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문학자인 김원중 건양대 교수
국내 첫 `사기’ 전편 완역 김원중 교수
편집본으론 고전이해 힘들어
원전 존중하며 중2 수준 풀이
‘홀대’에 백번 넘게 포기할뻔
편집본으론 고전이해 힘들어
원전 존중하며 중2 수준 풀이
‘홀대’에 백번 넘게 포기할뻔
중국 역사서 최고 고전인 <사기>처럼 유명한 책도 없지만, 이 책을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다. 52만6500여자에 달하는 <사기> 전체를 우리말로 완전하게 옮긴 번역본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추리고 다듬은 편집본들만 접할 수 있었을 따름이다.
중문학자인 김원중 건양대 교수(사진)가 최근 <사기 표(表)>와 <사기 서(書)>를 번역 출간해, 14년 동안 이어오던 <사기> 완역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사기>는 ‘본기’ 12편, ‘표’ 10편, ‘서’ 8편, ‘세가’ 30편, ‘열전’ 70편 등 전체 130편으로 이뤄져 있다. 김 교수는 1997년 <사기 열전>(2권)을, 지난해에는 <사기 본기>와 <사기 세가>를 번역했고, 이번에 <표>와 <서>를 출간해 비로소 <사기>의 모든 것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난 5일 만난 김 교수는 “20여년 동안 나름의 소명의식을 가지고 번역에 매달렸다”며 “끝내고 나니 100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갈 정도로 후련하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으로 김 교수는 ‘혼자 <사기>를 완역한 학자’, ‘<삼국지>와 <사기>를 함께 완역한 학자’ 등 다양한 수식어를 얻게 됐다. 일본과 미국에서도 홀로 사기를 번역한 사례는 없으며, 중국에서 이 고전을 현대 중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국가 주도로 여러명의 학자가 참여해 이뤄지고 있다고 김 교수는 설명했다. 특히 이번에 번역한 ‘표’는 ‘본기’, ‘세가’, ‘열전’에 분산된 역사적 사실 관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표로 정리한 기록물로서, 중국에서도 번역된 사례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교수는 혼자 번역에 매달려 이 대장정 같은 작업을 마쳤다. 중국 중화서국에서 냈던 <사기> 표점본(고문에 구두점을 찍은 판본)을 바탕삼았는데, 철저히 원전 중심주의를 지키면서도 가독성 높은 번역을 추구했다고 한다. 중학교 2학년 수준에서 번역된 말을 이해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잘된 번역의 기준으로 삼았다는 것. 또 우리나라만의 번역 정체성을 살리고픈 마음에 중국어·일본어 번역본은 거의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한다.
번역에 대한 집념은 국내 번역 현실을 우려하고 고민하는 데에서 나왔다. 중국의 ‘24사(史)’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완역된 작품은 자신이 번역한 <사기>와 <삼국지>뿐이다. 일본에서는 <한서>, <삼국지> 등이 이미 오래 전에 완역돼 있었으며, <표>를 포함한 <사기>의 완역도 지난해에 이뤄졌다.
김 교수는 “국내엔 저보다 높은 실력을 가진 분들이 훨씬 많다”며 “문제는 학자들이 번역에 매달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학문적 토양”이라고 지적했다. 아직도 번역을 학문적 성과로 인정해주지 않는 등 학문 제도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꼭 필요한 번역본이 나오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스로도 “<사기>를 번역하면서 백번도 더 때려치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렇지만 이미 <사기>에 깊이 매혹돼 어쩔 도리가 없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왜 진시황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형가의 이야기, 곧 실패담을 굳이 써넣었을까요? 아내의 충고를 듣고 태도를 바꾼 안자의 마부 이야기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은 왜 써넣었을까요? 이런 것들을 생각해보면 ‘통고금지변’(通古今之變), 곧 2500년 역사를 통해 인간의 흥망성쇠를 밝히고 만사의 근본과 핵심을 파악하고자 했던 사마천의 뜻을 다시 새길 수 있습니다.” 때문에 그는 ‘한 권으로 읽는’, ‘하루 만에 끝내는’ 등의 제목이 붙은 편집본을 봐서는 고전을 제대로 배울 수 없다고 말한다. 글쓴이의 의도를 생각하며 글 전체를 천천히 읽어내려갈 때 비로소 그 심오한 뜻을 깨칠 수 있다는 것이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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