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나는 ‘권정생 표’ 생명 이야기
〈학교놀이〉 권정생 글·윤정주 그림/산하·각 권 9000원 〈아기 소나무〉 권정생 글·김세현 그림 〈아기 늑대〉 세 남매 권정생 글·권문희 그림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 권정생 글·김용철 그림 나온 지 19년이 지난 고 권정생 선생의 동화가 새옷을 갈아입었다. ‘산하 작은 아이들’ 시리즈에서 새로 낸 권정생 저학년 동화집 <아기 소나무> <학교놀이> <아기 늑대 세 남매> <아름다운 까마귀 나라>는 1991년에 나온 고학년 동화 <하느님의 눈물>에 실린 17편을 고스란히 네 권으로 나누고 저학년을 위해 알록달록 새 그림을 입힌 것이다. 애초 작가가 이 단편들을 쓴 시기가 70~80년대였으니 그야말로 수십년 전 동화를 다시 꺼내놓는 셈이다.
그런데 지금 눈으로 보아도 권정생 동화의 어린 주인공들은 잔망스럽기 짝이 없다. 남의 목숨을 해치는 게 싫어서 칡넝쿨도 과남풀도 풀무꽃풀도 뜯어먹지 못하고 하루종일 굶고 다니는 어린 토끼(‘하느님의 눈물’)가 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초가집이 되고 싶어서 어서 빨리 크게 해 달라고 기원하는 어린 소나무(‘아기 소나무’)나 훌륭한 새를 따라하는 거추장스러운 치장을 훌훌 벗어던지고 까만 깃털로 푸드덕거리는 어린 까마귀(‘아름다운 까마귀 나라’)도 있다. 몸의 크고 작은 것은, 마음의 높고 낮은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주인공들은 하느님을 울리고, 달님도 울리고, 다른 까마귀들도 훨훨 자유롭게 날게 한다. 물론 권정생 동화의 아이들은 혼자 크지 않는다. 무섭다고 엉엉 울던 꼬마 가재가 할머니가 일러주신 말 한마디에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아이가 되겠다고 똥을 쨀꼼 누고 혼자 빠르게 달려가듯(‘산 버들나무 밑 가재형제’), 외롭다고 훌쩍거리던 하얀 찔레꽃이 무지개를 만나 찬란한 빛을 몸에 받아들이듯(‘찔레꽃잎과 무지개’) 바람 해 달빛 가득한 세상에서 골고루 익어간다. 책 네 권에 실린 단편동화들은 권정생 작가가 분단과 빈곤 등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무르익던 시절에 쓴 것이라고 한다. 반으로 갈라진 느티나무(‘가엾은 나무’)나 목졸려 죽는 개구리(‘떡반죽 그릇 속의 개구리’)처럼 우리 현실에 대한 직유가 많은 것도 그 탓일 게다. 그렇다 쳐도 어린 동물들이 전쟁과 탐욕이 없는 하늘나라를 향해 힘차게 날갯짓하는 동화 속 세계는 여전히 평화롭다. 갈등 가득한 세상에 생명의 지혜를 속살거리던 권정생 선생의 분신들로 가득 찬 세계이기 때문이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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