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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시인 김수영의 아내가 들려주는 ‘인간 김수영’

등록 2013-03-08 20:09수정 2013-03-08 20:09

김수영의 연인
김현경 지음/책읽는 오두막
1만2000원
시인 김수영(1921~1968)에 대한 값진 각주를 얻었다. <김수영의 연인>은 시인과 양계장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20년 동안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을 함께 키우던 김수영의 부인 김현경(86)씨가 낸 에세이집이다.

김수영은 시를 쓸 때 빈봉투 뒷면에 깨알처럼 적어내려가곤 했단다. 부인 김현경씨는 그의 초고를 원고지에 정서하며, 때론 “무엇이죠? 왜요?”라고 따져 묻던 편집자이면서 독자이면서 비평가였다. 그렇다고 그가 첫 독자의 말을 순하게 들었을 리 만무하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시 <김일성 만세>는 부인 걱정에도 아랑곳없이 여러 곳에 기고했지만 결국 40년이 지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이런 시는 어떤가. 김수영은 시 <죄와 벌>에서 “우산대로 여편네를 때려눕혔을 때… 아니 그보다도 먼저 아까운 것이 지우산을 현장에 버리고 온 일”이라고 고백했다. 철학자 강신주가 <김수영을 위하여>에서 들추기도 했던 그들 부부의 사정이 있다.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김수영이 일자리를 찾아 다시 대구로 떠난 뒤, 김현경은 김수영의 선린상고 2년 선배인 이종구와 잠시 살았던 일이 있다. 강신주는 김현경이 남편이 우산대로 때리는 것까지 감당했던 이유는 남편을 배신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짐작했지만 김현경 자신은 담담할 뿐이다. “그 일이 있고 한참 후에야 그날 수영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 있었다. 일단 장남의 과외 교사가 신통치 않아 수영의 마음이 불편했던 것. 아니 그보다는 영화 속 주인공들의 기형적인 사랑과 욕망. 그리고 수영과 나.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수영은 나를 때리고 <죄와 벌>을 썼는지 모른다.”

자신의 폭력과 외도를 고백하고 심지어 뒤치다꺼리도 부탁하는 남편을 둔 아내의 시선은 속죄자보다는 어머니에, 아니 그의 시에 접붙어 다른 시를 꽃피우길 원했던 시인에 가깝다. “술에 취하면 애교가 대단해질 때도 있지만 울분과 불만의 분화구로 변할 때도 있다. … 그것이 산고였을까. 그 뒤에는 어김없이 새로운 시들이 태어났다.”

책은 김수영이 죽기 전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짤막하게 적은 1부와 김수영의 시와 그들의 이야기를 엮은 2부, 그리고 산문, 기고글로 되어 있다.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가족의 회한 대신 “진짜 속물이 되는 일은 속물이 되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일만큼 어렵다고 했다. 그만큼 고독하다고도 했다”며 생활인 김수영의 몸부림이나 “내가 나쁘냐? 우리나라가 나쁘냐?”는 집요한 질문의 세월을 전한다. 시인 김수영이 죽은 다음 부인은 그가 쓰던 거울을 닦으며 영원히 48살로 붙박인 남편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가 말하지 못한 비밀을 탐색한 세월이 45년이다.

남은주 <한겨레21>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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