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디수첩 20년간 ‘뚝심의 여정’
세상 들썩인 방송 후일담 담아
곤욕 치른 제작진 현장서 퇴출
언론자유 위축…폐지압박 여전
세상 들썩인 방송 후일담 담아
곤욕 치른 제작진 현장서 퇴출
언론자유 위축…폐지압박 여전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북폴리오·1만6000원 <피디수첩>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김보슬 피디는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4월 결혼을 앞두고 긴급체포를 당했다. 그가 만든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졸속 타결된 직후인 2008년 벽두에 방영되어 그해 봄과 여름 내내 광장을 메웠던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2005년엔 한학수 <피디수첩> 피디와 함께 조연출로 참여한 황우석 사건 보도(2005년 11월22일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를 통해 한국 사회를 냄비 끓듯 뒤끓게 만든 세계적 특종의 한 일원이 되었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부른 두 ‘사건’에 ‘연루’된 셈인데, 그는 이를 “팔자소관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그를 만난 인터뷰어 지승호씨에게 말했다. “결국 제가 설 자리는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주는 우연에 의한 것이더군요. 2005년 황우석 사태를 취재할 때, 하필이면 황우석 사건과 관련한 제보가 한학수 선배의 눈에 띄었고, 하필이면 제가 당시 한학수 선배의 조연출이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참 많이도 괴로웠던 겁니다. 그리고 2008년, 하필이면 제가 취재하던 다른 아이템이 엎어져 버렸고, 하필이면 제가 방송할 때쯤 졸속으로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되었던 것이지요.” 김 피디는 그 자신에게 <피디수첩>이 ‘우연처럼 만나 운명이 된’ 것처럼, 그가 중학생이던 무렵부터 방영이 시작된 <피디수첩>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사회가 만들어주는 우연을 피해가지 않고 묵묵히 따라가야만 하는 프로그램, 그것이 <피디수첩>이었던 것 같습니다.”
은 1990년 문을 연 뒤 올 5월로 20돌을 맞은 시사 고발 프로그램 <피디수첩>이 걸어온 뚝심의 20년 여정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기록이다. 그 20년 동안 화제작을 연출했거나 이끌었던 피디 9명을, ‘듣는 사람’임을 자임하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씨가 만나 인터뷰했다.
1988년 광주민주화운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어머니의 노래>를 연출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 뒤 1990년 <피디수첩>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최초 기획자’인 김윤영 피디, 그 첫해에 우루과이라운드협상 관련 방송 파장으로 6개월 만에 하차했다가 재합류하여 ‘이단 파문 이재록 목사’ 등을 연출한 윤길용 피디, 1993년 할렐루야 기도원의 매독 감염 의혹을 다룬 방송을 마지막으로 피디수첩을 떠난 김상옥 피디, 2008년 광우병 보도로 보직해임된 조능희 책임피디의 후임으로 프로그램을 이끌다 올해 <문화방송> 사장 교체 후폭풍 속에서 물러난 김환균 피디, 광우병 보도로 진행자에서 보직해임된 송일준 피디, 2005년 황우석 교수 사건 당시 시사교양국장으로 이 보도를 책임지고 뒷받침한 최진용 피디, 황우석 사건 보도 때 진행자 겸 책임피디였으며 올 4월 ‘검사와 스폰서’ 편을 보도한 최승호 피디, 대다수 언론과 여론이 등을 돌리는 상황 속에서 황우석 사건을 뚝심 있게 보도한 한학수 피디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이 책에서 방송에 얽힌 비화와 “죽여버리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던 취재 당시의 아찔했던 순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공영방송 <문화방송>을 장악하려는 국가권력의 압박이 조여드는 지금, 언론의 진실 보도와 한국 언론이 처한 상황, 곧 언론 자유의 후퇴에 대한 절박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보슬 피디와 조능희·송일준 피디, 김은희·이연희 작가가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포승에 묶여 검찰로 끌려갔을 때, 무리한 기소의 당사자인 검찰과 피디수첩팀 고소 당사자인 농림수산식품부 정운천 장관 등 이명박 정부는 언론인의 양심과 자유를 포승으로 묶고 족쇄를 채운 것으로 언론사에 기록될 것이다. 1심 법원은 피디수첩팀에 전원 무죄를 판결함으로써 검찰의 기소가 무리였음을 재확인했다.
