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이 자라날 때〉
〈손톱이 자라날 때〉
방미진 지음/문학동네·9500원 영화 <여고괴담2>의 주인공은 말한다. “키 몇 센티, 몸무게 몇 킬로… 이런 숫자들로 나의 성장을 잴 수 있을까?” 그 시절 돌이켜보니 성장치는 두려움으로 재는 거라고 답할 수 있겠다. 머쓱하게 키가 커갈수록 커지는, 현실과 영영 불화할 것 같은 공포 말이다. 정말이지, 아이들 듣는 데서 요즘 애들 무섭단 소리는 할 게 못 되는 것이 아이들 자신이야말로 부모가, 친구가, 자신이 두렵다. 동화작가 방미진씨의 청소년 단편소설집 <손톱이 자라날 때>는 성장하는 작은 인간들의 강력한 불안이 깃들어 있는 책이다. 주인공들은 두렵고 두려우며 외롭고 외로운 나머지 다른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 총을 겨눈다.(<고누다>) 몸안에서 자라는 질척한 불안을 뜯어내기 위해 손톱을 기른다.(<손톱이 자라날 때>) 자신을 지우고 죽은 쌍둥이 언니로 사는 쪽을 택하기도 한다.(<난 네가 되고>) 그래봤자 교실의 하얀 벽에 붙들려 가거나 자신의 가짜 분신에게 잡아먹히거나 가장 증오하던 사람을 닮아가는 무참한 결말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욕망이란 놈을 은밀하게 등짝에 붙여 다니다 마침내는 잡아먹히는 건 폭력의 가해자든 피해자든 학교에 오든 집으로 도망치든 다 마찬가지다. 다섯 편 이야기 중 유일하게 주인공이 자신을 지킨 <붉은 곰팡이>에선 지하방에 사는 주인공 가족이 다 같이 불안과 씨름한다. 마침내 스멀스멀 벽에서 자라나는 곰팡이가 숨통을 틀어막는 집에서 떠나는 순간이 찾아왔다.
그렇지만 이미 몸에 곰팡이 같은 얼룩을 피워내는 동생과 끈끈이에 붙어서 찍찍거리는 쥐처럼 다른 세계에 발목잡힌 엄마는 또 어쩔 것인가. 닦아도 닦아도 현실은 곰팡이처럼 피어나며 생의 크레바스로 끌어들인다. 불안이 비등점에 이를 무렵, 소설이 일러주는 살아남는 법은 이렇다. “도망칠 수 없으면… 곰팡이처럼 살아.”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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