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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좋은 노동 없이 좋은 책 없다” 출판 철학의 힘

등록 2013-05-19 20:14수정 2013-07-18 11:50

북카페 ‘후마니타스 책다방’ 한쪽에 마련된 회의 또는 휴식용 공간에 모여 앉은 박상훈 대표(앞줄 맨오른쪽)와 그의 사회과학 출판사업 동지들. 박 대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민용, 안중철, 김재선, 홍슬비, 최미정, 장윤미, 이진실, 윤상훈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북카페 ‘후마니타스 책다방’ 한쪽에 마련된 회의 또는 휴식용 공간에 모여 앉은 박상훈 대표(앞줄 맨오른쪽)와 그의 사회과학 출판사업 동지들. 박 대표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정민용, 안중철, 김재선, 홍슬비, 최미정, 장윤미, 이진실, 윤상훈씨.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작지만 강한 출판사 ① 후마니타스

한국 출판계 척박한 토양에서 한 해 인문서를 10종 가까이 내며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출판사들의 이야기 ‘작지만 강한 출판사’가 이번주부터 연재됩니다. 규모는 작지만 또렷한 성과를 내온 이들의 성장담과 출판전략, 비전,기획자 면면 등을 출판사 현장 취재를 통해 소개합니다.

서울 지하철 6호선 상수역에서 합정동 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3층짜리 서울치과의사 신용협동조합 건물이 나오고 그 1층에 ‘후마니타스 책다방’이라는 이름의 카페가 있다. 50평 정도 되는 1층 전체를 차지한 밝고 아늑한 분위기의 이 북카페를 장식하고 있는 인테리어의 주재료는 책이다. 카페 안쪽에 책장으로 구획된 듯한 몇 개의 공간들이 배치돼 있는데, 이곳이 한국 인문사회과학출판사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고 있는 도서출판 후마니타스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 <소금꽃 나무>(김진숙), <법률사무소 김앤장>(임종인·장화식), <부러진 화살>(서형),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하종강),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권성현·김순천·진재연), <부동산 계급사회>(손낙구), <아파트 공화국>(발레리 줄레조), <한국 사회 불평등 연구>(신광영), <복지국가 스웨덴>(신필균), <세계 노동운동사>(김금수)….

매달 살림살이 공개하는 11인 공동체
한국사회 환부 파헤치며 주목받아
“사회 르포·시민 민주주의 천착할 것”

후마니타스의 책들이다. 한계와 좌절에 직면한 정치와 민주주의, 불평등과 소외 등 한국 사회의 아픈 곳, 가장 심각하고 민감한 곳을 건드리고 파헤치며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한 이들 책은 적지 않은 파장과 함께 깊은 인상을 남겼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는 사회성이 강한 책을 만든다. 그러면서도 인간 개인의 실존적 문제가 실종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과학이 있는 인문학, 인간이 있는 사회과학을 구현하려는 것이다. 인간이 만든 논리 그리고 그 기초 위에서 만들어진 인위적 제도들이 인간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지 않도록, 언제나 스스로를 돌아보려 한다.”

후마니타스의 이런 출판철학이 진정성을 갖는 것은 스스로 이를 제대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마니타스처럼 구성원과 인건비, 월별 매출액, 수입과 지출, 손익 및 부채 규모까지 회사 안팎에 다 공개(www.humanitas.co.kr)하고 스스로 자율과 민주주의를 실천하면서 ‘자유로운 공동체’를 지향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 “어떤 희생이 있더라도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후마니타스의 관점이 아니다. 좋은 책보다는 좋은 노동이다. 좋은 노동 없이 좋은 책 없다”고 박상훈(49) 대표는 말했다.

후마니타스의 연간 매출액은 10억원도 채 되지 않는다. 총 11명이 꾸려가는 후마니타스가 강한 것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소유·경영구조까지 기성관념을 벗어던진 이런 창업정신의 실천 덕이다. 후마니타스에는 나름의 전략과 신조가 있다. 사회현실을 정면으로 다룰 것, 그러면서 운동보다는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킬 것, 그리고 정치와 민주주의를 정치인들의 것이 아니라 시민들의 것으로 만들 것. 박 대표는 “현실만큼 좋은 책이 없다”고 했다. “인간사회의 갈등과 대결을 다루는 사회과학은 대단히 재미있는 분야다. 이를 어렵게 여기는 풍토를 바꿀 필요가 있다.” 정치학 전공자로 <만들어진 현실> <정치의 발견> <민주주의의 재발견> 등을 쓴 박 대표 자신이 그 중심에 서 있다.

후마니타스는 2002년 창립 이후 지금까지 160여종의 책을 냈다. 첫 책이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였다. 후마니타스 최대 베스트셀러요 스테디셀러인 이 책도 그러나 ‘고작’(?) 6만부 남짓 나갔다. “1만부 이상 나간 책이 10종쯤은 된다. 2000부 이상 나가는 책이 20종 이상은 돼야 좀 안정적일 텐데, 아직은 좀 못미치는 수준이다. 2~3년 정도 더 버티면 가능하지 않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그는 “책 좀 적게 냈으면 좋겠다”고 했다. 책과 편집의 질을 높이려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한데, 신간을 자꾸 찍어내야 유지될 수 있는 우리 출판 현실이 이를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다. “출판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사회적 방어막이 돼줘야 하는데, 출판사들이 오히려 한 수 더 뜬다. 출판 종수로는 우리나라가 인구 비례당 세계 세번째로 많다. 수지가 안 맞는데도 계속 찍고 절판시킨다. 복권 당첨 바라듯 ‘대박’을 기대하는 것이다.”

앞으로 주력할 분야는 사회 르포다. “르포는 재미있어야 하고 구조를 뜯어보고 다시 종합할 수 있는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 박 대표의 학문적 스승이자 후마니타스 상임고문인 최장집 교수의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인간적 상처들>이 바로 그 연장선상에 있다. 또 하나의 주력분야인 정치와 민주주의 문제는 앞으로 청소년을 주요 독자로 겨냥함으로써, 미래 시민을 위한 사회과학으로 키울 작정이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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