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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법원 판결은 ‘주류 과학’ 의견 따라야 한다고?

등록 2011-05-13 21:34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과 관련해 2006년 6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등 6명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던 날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과 관련해 2006년 6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등 6명에 대한 첫 공판이 열리던 날 모습.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미국 법원의 소송 사례들 통해서
기술지식 오해·DNA감식 오류 등
법과 과학의 ‘역할과 한계’ 분석
<법정에 선 과학> 실라 재서너프 지음, 박상준 옮김/동아시아·1만5000원

현대 법정에선 과학기술과 관련한 증거나 증언이 자주 다뤄진다. 어떤 증거와 증언이 채택돼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과학기술 논쟁도 벌어진다. 새로운 화학물질이나 전자파 같은 잠재적 위험이 정말 위해를 끼치는지를 두고 원고와 피고 당사자 간의 치열한 공방도 벌어진다. 전문가 증언이 중요해지면서, 법의학자를 비롯해 디엔에이(DNA) 감식, 병리학, 심리학, 독성학, 컴퓨터공학 같은 더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증언대에 선다. 그래도 원고와 피고 쪽이 내세우는 ‘과학적’ 증거와 증언을 둘러싸고 공방은 계속된다. 과연 전문 지식에 익숙하지 않은 재판부와 배심원들은 어느 쪽의 전문가한테서 결정적 증언을 얻어야 할까? 경쟁하는 과학적 증거들이 제시된다면 무엇을 증거로 삼아야 하는가?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실라 재서너프 교수(과학기술학)가 쓴 <법정에 선 과학>은 영미법 체계를 따르는 미국 법원의 수많은 소송 사례들을 풍부하게 분석하면서 법과 과학기술 사이에 놓인 ‘불편하고도 긴밀한’ 관계를 보여준다. 책이 다루는 과학기술은, 과학자사회에서 평가되는 연구·실험실 안의 과학기술이 아니라 법정이라는 또다른 세상의 무대에 나선 과학기술이다.

법과 과학이라는 딱딱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이 책이 주목받아온 이유는, 근대사회의 두 축을 이루는 ‘자존심 강한’ 제도인 법과 과학의 관계를 아주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둘의 관계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잡미묘함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법정은 낯설게 등장한 과학기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더 큰 사회적 논쟁의 축소판이기에, 우리 사회에서도 제기되는 여러 과학기술 논쟁의 전개과정을 돌아보며 갈등의 해법을 모색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책이 보여주듯이, 과학은 아주 오래전부터 사법 체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해왔다. 16세기부터는 서구에서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의 증언이 판결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 부각되었다. 그러면서도 근대사회에서 법은 당사자, 증인, 증거를 ‘엄정한 눈’으로 다루는 소송 절차를 정교화하고 과학은 학술발표와 동료평가 등을 통해 지식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저마다 다른 체계적 발전의 길을 걸어왔다.

이 책은 두 체제에 관한 몇 가지 통념을 깨는 데 도움을 준다. 지은이는 과학기술이 늘 진실과 허위의 경계선을 저절로 드러내어 소송을 끝내는 종결자가 되지는 못한다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예컨대 특정 화학물질이 유해한지 판가름하는 소송에서 과학기술만으로 그 인과관계가 즉시 드러나진 못한다.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병리학 연구는 종종 조사 규모가 작아 불충분하다. 화학 구조 분석이나 동물 실험이 이뤄졌더라도 실험실의 제한된 조건에서 나온 결과는 진행중인 소송의 특별한 사례에 적용하기 어렵다. 더 많은 증거가 있더라도 ‘해석’과 ‘판단’은 불가피해진다.

그렇기에 결정적 증거나 증언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좋은 과학’과 그렇지 않은 ‘나쁜 과학’의 경계선은 법정의 과정에서 ‘구성되어’ 그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잣대와 과학의 잣대가 충돌하기도 하며, 법원은 과학을 잘못 해석해 엉뚱한 판결을 내놓기도 한다. 거꾸로 법원은 과학이 발전해갈 길의 토대를 닦는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이 책에서는 유독성 화학물질의 위험에 대한 법원의 판결 태도와 생명공학과 원자력 발전에 대한 판결 태도가 ‘우려’와 ‘낙관’이라는 상반된 경솔함을 보였다고 지적한다.

<법정에 선 과학>
<법정에 선 과학>
법원은 ‘주류 과학’의 의견을 따라야 한다는 주장은 또 어떠한가? 이 책의 여러 사례들은 소송 당시 주류 과학의 견해가 소송 이후에 다른 연구결과에 의해 뒤집히기도 하며, 오랫동안 의심 없이 증거의 근거로 받아들여진 디엔에이 감식에서도 오류 가능성이 있다는 전문가 의견이 제출되기도 했다며 ‘주류 과학의 신화’를 지적한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은 법정에서 어떻게 다뤄져야 하는가? 지은이는 과학기술에서 참과 거짓의 경계선을 찾으려 매달리기보다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구현하는 “적절한 절차를 구성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법원은 이런 과학기술을 이해하려는 태도와 기본 안목을 갖추어야 하며, 동시에 법정 바깥의 사회에서 과학기술과 관련한 논쟁과 갈등을 푸는 충분한 공론장의 대안 체제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제시한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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