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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맞춤 정보’ 지금 당신의 생각을 재단중

등록 2011-09-02 21:20

생각조종자들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정태ㆍ이현숙 옮김/알키ㆍ1만5000원
생각조종자들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정태ㆍ이현숙 옮김/알키ㆍ1만5000원
개인 관심정보 알려주는 ‘필터링’
콘텐츠 편식조장 민주주의 위협
생각조종자들

엘리 프레이저 지음, 이정태ㆍ이현숙 옮김/알키ㆍ1만5000원

인터넷 서점에 책을 사러 들어갔을 때, 원래 사려던 책 아래에 붙어 있는 다른 책 광고에 흥미를 느껴 한두권을 더 주문한 기억이 있는가? 소셜미디어인 페이스북을 열었을 때 왜 어느 친구의 글은 ‘인기글’의 위편에 자주 올라오지만, 다른 친구가 업데이트 한 글은 한참을 내려가야 읽을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내 성향을 파악해 두고 있다 구미에 맞는 정보를 끌어다 주기 때문이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디지털 세상의 거인들은 언제부터인지 이용자의 취향, 관심사, 성격 같은 개인정보를 필사적으로 추적하고 분석해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런 필터링 서비스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우리를 편하게 해 준다. 인류가 동굴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이래 2003년까지 기록한 내용을 모두 모으면 약 50억 기가바이트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만한 정보가 단 이틀 만에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곳에 오래 집중할 수 없는 ‘주의력의 붕괴’는 불가피하고, 필터링 서비스가 손을 내밀면 반가운 것이다.

하지만 엘리 프레이저가 쓴 <생각 조종자들>은 온라인상의 정보 필터링이 광범위하게 확산(이른바 ‘필터 버블’)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가 개인의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특정하게 틀지워진 정보만 제공함으로써 우리 생각의 범위를 제한하기 시작했다고 경고한다. 이런 경향은 사생활 침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민주주의’와 같이 인터넷에 걸었던 해방의 가능성을 전복할 정도로 심각한 결과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개별화된 필터링은 내가 어제 식당에서 오리고기를 먹었다면 이 정보를 바탕으로 훈제오리, 오리주물럭, 오리로스 등 오리 일색의 메뉴판을 갖다주는 웨이터와 같다. 제공되는 정보는 같이 식사한 옆 동료와 완전히 다르기에 사람들은 갈수록 개별화되고 고립된다. 많은 사람들이 오리와 사이다를 같이 먹었다고 해서 사이다를 집중적으로 추천하기까지 한다. 익숙한 것들만 늘 접하니 창의성이 나올 리가 없다. 진보 성향인 이용자는 진보 콘텐츠를, 보수는 보수 콘텐츠를 편식하게 돼 있어 타인의 정치적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골수가 된다. 이런 알고리즘 아래서는 말초적 흥미를 끄는 콘텐츠만 살아남고 지루하지만 중요한 일들은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관심사가 아닌 것에도 눈길을 주는 게 참여민주주의의 기본이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로 가고 있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발달이 초래하는 디스토피아를 우려한 점에서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나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의 <잊혀질 권리>, 다니엘 솔로브의 <인터넷세상과 평판의 미래>, 존 팰프리와 우르스 가서의 <그들이 위험하다> 등과 맥을 같이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지은이 엘리 프레이저가 디지털 마니아에서 비판자로 변신한 점이다. 프레이저는 미국 온라인 정치시민단체인 ‘무브온’ 창립에 깊숙이 관여했고, 이 단체는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를 지지해 힐러리 클린턴에 비해 열세였던 민주당 내 판세를 뒤엎고 그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누구보다 디지털을 잘 활용해 본 전문가였기에 인터넷이 또한 얼마나 대중의 생각을 쉽게 제한할 수 있는 무기인지도 간파했을 것이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bh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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