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은 우리 문학에서 보기 드물게 사물을 다른 시각으로 보고자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문학사에서 인간의 존재와 그 가치에 대해 이상만큼 진지하게 질문을 던졌던 문인은 달리 보기 어렵습니다.”
국문학자 권영민 교수(64)가 열세 개의 열쇳말을 통해 이상 문학의 비밀에 다가가 본 연구서 <이상 문학의 비밀 13>(민음사)을 내놓았다.
지난달 말로 31년 동안 봉직했던 서울대 국문과에서 물러나 단국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긴 권 교수는 탄생에서부터 짧고 강렬했던 문학 활동, 그리고 의문의 죽음까지 이상의 생애를 열세 개의 질문으로 정리하고 그 질문에 답하는 방식을 통해 수수께끼로 가득 찬 이상 문학의 비밀을 풀어 보고자 했다. 2009년 네 권짜리 이상전집을 몸소 엮어 냈으며 연구서 <이상 텍스트 연구>를 내놓기도 했던 권 교수가 또 하나의 이상 관련 책을 낸 까닭은 무엇일까?
“이상의 전집을 내는 과정에서 그의 개인사와 문학사적 배경과 관련한 기본적 사실의 규명이 너무 미흡하다는 걸 절감했어요. 평전과 연구서가 많이 나와 있긴 하지만, 풍문에 의해 떠벌려지거나 과장되게 서술된 부분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출생에서부터 사망까지의 전 과정을 단계적으로 조사해서 오류를 바로잡고 새로운 사실을 확인한 다음 그것을 근거로 열세 개의 질문을 던져 본 것입니다.”
이 책에서 권 교수가 새롭게 확인한 사실은 여럿이다. 우선 그동안 찾지 못했던 이상 자신의 호적을 확보해서 그와 변동림(김향안)의 결혼이 법적으로는 신고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상의 경성고공 학적부를 발굴해서 공개했으며, 그가 1929년 조선건축가협회에 정회원으로 가입했으며 그 자격으로 잡지 <조선과 건축>에 글을 발표하고 회원 상대 표지 공모에도 당선했음을 확인했다. 임종국이 발굴해서 ‘이상의 마지막 자화상’으로 소개했던 그림이 사실은 이상의 절친한 문우였던 박태원을 그린 그림이라는 주장도 처음으로 제기했다. 이밖에도 이상의 소설에서 언급된 영화들이 실제로 당시 서울이나 일본에서 개봉했던 작품들로서 이상 문학의 새로움과 유기적인 관련성을 지닌다는 사실 역시 이 책에서 강조되고 있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을 확인한 바탕 위에서 권 교수는 △이상은 왜 동경행을 택했는가 △<오감도>를 어떻게 볼 것인가 △구인회란 무엇인가 △이상에게 폐결핵이란 무엇인가 △이상의 그림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등 열세 개의 질문을 작성하고 독자들을 대신해서 그에 답해 본다. 1부터 0까지의 숫자와 가운뎃점(·)이 거울에 뒤집힌 형상으로 나열되어 있는 <오감도> 시 제4호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 그리고 거울 밖 ‘나’와 거울에 비친 ‘나’ 사이의 관계를 담은 <오감도> 시 제15호가 폐결핵이라는 질병을 매개로 한 이상의 병적 나르시시즘과 관련된다는 주장 역시 이 책에서 권 교수가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다. <오감도>와 관련한 권 교수의 가설적 주장은 여기서도 더 나아간다.
“이상은 원래 30편의 <오감도>를 준비해서 연재하려 했으나 독자들의 반발 때문에 열다섯 편만 연재하고 중단했습니다. 저는 <오감도> 연재 중단 뒤에 이상이 다른 제목으로 발표한 작품들이 <오감도>의 나머지 열다섯 편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그것을 입증하는 연구서를 다음 책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퇴직 뒤 한결 여유롭고 편안해진 그는 이상과 박태원, 이태준 등이 참여했던 문인 모임 ‘구인회’를 총체적으로 파고드는 연구서 역시 준비 중이며, 문학과 독자들 사이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시도로서 ‘권영민 교수의 문학 콘서트’(가칭)를 다음달부터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글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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