최승호 피디는 2001년 ‘한국 검찰의 고민, 정치 중립’을 보도한 데 이어 9년 만인 올 4월20일 ‘검사와 스폰서’ 편을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다시 검찰을 취재하면서 9년 전에 견줘 검찰의 상황이 변한 게 별로 없고 오히려 좀 더 심해진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법무부 검찰국 고위간부를 지낸 분을 만났는데 그분 말이 법무부의 아침 간부회의에서 검찰의 수사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논의되고 장관이 그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립성이 없는 조직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주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 우리 검찰 시스템이다. 아무도 검찰을 수사할 수도 징계할 수도 없다.” 그는 방송 환경을 위축시키는 예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태를 들었다. 그는 최근 ‘4대강과 민생예산’ 편 방영 뒤 이 위원회로부터 권고조처를 받았다. “지금의 방송 현실은 정부기관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하면 검사들이 제작진을 잡아갈 수도 있고, 친정부 시민단체가 나서 제소하면 방송통신심의위가 제재를 한다. 이 제재를 근거로 방송사 내부 경영진은 제작진의 보도를 막는 이런 구조가 완성돼 있다.” <피디수첩>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간판이라는 칭찬을 넘어, 피디저널리즘의 선봉이라는 수사를 넘어, 오늘날 한국 언론 지형에서 심층 탐사저널리즘 보도의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2005년 황우석 사건과 2008년 광우병 보도를 거치며 <피디수첩>은 한국 언론 진실 보도의 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선 ‘공영방송 문화방송 사수투쟁’은 노조위원장이 해고되고 조합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당하는 등 큰 고비를 맞고 있다. 최승호 피디는 문화방송 단체협약에 국장책임제 조항이 없었다면 황우석 사건 같은 보도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현재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 조항을 바꾸라고 문화방송 사장에게 요구했다. 이 조항을 바꾸면 <피디수첩>은 없어지는 거다. 국민들이 절대 이런 시도를 허용하면 안 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제작진이 직접 겪은 검찰 “당신, 공명심에 사로잡힌 여자 아니냐”
“당신, 공명심에 사로잡힌 여자 아니냐?”
김보슬 <피디수첩> 피디(사진 오른쪽)는 지난해 4월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유로 기소되어 검찰에서 조사를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담당 검사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고 에서 밝혔다. 그 검사의 태도는 한국 검찰의 오만한 언론관을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라 할 것이다.
“<피디수첩> 광우병 편은 반미 종북주의 프로그램 아닙니까?”
<피디수첩> 피디들을 조사하던 한 검사는 피디수첩 부장이던 조능희 책임피디에게 이런 말을 던져 조 피디로 하여금 말을 잃게 만들었다. 함께 끌려가 조사를 받은 송일준 피디는 “정부 정책 비판 프로그램을 방송한 것이 북한을 추종하는 종북주의와 대체 어떻게 연결된다는 건지” “그래도 어렵다는 사법고시를 통과해 검사까지 된 사람인데…” 하는 생각에 역시 할 말을 잃었다.
검찰은 1심에서 조능희 부장피디(왼쪽)와 김보슬 피디, 김은희 작가에 대해 징역 5년을, 이춘근 피디와 송일준 피디에겐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송 피디는 구형 순간부터 재판 과정 내내 냉소와 빈정거림이 넘쳐나던 그 검사의 표정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했다. 송 피디는 <피디수첩> 원년부터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 보도로 강제 하차당할 때까지 들고 나며 10년 가까이 “말 그대로 피디수첩과 청춘을 함께” 보냈다. 그는 <피디수첩>이 20돌을 맞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초는 <피디수첩>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더 계속되어야 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송 피디는 2009년 4월28일 새벽 1시에 검찰에 체포돼 피디수첩 수사의 실무주임검사에게 조사를 받았다. “당신들이 지금 하는 일을 역사는 반드시 기록할 것”이라고 말하는 송 피디에게 “위에서 맡긴 이상 최선을 다하는 것일 뿐”이라고 했던 그 검사는 나중에 피디수첩팀을 구형하면서 “피디들이 검사에게 역사에 기록될 거라며 협박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실무주임검사는 수사와 재판 과정 내내 민주주의의 기초인 언론의 자유가 검사가 제시하는 기준 안에서 허용돼야 한다고 철석같이 믿는 듯 보였다고 송 피디는 말했다.
<피디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에서 전화로 취재하는 피디에게 부산지검장은 고압적인 반말로 위협까지 서슴지 않았다. “뻥긋해서 쓸데없는 게 나가면… 다 조치가 될 거예요. … 내가 당신한테 답변할 게 뭐 있어… 당신이 뭔데!”
