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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자연·공학 경계 허문 ‘인류고전 연구광장’

등록 2011-11-08 20:43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대림국제관 인문학연구원에서 ‘문명의 텍스트’ 100회 특집 컬로퀴엄 발표에 나선 박용진 연구교수가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 개인의 연구 내용을 놓고 동료들의 검증을 받는 형식의 컬로퀴엄(집담회)은 본격적인 학제간 연구를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7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대림국제관 인문학연구원에서 ‘문명의 텍스트’ 100회 특집 컬로퀴엄 발표에 나선 박용진 연구교수가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연구자 개인의 연구 내용을 놓고 동료들의 검증을 받는 형식의 컬로퀴엄(집담회)은 본격적인 학제간 연구를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100회 맞은 서울대 HK문명연구사업단 컬로퀴엄
박사급 22명 등 각분야 42명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 등
질문·토론으로 다각적 연구
‘문명의 텍스트’ 시리즈로 출간
스페인 북부에 있는 도시 산티아고로 가는 순례길이 요새 국내에서도 인기다. 산티아고 순례는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으며, 어떤 문명사적 의미를 가질까? 그 답은 중세 기독교 문명의 고전으로 꼽히는 <성 야고보 기(記)> 가운데 제5권인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양사를 전공한 박용진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인문한국(HK) 연구교수는 이 책을 번역하고 해설해, 중세 기독교 문명의 본질을 찾아가려는 작업을 해왔다. 인류 문명의 주요 텍스트를 번역하고 주해(註解)하는 ‘문명의 텍스트’ 연구는 그가 속한 인문한국(HK)문명연구사업단의 주요 연구사업이다.

만약 다른 연구조직이었다면, 다른 동료들과 대강의 연구계획만 공유한 채 박 연구교수 혼자 써낸 글이 전체 연구 성과물 가운데 하나로 포함되는 수준에서 연구가 끝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명연구사업단은 연구원 전체가 참여하는 내부 컬로퀴엄(집담회)을 열어 한 학기마다 한번씩 자신의 연구 계획과 내용을 발표하고 논의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문명의 텍스트’는 기본적으로 개별 연구자들이 수행하는 사업이지만, 이 자리에서 나오는 동료들의 날카로운 비평과 지적들은 여기에 학제간 연구의 성격을 부여한다고 한다. 2008년 3월 처음 시작된 컬로퀴엄은 3년을 넘게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 7일 100회를 맞았다.

이날 박 연구교수는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가 쓰여진 역사적인 배경 및 주요 내용과 특징, 주해의 방향과 주안점 등을 발표했다. 예수의 열두제자 가운데 하나인 성 야고보를 모신 산티아고 성당은 예루살렘, 로마와 더불어 중세 3대 순례지였다고 한다. 그는 “<산티아고 순례 안내서>는 중세인들이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는지 보여줄 수 있으며, 당시 지방마다 흩어져 있던 종교 권력이 교황을 중심으로 중앙집권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봤다.

이에 대해 동료들의 다양한 질문과 지적이 쏟아졌다. 이슬람 문명 연구자는 “이슬람권에서 순례는 교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산티아고 순례 역시) 상업·도시의 발달과 함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건축 연구자는 박 연구교수가 밝힌 당시 성당 건축의 특징에 대해 “당시 문헌에 나오는 표현들이 이후 아예 건축용어로 굳어지고 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당시 교회를 성채처럼 지은 이유가 무엇인지, 중세에도 로마식 시간 인식이 남아 있었던 것은 어떤 의미인지 등에 대해서도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이어서 진행된 이혜경 연구교수의 <신민설> 발표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국 근대화의 선구적 이론가였던 양계초의 글들을 담은 <신민설>을 주해하려는 이 연구교수는 “동아시아 근대화의 대표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으며, 서양에서 발전된 개념이 동아시아로 옮겨지는 ‘번역과 해석’의 맥락을 알기 위해 중요한 자료가 된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발표가 끝나자 “내가 볼 땐 이러이러한 부분의 번역이 잘못됐다”는 지적에서부터 “일관되지 못했던 양계초의 사상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 등의 문제 제기가 쏟아져나왔다.

양계초가 내세운 ‘공인’과 ‘사인’의 구분과 그 해석에 대해서는, 근대국가와 근대적 개인의 연관성 등 서양사상사의 주요 담론에 입각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연구원 홍보를 맡고 있는 염정삼 연구교수는 “컬로퀴엄에서 나왔던 논의를 통해 자신의 연구 방향을 조정하기도, 아예 새로운 연구 영역에 진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진행되는 ‘문명의 텍스트’ 연구는 연구원들이 자율적으로 팀을 꾸려 진행하는 본격적인 학제간 연구인 ‘문명공동연구’와 함께 문명연구사업단의 중요한 두 축이다. 중국의 서학과 유럽의 중국학을 함께 비춰보며 유럽과 중국의 문명 교류를 살펴보는 팀, 각 문명권의 시간 개념을 비교 분석하는 팀 등이 활발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까지 진행됐던 1단계 사업의 결과물은 현재 한길사에서 ‘문명의 텍스트’와 ‘문명공동연구’ 시리즈로 출간되어 나오고 있으며, 현재 진행하고 있는 2단계 사업의 결과물들도 계속 출간될 예정이다.

현재 연구원에는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박사급 연구인력 22명과 일반연구원 10명, 연구보조원 10명 등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인력을 한데 묶는 것 자체보다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연구할 수 있는 틀거리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인문학연구원장이자 문명연구사업단장을 맡고 있는 송용준 서울대 교수는 “개별적으로 연구한 성과들을 나란히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으려면, 컬로퀴엄과 같이 학제간 연구를 뒷받침하는 본격적인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글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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