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에 무한 더해봤자 무한인 것을…
칸토어, 학계 금기속 무한개념 확장시켜
아인슈타인도 ‘무한’ 충분히 설명 못해
저자 “지식의 유한함 알려주는 경고음”
아인슈타인도 ‘무한’ 충분히 설명 못해
저자 “지식의 유한함 알려주는 경고음”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존 배로 지음·전대호 옮김/해나무·1만8000원
이름하여 ‘무한 호텔’에 손님 한 분 들어선다. 객실 수는 무한하지만 다 찼단다. 그런데도 지배인은 문제없다며 호언장담한다. 1호실 손님을 2호실로, 2호실 손님을 3호실로… 계속 옮겨 1호실 방을 비우면 새 손님을 모실 수 있다. 이젠 무한히 많은 손님들이 들이닥친다. 지배인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1호실 손님을 2호실로, 2호실 손님을 4호실로, 3호실 손님을 6호실로… 이렇게 홀수방 손님을 짝수방으로 옮기니 무한히 많은 홀수방들이 빈다. 이번엔 무한히 많은 곳들에서 무한히 많은 손님들이 몰려온다! 수학자 힐베르트가 지어냈다는 이상야릇한 무한의 이야기다.
존 배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수리과학)는 교양과학서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에서 이런 무한 호텔을 소개하면서 ‘무한 수입을 올린 무한 호텔엔 무한 세금 폭탄이 날아왔지만 무한 수입에서 무한 세금을 빼도 무한이 남으니 이익은 무한했더라’는 농을 덧붙인다. 무한에 무한을 더하거나 빼도 무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누구에게나 호기심의 대상이 됐거나 될만한 ‘무한’을 다룬다. 우주엔 끝이 있을까, 끝 너머로 던진 돌은 어디로 갈까? 시간은 영원히 무한히 이어질까? 무한에 1을 더하면 무한보다 1이 더 많을까? 물질을 무한히 쪼갠다면 무엇이 남을까? 무한의 이야기와 역설은 널려 있다. 보통사람의 호기심에도, 또 수학·물리학자의 진지한 논문에서도 무한은 피해갈 수 없는 주제다. 존 배로는 인류 역사와 현대 과학에서 얘기되는 무한에 관한 수학, 물리학, 우주론, 철학, 신학과 공상소설의 이야기들을 책 한 권에다 읽기 좋게 모았다.
아무래도 책의 중심은 수학과 물리학, 우주론이다. 무한의 개념을 금기했던 고대·중세 역사를 거쳐 19세기에 무한집합과 무한의 위계를 체계화했으나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며 비극적 삶을 보내야 했던 수학자 칸토어의 이야기는 무한의 존재를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보여준다. 우주를 둘러싸고 있다고 믿어졌던 ‘천구’를 걷어내고, 무한히 펼쳐진 별들의 우주를 상상하기 시작했던 16, 17세기 천문학자들의 고초는 또 어땠는가?
존 배로는 책의 목표를 ‘무한이 있느냐 없느냐’를 따져보는 데에 맞추진 않았다. 책을 읽고 나면 무한은 상대적인 개념으로 이해된다. 무한은 유한이 다 보여주지 못하는 무엇이며, 또는 유한의 장벽 때문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다. 그래서 그는 “무한의 등장은 당신이 진리를 향해 가는 도중에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음을 알려주는 경고”라고 말한다. 뉴턴 물리학 너머에 있던 무한은 아인슈타인 물리학에서 유한의 세계에 포섭됐으나, 다시 아인슈타인 물리학에선 또다른 무한의 도전에 직면한다. 무한한 물리량에서 시공간이 파열되고 중력법칙조차 타당성을 잃어버려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특이점’은 그중 하나다. 그는 끈이론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전의 이론들과 달리 무한의 문제를 멋지게 우회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내친김에 무한의 상상을 확장해보자. 존 배로는 무한의 사고실험들을 여럿 소개한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우리가 아는 우주는 ‘가시적인 우주’일 뿐이며 무한한 우주에 생명체가 존재할 확률이 0이 아니라면, 무한히 많은 생명체가 우주에 존재할 수 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무한한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면, 거기엔 나와 같은 복사본들도 있을 것이다. 이런 사고실험도 있다. 무한한 우주에는 무한한 선행이나 무한한 악행이 있을 터인데, 내가 선행이나 악행 하나를 보탠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는 설사 그렇더라도 현실세계는 “광속의 유한성”에 놓여 있기 때문에 무한한 복사본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논증한다. 또 그렇기에 여전히 개별 도덕은 중요하고 나와 인류는 가치 있다는 ‘무한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책에선 무한의 터무니없는 신비를 걷어차는 존 배로의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무한히 반사되는 무한 거울의 역설, 1m 거리를 가는 데에도 1/2m, 1/4m, 1/8m… 무한히 많은 단계의 거리를 거쳐야 하기에 1m에 도달할 수 없다는 제논의 역설, 유한 시간에 무한 작업을 하는 ‘무한 기계’의 사고실험들엔 여러 허점들이 드러난다. 지은이가 얘기하는 ‘무한’은 우리가 다 안다고 여겼던 지식의 유한함을 알려주는 “경고음”이면서, 우주와 물질의 본성을 이해하는 길에 나서게 하는 “안내자”이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그림 해나무 제공
<무한으로 가는 안내서>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그림 해나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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