송일준 피디는 방송 환경이 “<피디수첩>이 시작되던 20년 전 그 시절로 급작스레 후퇴한 느낌마저 든다”며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법원과 검찰이 제구실을 못하는 탓도 적잖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현 피디수첩 책임피디는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피디수첩>의 초심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주갑 <문화방송> 시사교양국장은 “국민이 <피디수첩>의 스폰서라는 믿음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피디수첩>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글 허미경 기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PD수첩〉 제작진·지승호 지음/북폴리오·1만6000원 <피디수첩>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김보슬 피디는 주지하다시피 지난해 4월 결혼을 앞두고 긴급체포를 당했다. 그가 만든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졸속 타결된 직후인 2008년 벽두에 방영되어 그해 봄과 여름 내내 광장을 메웠던 촛불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그는 2005년엔 한학수 <피디수첩> 피디와 함께 조연출로 참여한 황우석 사건 보도(2005년 11월22일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를 통해 한국 사회를 냄비 끓듯 뒤끓게 만든 세계적 특종의 한 일원이 되었다.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부른 두 ‘사건’에 ‘연루’된 셈인데, 그는 이를 “팔자소관이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그를 만난 인터뷰어 지승호씨에게 말했다. “결국 제가 설 자리는 제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만들어주는 우연에 의한 것이더군요. 2005년 황우석 사태를 취재할 때, 하필이면 황우석 사건과 관련한 제보가 한학수 선배의 눈에 띄었고, 하필이면 제가 당시 한학수 선배의 조연출이었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참 많이도 괴로웠던 겁니다. 그리고 2008년, 하필이면 제가 취재하던 다른 아이템이 엎어져 버렸고, 하필이면 제가 방송할 때쯤 졸속으로 쇠고기 수입 협상이 타결되었던 것이지요.” 김 피디는 그 자신에게 <피디수첩>이 ‘우연처럼 만나 운명이 된’ 것처럼, 그가 중학생이던 무렵부터 방영이 시작된 <피디수첩> 역시 그러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 사회가 만들어주는 우연을 피해가지 않고 묵묵히 따라가야만 하는 프로그램, 그것이 <피디수첩>이었던 것 같습니다.”
〈PD수첩, 진실의 목격자들〉
최승호 피디는 2001년 ‘한국 검찰의 고민, 정치 중립’을 보도한 데 이어 9년 만인 올 4월20일 ‘검사와 스폰서’ 편을 방영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다시 검찰을 취재하면서 9년 전에 견줘 검찰의 상황이 변한 게 별로 없고 오히려 좀 더 심해진 것으로 느꼈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법무부 검찰국 고위간부를 지낸 분을 만났는데 그분 말이 법무부의 아침 간부회의에서 검찰의 수사 내용들이 일상적으로 논의되고 장관이 그에 대해 코멘트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독립성이 없는 조직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주어 엄청난 권력을 행사하도록 한 것이 우리 검찰 시스템이다. 아무도 검찰을 수사할 수도 징계할 수도 없다.” 그는 방송 환경을 위축시키는 예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행태를 들었다. 그는 최근 ‘4대강과 민생예산’ 편 방영 뒤 이 위원회로부터 권고조처를 받았다. “지금의 방송 현실은 정부기관에 대한 비판 보도를 하면 검사들이 제작진을 잡아갈 수도 있고, 친정부 시민단체가 나서 제소하면 방송통신심의위가 제재를 한다. 이 제재를 근거로 방송사 내부 경영진은 제작진의 보도를 막는 이런 구조가 완성돼 있다.” <피디수첩>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간판이라는 칭찬을 넘어, 피디저널리즘의 선봉이라는 수사를 넘어, 오늘날 한국 언론 지형에서 심층 탐사저널리즘 보도의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2005년 황우석 사건과 2008년 광우병 보도를 거치며 <피디수첩>은 한국 언론 진실 보도의 한 상징이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방송 장악 시도에 맞선 ‘공영방송 문화방송 사수투쟁’은 노조위원장이 해고되고 조합원들이 무더기 징계를 당하는 등 큰 고비를 맞고 있다. 최승호 피디는 문화방송 단체협약에 국장책임제 조항이 없었다면 황우석 사건 같은 보도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런데 현재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이 조항을 바꾸라고 문화방송 사장에게 요구했다. 이 조항을 바꾸면 <피디수첩>은 없어지는 거다. 국민들이 절대 이런 시도를 허용하면 안 된다.” 허미경 기자 carmen@hani.co.kr
■ 제작진이 직접 겪은 검찰 “당신, 공명심에 사로잡힌 여자 아니냐”
김보슬 <피디수첩> 피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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