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들이 한상 차린 우리 음식 76가지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
한국시인협회 엮음
문학세계사·1만3000원 “씹을수록 진득한 굴비 한 조각/ 감칠맛도 아니고 짠맛도 아니고 매운맛도 아닌/ 그 맛, 당길 맛/ 중국 맛도 아니고 일본 맛도 아니고 서양 맛은 더욱 아닌/ 그 맛, 조선 맛”(조창환 <굴비> 부분) 시인 76명이 우리 음식 한 가지씩을 노래한 시집이 나왔다. 한국시인협회가 엮은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이 그것. 쌀밥, 칼국수, 된장찌개 같은 흔한 음식에서부터 도다리쑥국, 미나리강회처럼 개성 넘치는 메뉴까지 군침 도는 밥과 찬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어머니 손맛이 밴 잔치국수를 찾아/ 이즈음도 재래시장 곳곳을 뒤진다”(김종해 <잔치국수>)거나 “텅 빈 자궁을 채우고 생살을 아물게 하는/ 미역국에서 엄마가 나왔다”(이규리 <미역국>)는 구절에서 보듯 음식은 무엇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곽효환의 <삼합>과 이영광의 <안동 찜닭>, 김병호의 <돼지갈비>처럼 아버지에 얽힌 추억을 수반하는 음식도 있다. 음식은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살아갈 힘을 얻는 수단이지만 때로는 삶에 대한 비유로도 쓰인다. “사랑에 무르익은 애인처럼 부드럽고 연하고 순하여/ 다른 것과도 잘 어울리는 순두부는 입술의 맛/ 그러나 급하게 먹으면 입에 화상을 입을 수 있지/ 급한 사랑처럼/ 그래서 후후 불면서 먹어야 해”(공광규 <순두부찌개>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히틀러가 21세기 한국에 나타난다면
히틀러의 성공시대 2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1만4000원 “민주주의라는 악성 종양을 도려내야 한다.” 14년 전인 1919년에는 전역 병사들 앞에서 떠들던 생계형 안보 강사에 불과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2월 총리 임명자 신분으로 군부 인사들 앞에서 한 말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히틀러가 민주주의 독일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부조리한 스토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만화가 김태권씨가 <히틀러의 성공시대> 제2권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해 11월에 펴낸 1권이 ‘듣보잡’ 정치 신인 히틀러가 거물 정치인이 되는 우여곡절을 그렸다면, 2권에선 1932년 독일 대선을 중심으로 히틀러가 집권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 일어난 독일 사회의 변화를 담았다. 만화에 담긴 유머는 딱딱한 역사를 웃으며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지은이는 히틀러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파는 권력 유지를 위해 히틀러를 키웠다. 그러나 우파는 한 점 떼어준 권력을 먹고 자라 괴물이 돼버린 히틀러를 통제하지 못했다. 좌파는 내부 분열로 히틀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성공을 “의지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성공한 히틀러는 독일 사회를 ‘불관용’과 ‘증오’로 물들였다. 지은이는 “독일의 민주주의가 히틀러에 의해 몇 개월 만에 싹 사라졌다. 이런 일이 여전히 가능할까”라며 현재진행형 질문을 던진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외국인이 바라본 100년전 ‘한국인’
스무살엔 몰랐던 내한민국
이숲 지음/예옥·1만5000원 왜 대한민국이 아닌 ‘내한민국’일까? 지은이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나라를 지금에야 발견했다는 것을 제목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편 <매혹>, <도취> 등을 발표한 소설가 이숲은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외국인이 1904년에 쓴 한국에 관한 책을 보게 된다.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았던 구한말 한국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책 내용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강자 중심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까지 지배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식민지가 되었으니 그 시대 한국인의 장점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100년 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을 방문했거나 체류했던 유럽과 미국인들이 남긴 기록들을 꼼꼼히 분석해 과거 한국인의 모습을 재현했다. 