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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불문학자의 비열한 현실 뛰어넘기

등록 2012-02-19 19:47

‘잘 표현된 불행’ 시 평론 묶어
‘초현실주의 선언’ 브르통 분석
황현산 교수, 평론집·번역서 내

불문학자 겸 문학평론가 황현산(67·사진) 고려대 명예교수가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문예중앙)과 번역서 <초현실주의 선언>(미메시스)을 함께 내놓았다. 첫 평론집 <말과 시간의 깊이>(2002) 이후 10년 만에 펴낸 두 번째 평론집 <잘 표현된 불행>은 시와 관련된 평론만을 묶은 책이고, <초현실주의 선언>은 앙드레 브르통(1896~1966)이 작성한 ‘초현실주의 선언’(1924)과 ‘초현실주의 제2선언’(1930), 그리고 ‘초현실주의 제3선언 여부에 붙이는 전언’(1942)과 두 개의 관련 텍스트를 한데 모으고 방대한 주와 해설을 덧붙인 ‘결정판’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 프랑스의 상징주의부터 초현실주의까지의 중요 문헌들을 번역하고 주해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왔고, (…)”

“내 생각이 시에서 벗어난 적은 없으며, 내 삶과 크고 작게 연결된 제반 문제를 시와 연결지어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늘 시에 대해서 말하고, 시와 말을 하면서, 일상에 쫓기고 있는 한 마음의 평범한 상태가 어떻게 시적 상태로 바뀌는가를 알려고 애썼다.”

<잘 표현된 불행>에 붙인 ‘책머리에’에서 인용한 두 대목은 불문학자와 시 비평가 사이에 끼여서 그 둘을 병행 내지는 결합하고자 하는 지은이의 입지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시의 본질과 당대의 시를 둘러싼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힌 제1부, 원로부터 신예까지 동시대 시인들의 작업에 대한 해설성 평문을 모은 3부, 그리고 이미 문학사에 편입된 작고 시인들의 작품에 대한 연구와 비평을 담은 2부와 4부로 이루어졌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실험적이고 엽기적인 언어로 시단을 뒤흔든 미래파에 대한 지은이의 옹호는 인상적인데, 미래파를 대표하는 시인 황병승의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에 대한 그의 평문 ‘‘완전소중’ 시코쿠’는 대표적이다. “시가 모험이라면 비평도 모험이다. 비평은 시와 더불어 안온하지만 비열한 이 삶 밖으로 한 걸음이라도 내디디려고 애써야 한다.”

그가 다른 평문에서 쓴 이 구절은 기대와 상식을 배반하고 현실 너머의 세계를 추구하는 시, 그리고 그런 시를 발견하고 지지해야 하는 비평의 숙명에 대한 한 원로 비평가의 자기 다짐으로 다가온다.

“사실주의 또는 현실주의가 현실의 무거운 조건들을 파헤쳐 그 두터움에서 어떤 깊이를 발견하려 한다면, 초현실주의는 현실을 뛰어넘는 또 하나의 세계를 상상해냄으로써 현실의 억압으로부터 정신을 해방하려 한다.” <초현실주의 선언> 해설에서 황 교수가 쓴 이 문장은 미래파로 대표되는 실험적인 시들에 대한 옹호가 초현실주의 선언 번역 및 해설과 이어지는 고리를 잘 보여준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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