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게 가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창비·1만2000원
게 가공선
고바야시 다키지 지음, 서은혜 옮김/창비·1만2000원
11월12일부터 16일까지 방송할 라디오 다큐 <대한민국 월급쟁이> 취재차 일본에 다녀왔다.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월급쟁이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경제적 조건’ 정도로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 가 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다. 국내에서 알바들을 인터뷰하다 보면 “일본 알바는 부러워요. 시급이 우리보다 높잖아요. 우리 시급은 최저 생계비니까요. 일본은 알바만 두 개 해도 먹고살 수 있다잖아요”라는 말을 곧잘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나라에 대한 꿈은 마치 유토피아 이야기를 하는 것같이 부러움에 가득 차 있었다. 50%에 이른다는 우리나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의 피곤, 불안을 드러낸 가슴 아픈 동경이었다.
그런데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신기한 베스트셀러 이야기를 들었다. 1929년에 나온 소설이 하나 있는데 지난해 다시 나온 뒤에 50만부 넘게 팔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소설일까? 80년 세월을 뛰어넘어 팔린 이유는 뭘까? 그 소설의 제목은 고바야시 다키지의 <게 가공선>이었다. 이 소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하코다테 항구에 광부, 농민, 빈민굴 소년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배를 타고 넉 달 동안 캄차카 바다에서 게를 잡는다. 그 배의 상황은 끔찍하다. 숙소는 악취가 들끓어서 똥통이라 불렸고 이가 들끓었고, 작업을 게을리하는 자는 “쇠막대기를 시뻘겋게 달구어서 몸에 갖다 대겠다는 협박”을 들어야 했다. 폭풍이 몰아쳐도 게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야 했다. 일하다 병들어 죽은 사람은 바다에 던져졌다. 그곳에 모인 거의 모든 이들은 평생 늘 뭔가 해 왔다. 국토 개척, 관개 공사, 철도 부설 등이었다. 그런데도 극도로 가난했다. 홋카이도의 노동자들은 자신들을 ‘다코’(문어)라고 불렀다. 문어는 살기 위해선 자기 팔다리까지 먹어치운다지, 이것이야말로 우리와 닮지 않았나, 어쨌든 죽고 싶지 않아. 캄차카에서 죽고 싶지 않아…아니 이미 서서히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지. 어부들은 이런 말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 소설이 이렇게 많이 팔린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일하는 사람들 마음속에 ‘그런데 우리가 혹시 지금 게 가공선에 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어두운 파도 위를 표류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정규직의 삶도 별 볼 일 없어. 좋아 보이지 않아’라고 스스로 프리터(시간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사람)를 선택했던 사람들은 이제
삼십대에 접어들었다. 아무리 일해도 조금도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 고용이 불안하다는 것, 인간다운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것의 고통이 <게 가공선>을 읽게 만든 힘이었다. 파견노동자, 프리터들은 “이러다간 아마 우린 홈리스가 되고 말 거예요”라고 말한다. 고용의 문제는 이제 공포스런 생존의 문제가 되어 버렸다. 일본과 우리나라는 서로 자살률 1, 2위를 다투고 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더니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고공 농성을 시작했다. 대법원의 불법 파견 판결이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가운데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도 지금 캄차카 바다다. ‘어쨌든 죽고 싶지 않아! 인간답게 살고 싶어!’ 하는 절규가 울려 퍼지는 바다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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