거기엔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호탕한 민족”이라거나 “상당히 지적이며 놀라운 이해력” 등 그동안 숨겨져 있던 한국인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지은이는 민족이란 관점으로 이 책을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세계 열강의 패권의 시대에 조선이 역사적 약자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민족을 넘어 역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반추를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용서할 자유, 용서하지 않을 자유
용서라는 고통
스티븐 체리 지음·송연수 옮김
황소자리·1만5000원 길에서 부딪힌 사람, 지갑을 훔쳐간 사람, 당신 배우자와 바람을 피운 동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 당신을 고문한 자가 있다면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라는 고통>을 쓴 신학자 스티븐 체리는 이 질문을 통해 용서가 왜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지 설명한다. 그는 용서가 자기 앞에 닥친 현실이 돼버린 이들의 ‘경험’과 막연히 글로 쓴 ‘관념’ 사이의 괴리를 메우려고 책을 썼다. 제2차대전 중 일본군에 고문을 당한 에릭 로맥스는 자신의 맥박이 뛰는지 확인하던 통역관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수십년 후 그 통역관이 “전사자 묘지를 방문해 묵념을 하는데 용서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쓴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에릭 로맥스는 “신은 그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용서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사이먼 비젠탈은 죽음을 앞둔 한 나치 장교의 방에 끌려가 “용서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죽기 전 안식을 위해 용서의 말을 듣고 싶다는 장교 앞에서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책은 용서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만 용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용서하는 마음을 갖추려면 정의감과 미래 지향성, 믿음과 공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창자가 딸려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레 창을 뽑아내야 한다”는 지은이의 시선이 섬세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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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인협회 엮음
문학세계사·1만3000원 “씹을수록 진득한 굴비 한 조각/ 감칠맛도 아니고 짠맛도 아니고 매운맛도 아닌/ 그 맛, 당길 맛/ 중국 맛도 아니고 일본 맛도 아니고 서양 맛은 더욱 아닌/ 그 맛, 조선 맛”(조창환 <굴비> 부분) 시인 76명이 우리 음식 한 가지씩을 노래한 시집이 나왔다. 한국시인협회가 엮은 <시로 맛을 낸 행복한 우리 한식>이 그것. 쌀밥, 칼국수, 된장찌개 같은 흔한 음식에서부터 도다리쑥국, 미나리강회처럼 개성 넘치는 메뉴까지 군침 도는 밥과 찬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 “어머니 손맛이 밴 잔치국수를 찾아/ 이즈음도 재래시장 곳곳을 뒤진다”(김종해 <잔치국수>)거나 “텅 빈 자궁을 채우고 생살을 아물게 하는/ 미역국에서 엄마가 나왔다”(이규리 <미역국>)는 구절에서 보듯 음식은 무엇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킨다. 곽효환의 <삼합>과 이영광의 <안동 찜닭>, 김병호의 <돼지갈비>처럼 아버지에 얽힌 추억을 수반하는 음식도 있다. 음식은 물론 허기진 배를 채우고 살아갈 힘을 얻는 수단이지만 때로는 삶에 대한 비유로도 쓰인다. “사랑에 무르익은 애인처럼 부드럽고 연하고 순하여/ 다른 것과도 잘 어울리는 순두부는 입술의 맛/ 그러나 급하게 먹으면 입에 화상을 입을 수 있지/ 급한 사랑처럼/ 그래서 후후 불면서 먹어야 해”(공광규 <순두부찌개> 부분) 최재봉 기자 bong@hani.co.kr
