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잠깐 독서 / 〈갈레아노, 거울 너머의 역사〉 ‘중국 누에의 탈출’, ‘직업분담의 기원’, ‘혁명은 자기 머리를 잃었다’, ‘바비가 전쟁터에 가다’…. 알쏭달쏭한 소제목이 오히려 호기심을 끈다. 모두가 세계사의 한 장면을 불러내는 키워드들이다. <거울 너머의 역사>는 권력자·지배자·약탈자의 맞은편에서 바라보고 쓴 ‘전복의 세계사’다. 재미를 더하는 건 곳곳에 빛나는 풍자와 해학, 그리고 시적 감성과 철학적 사유가 묻어나는 독특한 글쓰기 방식 때문이다. 지은이 갈레아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의미 있는 어떤 것’으로 바꿔 놓는 데 탁월한 재능을 지닌 듯하다. 주류의 역사를 맘껏 조롱하지만, 정작 조롱당한 건 약자들로 이뤄진 실제 세상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사물의 이면을 보는 통찰, 잊혀진 자들에 대한 연민, 핍박받는 인간에 대한 애정, 진실을 끄집어낼 용기가 없으면 안 될 일이다. 백마디 말보다 하나의 예문이면 이 책의 소개로 충분할 듯싶다. ‘국제무역기구의 기원’ 편. “옛날에 무역의 신을 선발해야 했다. 제우스는 누가 가장 적임자인지 궁리했다. 당연히 헤르메스였다. 제우스는 헤르메스에게 작은 황금날개를 선물하고, 상품의 교역 증진, 협정 체결, 자유 보장 등에 관한 업무를 맡겼다. 헤르메스가 거짓말을 가장 잘했기 때문에 그 일을 맡은 적임자로 뽑힌 것이다.” 이 책이 전하는 파편적 사실은 기존에 배우고 알려진 사실에 또 하나의 사실을 경합시킨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다. 세계사에 대한 기초지식을 갖춘 독자라면 더욱 값질 책이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조구호 옮김/책보세·2만7000원. 이재명 기자 mis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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