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책&생각

6월 24일 출판 잠깐독서

등록 2013-06-23 20:21

손바닥 소설가가 쏘아올린 똥 덩어리

오리 날다
신수원 지음/아고라·1만2000원

4년 전, 시사주간 <한겨레21> 기자들은 ‘똥’ 생각에 머리를 싸맸다. 기륭전자 등 장기 농성투쟁장의 기사는, 그 절박함과는 별개로 싸움이 길어지다보니 새롭지 않단 이유로 잘 쓰이지 않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기자들이 놓친 부분이 있었다. ‘똥’이었다. 장기투쟁장에 나앉은 그들도 인간이었다. 당시 <한겨레21>이 주최한 ‘손바닥 문학상’의 1회 수상자가 된 신수원은 35m 철탑에 올라 농성에 나선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똥 이야기를 다룬 <오리 날다>라는 작품으로 기자들에게 충격과 고민을 안겼다. 그의 소설은 현장에서 나왔다. 열일곱에 구로공단에 들어간 그는 고등학교도 산업체특별학급을 졸업하고 1989년에는 한 공장의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해고와 구속, 하청 등의 단어는 그와 멀지 않다. 아니,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해고가 되고 투쟁에 나서 사방이 뻥 뚫린 철탑 위에서 똥을 누어야 하는 여성 노동자의 신세는 우리 모두에게서 멀지 않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단편은 손바닥만해서 읽기에 부담이 없다. 가사 도우미로 시작해 노래방 도우미에 이른 사연을 다룬 <내 이름은 도우미> 등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무수한 착취를 매서운 눈길로 집어내 소설로 썼다. 작은 손바닥이 가슴팍을 누르는 힘이 세다. 답답하다면 세상은 조금 바뀌어야 한다.

임지선 기자


하루살이가 하루만 산다고?

하천생태계와 담수무척추동물
김명철·천승필·이존국 지음
지오북·4만5000원

아이들과 계곡이나 공원 연못에 갔을 때 ‘존경’받는 요령이 있다. 누구나 아는 물고기나 개구리를 들먹이지 말고 가만히 하천 바닥의 돌을 집어드는 것이다. 돌 표면엔 반 시간은 설명할 수 있는 작은 생물이 꼬물거리고 있을 것이다. 물론 미리 공부를 해 가야 하지만.

<하천생태계와 담수무척추동물>은 물 밑바닥에 사는 하루살이, 다슬기, 조개, 민물새우, 실지렁이, 잠자리애벌레, 물방개 따위의 생물을 다룬 친절한 도감이다. 사진과 한자 투의 토막 글로 이뤄진 도감이 아니라 물속 생태계에 관한 자세한 설명과 생물의 특징을 알 수 있는 사진, 비슷한 종 사이의 구별법 등을 두루 갖춰 딱딱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소개된 301종 가운데 하루살이는 가장 친근하면서도 오해가 많은 곤충일 것이다. 우리나라 하루살이목에는 ‘하루살이’ 앞에 ‘입술’ ‘봄처녀’ ‘봄총각’ ‘알통’ 등의 접두어가 붙는 것을 포함해 무려 54종이 있다. 대개 맑은 물에 산다. 문제는 ‘하루살이’란 이름인데, 물 바닥에서 나뭇잎 찌꺼기 등을 먹고 살다 1년에 한두 번 성충으로 탈바꿈해 물 밖으로 나온 뒤 짝짓기와 산란을 하고 죽는다. 강변 동네 불빛으로 떼지어 몰려드는 하루살이 성충은 채 한 달을 못 살지만, 물속의 유충으로 대개 1~2년을 산 뒤이니 그리 덧없을 것도 없다.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포레스트 검프 능가하는 진짜같은 가짜

보일러플레이트
폴 기난·아니나 베넷 지음, 김지선 옮김
사이언스북스·2만5000원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에는, 당시는 주목받지 못했지만 놀라운 기술의 결정체가 첫선을 보였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엄청나게 힘이 센 기계 인간, 로봇이 등장한 것이다. 전기 연구자였던 아치볼드 캠피언이 전설적인 과학자인 니콜라 테슬라, 그리고 에드워드 풀러턴과 긴밀히 공조하며 창조한 자동기계다.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누나의 남편, 매형이 조미전쟁(신미양요)에서 전사하는 걸 보고 낙담한 아치볼드는 사람을 대신해 싸우고 인명을 구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 로봇을 발명했다. 나중에 보일러플레이트라는 별명을 얻게 된 이 자동기계는 스페인-미국전쟁, 러-일전쟁에 참전했을 뿐 아니라 아문센보다 먼저 남극점에 도달했으며 파나마 운하 건설에 뛰어들었고 1차대전 때는 아라비아의 로렌스와 함께 아랍 민중봉기에도 가담했다. 세계사의 주요 국면에 나타나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러고는 1차대전의 막바지에 돌연 전장의 한가운데서 사라졌다. 정말? 물론 거짓말이다. 에스에프 만화 작가 부부가 지어낸 허구다. 로렌스 대위와 찍은 사진, 전설의 파이터인 잭 존슨과의 시합 장면,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나란히 서 있는 동상 등. 맨 마지막 장의 각주를 읽지 않는다면 깜빡 속을 만하다. 역사광이자 초기 로봇 전문가인 지은이의 재치와 절묘한 상상력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보다 한수 위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손님의 마음을 읽어내는 로봇 만화

어덜트 파크
오영진 지음/창비·1만3000원

이곳은 외로운 남자 어른들의 놀이터다. ‘성인 공원’이란 뜻의 술집 ‘어덜트 파크’엔 남자 손님을 맞아주는 ‘여자’가 여럿 있다. 알고 보면 이들은 순전히 대화 상대로만 개발된 로봇들이다. 그래도 손님들은 대기번호표 받아가며 기다린다. 오로지 이야기하기 위해서다.

만화 <어덜트 파크>에 나오는 남자들의 사정은 이렇다. 노숙자 생활을 하던 강모는 신장을 팔아 맥줏집을 차린다. 준호는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 아내를 돌보다가 결국 아내의 뇌를 팔라는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만다. 병원 원무과에서 일하는 동수는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런 과정의 브로커 노릇을 해야 한다.

어덜트 파크에선 무슨 이야기가 오갈까. 평생을 바쳐 일하던 회사에서 밀려날 위기에 처한 용배에게 로봇은 “당신은 지금 추락하는 게 아니라 잠시 여행나온 것”이라고 말해준다. 월급쟁이들에겐 당신은 나의 흑기사라고 용기를 북돋우고, 여자친구와 화해하고 싶다면 화해의 기술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그런데 로봇은 상대방의 감정을 인지하고 상대가 원하는 대로 대화를 유도할 뿐, 실은 이야기의 데이터는 모두 손님의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남쪽 손님> <수상한 연립주택> 등을 그렸던 만화가 오영진은 어느 날 꿈에 나왔던 로봇과의 대화를 소재로 이 만화를 그렸다고 한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해뜰날’ 가수 송대관 유족 후배들 슬픔 속 발인 1.

‘해뜰날’ 가수 송대관 유족 후배들 슬픔 속 발인

조선시대 자수 병풍의 발견…괴석과 모란 위에 박쥐가 날아다니네 2.

조선시대 자수 병풍의 발견…괴석과 모란 위에 박쥐가 날아다니네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3.

노안이 오면 책을 읽으세요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4.

괴물이 되어서야 묻는다, 지금 내 모습을 사랑해 줄 수는 없냐고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5.

16살 박윤재, 로잔 발레콩쿠르 우승…한국 남자 무용수 최초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