김태권 글·그림/한겨레출판·1만4000원 “민주주의라는 악성 종양을 도려내야 한다.” 14년 전인 1919년에는 전역 병사들 앞에서 떠들던 생계형 안보 강사에 불과했던 아돌프 히틀러가 1933년 2월 총리 임명자 신분으로 군부 인사들 앞에서 한 말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지닌 히틀러가 민주주의 독일 사회에서 하루아침에 최고 권력자가 된다는 ‘부조리한 스토리’가 어떻게 가능했을까? 만화가 김태권씨가 <히틀러의 성공시대> 제2권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지난해 11월에 펴낸 1권이 ‘듣보잡’ 정치 신인 히틀러가 거물 정치인이 되는 우여곡절을 그렸다면, 2권에선 1932년 독일 대선을 중심으로 히틀러가 집권하기까지의 과정과 그 이후 일어난 독일 사회의 변화를 담았다. 만화에 담긴 유머는 딱딱한 역사를 웃으며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지은이는 히틀러의 성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우파는 권력 유지를 위해 히틀러를 키웠다. 그러나 우파는 한 점 떼어준 권력을 먹고 자라 괴물이 돼버린 히틀러를 통제하지 못했다. 좌파는 내부 분열로 히틀러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히틀러는 자신의 성공을 “의지의 승리”라고 자평했다. 성공한 히틀러는 독일 사회를 ‘불관용’과 ‘증오’로 물들였다. 지은이는 “독일의 민주주의가 히틀러에 의해 몇 개월 만에 싹 사라졌다. 이런 일이 여전히 가능할까”라며 현재진행형 질문을 던진다.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
이숲 지음/예옥·1만5000원 왜 대한민국이 아닌 ‘내한민국’일까? 지은이는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내’ 나라를 지금에야 발견했다는 것을 제목 속에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장편 <매혹>, <도취> 등을 발표한 소설가 이숲은 스웨덴에서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외국인이 1904년에 쓴 한국에 관한 책을 보게 된다. “게으르고 무기력하며 정신적으로 정체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많았던 구한말 한국인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책 내용을 보고 상당히 놀랐다고 한다. 강자 중심의 역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까지 지배했다.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식민지가 되었으니 그 시대 한국인의 장점을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책은 100년 전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을 방문했거나 체류했던 유럽과 미국인들이 남긴 기록들을 꼼꼼히 분석해 과거 한국인의 모습을 재현했다. 거기엔 “자유분방하고 쾌활하며 호탕한 민족”이라거나 “상당히 지적이며 놀라운 이해력” 등 그동안 숨겨져 있던 한국인에 대한 다양한 모습이 담겼다. 지은이는 민족이란 관점으로 이 책을 해석하는 것을 경계한다. 그는 “세계 열강의 패권의 시대에 조선이 역사적 약자였다는 점에 주목했다. 민족을 넘어 역사에 묻힌 목소리에 귀 기울여, 정체성에 대한 올바른 반추를 위해 이 글을 썼다”고 말했다. 김소연 기자 dandy@hani.co.kr
스티븐 체리 지음·송연수 옮김
황소자리·1만5000원 길에서 부딪힌 사람, 지갑을 훔쳐간 사람, 당신 배우자와 바람을 피운 동료,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인 자, 당신을 고문한 자가 있다면 어디까지 용서할 수 있는가? <용서라는 고통>을 쓴 신학자 스티븐 체리는 이 질문을 통해 용서가 왜 그토록 이해하기 어려운 말인지 설명한다. 그는 용서가 자기 앞에 닥친 현실이 돼버린 이들의 ‘경험’과 막연히 글로 쓴 ‘관념’ 사이의 괴리를 메우려고 책을 썼다. 제2차대전 중 일본군에 고문을 당한 에릭 로맥스는 자신의 맥박이 뛰는지 확인하던 통역관의 얼굴을 잊지 못했다. 수십년 후 그 통역관이 “전사자 묘지를 방문해 묵념을 하는데 용서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쓴 글을 읽고 충격에 빠졌다. 에릭 로맥스는 “신은 그를 용서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를 용서한 적이 없다”고 적었다. 강제수용소에 갇혀 있던 유대인 사이먼 비젠탈은 죽음을 앞둔 한 나치 장교의 방에 끌려가 “용서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죽기 전 안식을 위해 용서의 말을 듣고 싶다는 장교 앞에서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책은 용서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만 용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용서하는 마음을 갖추려면 정의감과 미래 지향성, 믿음과 공감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창자가 딸려나오지 않도록 조심스레 창을 뽑아내야 한다”는 지은이의 시선이 섬세하다.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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