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회장의 그림창고>(고즈넉)의 작가 이은(본명 정한조·47)
이은 신작 ‘박회장의 그림창고’
출세에 목맨 관장·조폭 등
미술계 다양한 인물군 조명
“도덕적·법적 단죄 넘어선
예술로서의 미술 실종 다뤄”
출세에 목맨 관장·조폭 등
미술계 다양한 인물군 조명
“도덕적·법적 단죄 넘어선
예술로서의 미술 실종 다뤄”
미술 관련 소설만 벌써 네 권째. <박회장의 그림창고>(고즈넉)의 작가 이은(본명 정한조·47·사진)은 ‘미술 전문 작가’라는 호칭이 낯설지 않은 이다. 사진을 전공해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7년작 <미술관의 쥐>를 필두로 <수상한 미술관> <미술관 점거사건> 등 ‘미술(관)’ 소설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이 가운데 <미술관의 쥐>는 2009년 일본 고단샤의 ‘아시아 본격 미스터리 선집’에 포함되어 나왔으며, 프랑스의 필리프 피키에 출판사에서도 올 6월에 출간되었다.
1996년 <스포츠서울> 신춘문예 추리문학 부문에 당선해 등단한 그는 <미술평단> 신인평론상 출신의 미술평론가이기도 하다. 본명으로 낸 사진 관련 책도 몇 권 있으며, 미술관 시리즈 외에도 <누가 스피노자를 죽였을까?>(2003)와 <코미디는 끝났다>(2008) 등 두 권의 장편 추리소설을 낸 바 있다.
<박회장의 그림창고>는 재벌의 그림 로비 및 미술품 세탁을 소재로 삼은 소설이다. 세계그룹 박노수 회장이 집권당인 한민족당 당수이자 유력 대선후보인 서민왕에게 뇌물로 주려던 몇백억원짜리 그림이 중간에서 증발한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이 유머러스하게 그려진다.
젊은 몸과 미모를 무기로 출세의 사다리를 타고 오르는 세계미술관 관장 이사벨, 그 그림을 얼떨결에 지니게 된 미용사 소미, 소미에게 빌려주었던 사채를 받아 내고자 갖은 협박을 일삼는 양아치, 사라진 그림을 되찾고자 박회장이 동원한 조폭, 고가 미술품만을 전문적으로 훔치는 또 다른 조폭, 그리고 박회장의 비밀 그림창고의 존재를 폭로했다가 방송사에서 떨려나고 폐인이 되다시피 한 전직 방송기자 오타 등…. 소설은 한 편의 그림을 차지하고자 각축을 벌이는 다양한 인물군의 움직임을 여러 각도로 조명하면서 독자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지닌 대단원을 향해 속도감 있게 나아간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미술품과 미술시장 관련 사건을 소설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공분을 자아내는 사건들이 이어지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예술로서의 미술은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그렇게 좋아하고, 악착같이 사 모으려고 했던 미술품들이 실상은 예술이 아니었어. 하나에 수억, 수십억, 심지어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그것들은 예술이 아니었지.(…)그건 예술이 아니라 탐욕의 물화였어.(…)예술이라는 고귀하고 숭고한 이름으로 자행하는 천박한 돈 놀음일 뿐이라고.”
소설의 결말부에 나오는 어느 인물의 말은 작품의 문제의식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작가는 “미술 관련 스캔들에 대한 도덕적·법적 단죄에는 관심이 없다”며 “그보다는 그런 사건들을 통해 미술이 무엇인지에 대한 독자의 의식을 각성시키고자 한다”고 집필 의도를 밝혔다. 그는 또 “재벌의 미술관 운영 및 미술시장 개입에는 빛과 그림자의 양면이 있다”며 “한편으로는 그것이 축재와 상속, 로비의 수단으로 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국내 미술시장을 살리고 국내의 미술 애호가들에게 양질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한편 아트딜러와 독립 큐레이터로도 활동하고 있다. “본격문학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는 “문학성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디어와 재미로 승부하는 소설,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져 많은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는 소설을 쓰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소설 가운데 <미술관 점거사건>은 내년에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고, 이번 작품 역시 영화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고 그는 귀띔했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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