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글 검열하던 일 악질간수
감화과정 그려 윤동주 삶 반추
“자칫 식상할 수 있어 추리 동원”
국내 출간 전 국외 선판매 화제도
감화과정 그려 윤동주 삶 반추
“자칫 식상할 수 있어 추리 동원”
국내 출간 전 국외 선판매 화제도
이정명 소설 ‘별을 스치는 바람’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의 작가 이정명(47·사진)이 두 권짜리 신작 <별을 스치는 바람>(은행나무)을 내놓았다. 2차대전 종전 직전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 갇힌 채 생체실험을 당한 끝에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진 시인 윤동주의 마지막 날들을 그린 소설로, 국내 출간 전인 지난 5월 시놉시스만으로 영어 판권이 팔려서 화제가 되기도 했던 작품이다.
소설은 후쿠오카 형무소의 악질 간수이자 검열관이었던 스기야마 도잔이 끔찍하게 살해되는 사건으로 문을 연다. 주로 형무소 내의 조선인 수감자들을 잔혹하게 대했던 그의 살인범으로 독립운동가 최치수가 지목된다. 소설은 스기야마의 후임으로 검열 업무를 맡게 된 젊은 간수 ‘나’(와타나베 유이치)를 화자로 삼아 진행되는데, 유이치는 스기야마를 죽인 범인이 최치수가 아니며 이 사건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글 창제와 신윤복·김홍도의 풍속화를 소재로 삼은 전작들에서 추리적 기법을 동원해 읽는 재미를 더했던 작가는 신작에서도 적절한 추리적 요소들을 통해 독서의 긴장과 흥미를 지속시키는 방식을 택한다. 주인공인 스기야마 도잔의 감추어졌던 실체가 드러나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스기야마 도잔은 섬세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음악을 알고, 시를 이해하고 삶을 사랑했어요.”
“그는 시인이었어. 내가 아는 가장 훌륭한 시인이었지.”
앞의 말은 형무소 부속 의무병동의 간호사이자 피아니스트 지망생이었던 미도리의 것이고, 뒤엣것은 다름 아닌 윤동주가 스기야마를 가리켜 한 평이다. 이들의 말은 잔학무도한 폭력 간수라는, 스기야마에 대한 기존의 설명에 배치되는 증언이어서 놀랍다. 이들의 증언이 사실에 부합한다는 것은 소설이 진행되면서 차츰 확인되거니와, 특히 검열관 스기야마와 피검열자인 시인 윤동주의 관계는 이 소설의 핵심에 해당하는 대목이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애초에 형무소 쪽에서 스기야마를 검열관 자리에 앉힌 것은 불학무식한 그가 오히려 순수하고 정확하게 검열 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였다. 스기야마는 윤동주의 시는 물론이고 그가 조선인 수감자들의 의뢰를 받아 쓴 엽서 역시 꼼꼼하게 검열한다. 처음에 검열관과 피검열자라는 적대적 위치로 시작된 두 사람의 관계는 그러나 스기야마가 윤동주의 시와 엽서 글에 감화를 받게 되면서 근본적으로 변화를 겪는다. 급기야 스기야마는 윤동주 시의 애독자이자 그의 창작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후원자 역할을 자임하기에 이르며, 결국 그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고 만다.
작가는 “익히 알려진 인물을 익숙한 방식으로 그리면 자칫 식상할 수 있기 때문에 추리적 기법을 동원했다”며 “일본인 검열관이 윤동주의 글을 접하면서 변해 가는 과정을 통해 간접적으로 윤동주의 삶과 시를 생각해 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윤동주의 시 21편을 소설 속 적재적소에 삽입함으로써 독자들이 윤동주의 마지막 날들을 배경으로 그의 시를 한층 생생하게 느끼고 맛볼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소설 <뿌리 깊은 나무>와 <바람의 화원>은 텔레비전 드라마로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끈 바 있는데, 정작 그는 “영상의 화려함과 직접성에는 못 미칠지라도 활자로 표현되는 문학은 인간의 깊은 무언가를 움직여 한 사람을 바꿔 놓는 힘을 지닌다”고 말했다.
한편 <별을 스치는 바람>은 명문 출판사인 영국 팬 맥밀런에 선인세 10만달러를 받고 전세계 영어판권을 판 것을 비롯해 벌써 프랑스·폴란드 등 5개 나라에 판권이 팔렸다. <엄마를 부탁해>의 번역자 김지영씨가 번역을 맡은 영어판은 ‘더 인베스티게이션’(The Investigation·수사)이라는 제목으로 2014년 봄에 하드커버로 출간될 예정이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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