 풍경을 두루 맛볼 수 있도록 했고, 8면에는 생활·단신 기사들을 실었다. 특히 한일병합·광복·광주민주화운동은 호외로 다뤄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깊이 짚었다.

신식 군대인 별기군의 군인들. 사계절 제공
신식 군대인 별기군의 군인들. 사계절 제공

‘서울로 올라가 권귀를 멸하라!’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다룬 기사의 제목이다. “폭정을 제거하고 백성을 구하자는 구호를 내걸고 봉기한 동학 농민군이 서울을 향해 파죽지세로 북상하고 있다.” 이 기사의 곁에 ‘여심 없이는 정책도 없다… 여성참정권운동 새바람’이란 제목이 보인다. 1893년 11월23일 뉴질랜드에서 세계 최초로 여성들에게 투표권을 준 일을 다룬 기사다. 당시 “여성들이 있어야 할 곳은 가정”이라며 불쾌해하는 남성들과 맞서 ‘권리를 위한 투쟁’을 하는 일은 거의 사생결단이었다.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단상에도 오를 권리가 있다.” 동학농민운동과 여성참정권운동 기사를 견줘 읽을 때 역사는 박제가 아니라 격동으로 살아난다. 이처럼 한국과 세계의 역사를 간결한 기사문으로 한눈에 살펴 읽을 수 있도록 한 게 이 책의 장점이다.

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의 시위 군중을 담은 <근현대사신문> 1968~69년치 1면.  사계절 제공
68혁명 당시 프랑스 파리의 시위 군중을 담은 <근현대사신문> 1968~69년치 1면. 사계절 제공
익히 안다고 여겼지만 미처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된다. 1918년 전세계에 퍼진 ‘스페인 독감’을 다룬 기사에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총독부는 12월 말 현재 조선인은 742만2113명의 환자가 발생한 가운데 13만9128명이 사망했고 … 지금 농촌에서는 들녘의 익은 벼를 거두지 못할 정도로 상여 행렬이 끊이지 않고, 각급 학교는 일제히 휴교한 상태다.” 비판과 전망도 ‘신문’의 몫 가운데 하나일 터다. 광복 뒤 곧바로 이어진 좌우 이념의 대립과 분열을 다룬 ‘사설’은 ‘살아보지도 않고 이혼부터 하나’라는 제목 아래 날카롭게 꾸짖는다. “반쪽 사회에 사는 답답함과 긴장으로부터 피해를 볼 사람들은 분단 주도 세력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이라는 생각에 이르면 우리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1970년 청계천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을 다룬 기사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로 시작해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은 노동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빈부격차를 키운 개발독재라는 것이 중론이다. 전태일이 어려운 말로 가득 찬 <근로기준법>을 독학하며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이라고 소망했다는 데 충격받은 대학생은 물론 각계에서 노동문제 해결에 적극 나설 태세인 데서도 드러나듯, 이번 사건의 파장은 오래도록 지속될 전망이다.” 40년이 흐른 2010년의 진짜 ‘신문’에서는 어떤가, 묻고 쓸쓸해지는 대목이다. 재미가 쏠쏠한 기사도 건포도처럼 박아두었다. “에그머니! 적선탕의 여탕에서 목욕하던 여자들이 갑자기 뛰쳐나왔다. 알고 보니 한 남자가 발가벗고 들어간 것! 그 남자는 경성부청에 다니는 일본인으로, “남탕은 사람이 많아 들어갈 수 없다”는 핑계를 대자 주변인들이 분개했다고 한다.”(1920년)

“대중이 역사를 알고 깨어 있는 시민으로 거듭나는 것이 두려운 자들은 역사를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의 추천사처럼, 이 책의 미덕은 ‘재미있는 법고창신’을 끌어낸다는 점에 있다. 신문 형식으로 보는 역사 시리즈의 완결편으로, 출판기획 문사철 대표인 강응천씨를 비롯해 김성환·오철우·이권우씨 등 10여명의 전문가들이 분야별로 기획과 집필에 참여했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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