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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가리봉 연변 거리에
소녀가 울린 희망가

등록 2012-09-28 18:41수정 2012-09-28 19:26

이명랑
이명랑
버림받은 아이와 노교수
피아노 매개로 한 세레나데
작가 10대때 친구들이 가출한 곳
가난·절망에 인간적 온기 넣어
천사의 세레나데

이명랑 지음/뿔·1만3000원

이명랑의 소설 <천사의 세레나데>는 서울 가리봉동 중국동포 거주구역 연변(옌볜) 거리를 무대로 삼는다. 학령기를 지났음에도 학교에 다니지 않는, 몇 년째 일곱 살 지선이가 ‘나’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 간다.

지선이는 자신을 비롯한 연변 거리의 아이들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인생들”이라 단언한다.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 사람은 아니고, 한국 사람은 아니지만 할 줄 아는 말이라고는 한국말뿐인 아이”가 연변 거리의 아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도 중국인도 조선족도 아니라는 세 겹의 부정이 굴레가 되어 그들의 존재를 옥죈다.

여기에다가 지선이 자신은 한국인 아버지와 조선족 아버지라는 이중의 혈통 사이에서 혼란과 고통을 겪고 있다. 조선족인 엄마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낳은 게 지선이지만, 중국에서 사귀었던 조선족이 지선의 친부라는 의심 때문에 지선 모녀는 한국인 남편-아비에게 버림받은 것.

그런 지선 모녀의 주변에 있는 중국동포들 역시 처한 형편은 대동소이하다. 중국에 아내를 두고 온 최씨와 동거하면서 딸 향자를 낳은 ‘향자 아줌마’,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 노래를 입에 달고 사는 도문강 할머니, 독립유공자 후손으로 대한민국 국적취득시험을 준비하는 꼽추 할아버지, 한국 국적을 취득해서는 그걸 무기로 다른 동포들을 갈취해 먹고사는 박씨, 그리고 이 중국동포들을 대상으로 술과 웃음을 파는 한국인 정자 아줌마….

가리봉이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면서 빈집과 철거된 집터로 황량한 동네에서 지선과 향자는 도둑고양이 흉내나 내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그런 지선에게 운명처럼 피아노가 다가온다. 엄마가 일하는 술집 ‘꽃사슴’에 날마다 찾아와 혼자서 맥주 한 병을 마시고 일어나는 ‘영감탱이’가 알고 보니 동네에 하나뿐인 피아노 학원의 원장일 뿐만 아니라 한때는 유명짜한 교수 피아니스트였던 것.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이 후미진 골목까지 밀려난 그가 우연한 계기로 지선의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이 아이를 피아노의 세계로 이끈다.

연변 거리와 피아노라는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짝이 이 소설을 지탱하는 것인데, 술주정뱅이로 변신한 ‘숨은 고수’가 주인공 소녀의 감추어진 재능을 발견하고 음악이라는 신천지로 이끈다는 설정은 변형된 신데렐라 스토리 또는 무협지의 틀을 닮았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술집 종업원에서 다단계 판매원과 화상 채팅으로 갈수록 나락으로 떨어지는 지선 엄마의 하강의 움직임과, 보잘것없던 소녀가 일약 천재 음악가로 떠오르는 상승의 움직임은 이 음울한 소설에 나름의 균형감을 부여한다. 그리고 소녀의 손끝에서 피어오르는 피아노 선율은 망가진 공동체를 복원하고 절망의 땅에 희망의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로 구실한다.

“낮게, 여리게, 조심스럽게 속삭이는 선율 속에서 떠나온 고향의 이야기들이 흘러나온다. 과거를 품은 밤하늘의 별자리들이 나타나고, 천사들이 날갯짓한다. 날갯짓 소리에 옌볜 거리가 다시 태어난다. 철거촌의 허물어진 벽들이 살아 움직이고, 빈집들은 사람이 살던 시절의 온기를 머금은 집으로 다시 태어난다. 옌볜 거리가 음악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천사의 세레나데>의 무대인 연변 거리는 이명랑의 초기 소설 무대인 영등포시장을 떠오르게 한다. 가난과 절망 속에서도 인간적 온기와 활력을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작가는 “가리봉에서 뜻밖에도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아이들과 마주쳤던 경험에서 이 소설이 태어났다”며 “십대 시절 가출한 친구들이 향했던 가리봉과 소설을 통해 화해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글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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