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에베레스트 등반 시즌, 티베트 사면에 자리한 제1캠프 풍경. 지은이는 탐욕과 협잡의 공간으로 변질된 에베레스트를 충격적으로 전한다.
민음인 제공
언론인 출신 저자의 경험 바탕
상업 등반대의 추악함 파헤쳐
상업 등반대의 추악함 파헤쳐
〈에베레스트의 진실〉
마이클 코더스 지음·김훈 옮김/민음인·1만6000원 “어떻게 아버지가 내가 알아낸 일들을 모르셨을 수가 있지? 그렇게 지혜롭고 지성적인 분이 당신의 목숨을 맡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는 일을 어떻게 그토록 소홀히 하셨을 수가 있지?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시다고 해도 그렇지, 당신이 명백한 재난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그대로 휘말려 들어가셨을 수가 있지?” 파비올라는 자신의 일기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적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설산에서 숨진 아버지 닐스 안테사나의 행적을 추적하다 파비올라는 낭떠러지처럼 아찔한 진실을 발견한다. 에베레스트는 등정이 아니라 ‘타락’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얼어 죽는’ 사람을 곁에 두고 그들은 산을 오르내린다. 그리고 산악 전문 웹사이트에 보낸 사진 속에서 그들은 함박같이 웃는다. 해발 8000m 안팎에서 펼쳐지는 무법천지의 현실. 파비올라는 전율한다. 인간 의지의 극한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인 줄 알았던 그 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인 출신의 마이클 코더스는 <에베레스트의 진실>에서 2004년과 2006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직접 시도했던 경험을 살려, ‘추악한 인간시장’으로 추락한 그곳을 샅샅이 파헤친다. 책의 원제는 ‘중범죄’(High Crimes)인바 고산 등반(High climbing)의 변질을 날카롭게 겨눈다.
2004년 5월 볼리비아 출신 미국인 의사인 닐스 안테사나는 가이드 구스타보 리시, 두 셰르파와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다. 문제는 그때부터 일어난다. 등정 못지않게 위험한 게 하산이라는 점을 닐스는 미처 몰랐다. 하산길이 위험하다면 애초에 등정을 포기하는 게 고산 등반의 기초 상식인데도 가이드조차 이를 무시했던 것이다. 가이드인 구스타보의 속셈은 따로 있었다. 그는 에베레스트를 이용한 ‘상업 등반’의 달콤한 잇속만을 노리는 ‘악머구리 떼’의 한 사람이었다. 탈진과 환각 상태에 빠진 자신의 ‘고객’을 곁에 두고 그는 비디오 촬영을 하며 희희낙락한다. 그렇게 정상에서 40여분을 소모하고 만다. 그건 치명적인 시간이었던바, 닐스는 정상에서 겨우 60m를 내려온 뒤 쓰러진다. 이른바 ‘힐러리 스텝’으로, 눈·얼음·바위로 이뤄진 12m 높이의 절벽이 있는 곳이다. 두 셰르파가 밧줄로 닐스를 묶어 절벽 아래로 달아 내리는 악전고투를 벌였지만, 일행은 세 시간 동안 30m밖에 내려가지 못했다. 여기에 강풍이 심해지고 산소통마저 바닥난다. 두 셰르파가 허우적대고 있는 사이, 가이드 구스타보는 멀찍이 ‘혼자’ 내려간다. 결국 두 셰르파마저 닐스를 눈 벽에 앉혀 놓고 겉옷을 벗어준 뒤 역시 하산해버리고 만다. 그렇게 닐스는 그곳에서 서서히 굳어간다. 그때 그의 나이는 예순아홉이었다. 그러나 진정 놀라운 것은 이들 가이드와 셰르파가 겨우 살아남아 전한 ‘그 순간’이다. 지은이는 이후에 구스타보를 만나, 왜 그의 파트너가 하산해야만 치료될 수 있는 병으로 그렇게 심한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도 정상에서 그렇게 오랜 시간(40여분)을 허비했느냐고 물었다. 구스타보는 이렇게 답한다. “정상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이죠. 정말 근사했어요. 판타스티코(fantastico)!” 두 셰르파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닐스를 눈 벽에 두고 내려오는 순간에도 그는 분명히 살아 있었지만, 한 셰르파는 다른 셰르파를 불러 이렇게 입단속을 한다. “저 사람들한테 우리가 그 사람 곁을 떠날 때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었다는 말 같은 건 하지 말아요.” 195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에드먼드 힐러리의 우려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저는 에베레스트 등반을 대하는 모든 사람의 태도가 끔찍한 형태로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그저 그 꼭대기에 오르고 싶어 하기만 합니다. 사람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봐도 아는 체를 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엄청난 폭설과 강풍에 휘말려 12명이 등반 도중 숨지는 참사가 일어난다. 이 일은 도리어 에베레스트에 본격적으로 상업 등반대가 창궐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돈과 체력만 있으면 누구나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돌이킬 수 없이 퍼져나간 것이다. 이런 ‘미친 바람’을 타고 구스타보 같은 협잡꾼들이 출몰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에베레스트의 베이스캠프는 절도와 강도, 사기와 공갈, 매춘과 마약, 음주와 폭력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장소가 된다. 1000여명의 사람들이 북적대고, 500개가 넘는 텐트가 즐비하며, 바위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는 풍경. 철저히 ‘레저’의 대상으로 전락한 에베레스트의 모습이라는 게 지은이의 전언이다. “그 산은 여러 해 전에 이미 서커스장이 되었다. 그리고 상황은 더 악화되고 있다.”
아버지를 설산에 묻은 파비올라는 ‘진실’에 눈뜬 뒤 기자가 되었다. “아버지는 내 첫 기삿감이었어요.”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는 산악인들도 여전히 있지만, 에베레스트의 ‘그늘’은 갈수록 깊어진다. 그리하여 지은이는 묻는다. 에베레스트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무덤이 되는 것은 아닌가. 인간성의 무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마이클 코더스 지음·김훈 옮김/민음인·1만6000원 “어떻게 아버지가 내가 알아낸 일들을 모르셨을 수가 있지? 그렇게 지혜롭고 지성적인 분이 당신의 목숨을 맡길 사람에 대해서 알아보는 일을 어떻게 그토록 소홀히 하셨을 수가 있지? 아무리 자존심이 강하시다고 해도 그렇지, 당신이 명백한 재난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데도 어떻게 그렇게 그대로 휘말려 들어가셨을 수가 있지?” 파비올라는 자신의 일기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적었다. 2004년 에베레스트 설산에서 숨진 아버지 닐스 안테사나의 행적을 추적하다 파비올라는 낭떠러지처럼 아찔한 진실을 발견한다. 에베레스트는 등정이 아니라 ‘타락’의 현장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얼어 죽는’ 사람을 곁에 두고 그들은 산을 오르내린다. 그리고 산악 전문 웹사이트에 보낸 사진 속에서 그들은 함박같이 웃는다. 해발 8000m 안팎에서 펼쳐지는 무법천지의 현실. 파비올라는 전율한다. 인간 의지의 극한을 가장 또렷하게 보여주는 공간인 줄 알았던 그 산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언론인 출신의 마이클 코더스는 <에베레스트의 진실>에서 2004년과 2006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직접 시도했던 경험을 살려, ‘추악한 인간시장’으로 추락한 그곳을 샅샅이 파헤친다. 책의 원제는 ‘중범죄’(High Crimes)인바 고산 등반(High climbing)의 변질을 날카롭게 겨눈다.
〈에베레스트의 진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