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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책&생각

학교폭력의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일진’

등록 2013-06-23 20:44수정 2013-06-24 15:21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한 주를 여는 생각
‘학교폭력’ 비극 이후에도
슬퍼하지 않는 ‘폭력학교’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
조영선 외 8명 지음/교육공동체 벗 펴냄

박아무개양과 권아무개군은 둘 다 대구 ㄷ중학교를 다녔다. 박양은 2학년 5반, 권군은 1반이었다. 둘 다 학교폭력 피해자였으나 서로의 고민을 알지 못했다. 박양은 2011년 7월, 권군은 12월에 그 동네의 같은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부모들은 법원에서 만났다. 대구광역시, ㄷ법인, 교장, 교감, 담임교사, 가해 학생 부모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박양의 경우 피해가 사소했다며 청구를 기각했고 피해 사실을 상세히 기록한 유서를 남긴 권군의 피해만 인정했다. 권군을 괴롭힌 학생 두 명이 징역형을 받고 학교 관계자와 가해자 부모가 손해배상을 하며 사건은 마무리됐다.

‘사건’은 마무리됐는가?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학교폭력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것들>을 쓴 9명의 교사와 인권활동가들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4대악’으로 규정한 학교폭력 문제에서 무엇이 진짜 ‘악’인지 지은이들은 끈기 있게 이야기한다. 친구가 죽었는데도 숨죽여야 하는 학교, 제대로 된 애도를 하지 않는 학교, 가해자를 몰아내고 나쁜 기억을 황급히 지우려는 학교의 모습 곳곳에 폭력이 도사린다.

“똑바로 서! 손으로 막으면 손 다친다!” 가해 학생들이 권군을 엎드리게 하고 허벅지를 때리며 한 말이다. 익숙한 말투다. 학생들의 폭력 속에는 학교가 아이들을 대했던 태도가 고스란히 묻어난다. 권군은 유서에 “(가해 학생들이) 우리집 현관 자물쇠 비밀번호를 알고 있으니 꼭 좀 바꿔 달라”는 말을 두 번이나 적었다. 보복이 무서워 털어놓지 못했다 했다.

책은 “학교폭력은 사건이 아니라 문화”라고 말한다. 털어놓으면 오히려 보복에 내몰리고, 왕따당하는 아이를 감싸다가 “나댄다”고 왕따가 되는 경우를 아이들은 수없이 목격했다. 심한 체벌을 당하고 우는 친구를 보면서도 “괜찮으냐”고 묻지 못하고 시선을 돌린다. 실제 박양의 경우 죽기 전 피해 사실을 편지로 써 담임교사에게 전달했다. 그랬더니 교사가 아무 설명 없이 반 아이 전부를 집단 체벌했다. 폭력을 폭력으로 누르는 학교에서 아이들은 희망의 끈을 놓고 있다.

학생들이 죽음으로써 폭로하는 것은 학교 공동체의 무관심과 무능이다. 권군을 위해 교실 책상에 조화를 놓았느냐는 한 기자의 질문에 당시 교감은 “자살한 애 영웅 만들 일 있느냐”고 말했다. 학교는 왜 슬퍼하지 못하는가. 책은 학교폭력이 아니라 ‘폭력 학교’에 대한 질문부터 시작한다.

임지선 기자sun21@hani.co.kr


학교폭력의 뒤에 숨어있는 ‘진짜 일진’

학교폭력으로 학생이 자살해도 학교는 사건을 덮기에만 급급해한다. 학교는 애도를 모른다. 고통을 기억하고 그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는 데에서부터 학교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학교는 어떤 곳인가? 지난해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맞이한 새 학기 풍경을 조영선 경인고 교사는 “그야말로 학교폭력의, 학교폭력을 위한, 학교폭력에 의한 행정의 연속이었다”고 기억했다.

학교마다 전담 경찰관이 배치됐고 학급 야영비도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예산 명목으로 지원받아야 했으며 식목일에는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나무를 심었다. 늘 그렇듯 학교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일사불란하다.

학생 사이의 폭력을 해결하기 위해 학교는 공권력이라는 또다른 폭력에 기댄다. ‘힘의 논리’에 따른 폭력적인 지시와 명령이 난무하는 학교를 바라보며 교사와 인권운동가들이 모여 “누가 진짜 일진인가” 가려보자는 기획을 준비했다. 학교폭력 예방 대책으로 일진을 색출하려 한 교육 당국을 비꼰 것이다. 9명이 각자 글을 써 협동조합 ‘교육공동체 벗’의 격월간 교육전문지 <오늘의 교육>에 글을 실었다. 그 원고들을 다듬어 <그리고 학교는 무사했다>를 펴냈다.

책은 “우리가 정말 학생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고 있느냐”고 묻고 있다. 다섯 달 사이에 동급생 두 명의 죽음을 맞이한 ㄷ중학교 학생들은 그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한 학교의 모습을 보며 제대로 슬퍼나 할 수 있었을까. 정혜신 정신과 전문의는 “사람은 공격을 받았을 때보다 내가 진심을 털어놓았는데 상대가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느낄 때 더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책은 학교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아이들의 감정을 외면하며 죽음을 방관해왔는지 증언한다.

학교폭력을 이해하려면 학교라는 큰 건물, 1000명 이상의 아이들을 오랜 시간 모아두는 공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학교가 폭력을 막아주거나 아이들의 폭력성을 제어해주리라 기대하지만 실은 아이들의 일상을 강력하게 묶어두는 학교가 폭력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이계삼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초중고등학교 시스템의 핵심은 규제와 제재이고 학교는 그 자체로서 배움의 공간도 아니며 인권의 공간도 아닌 오직 ‘미성숙함’이라는 이름으로 한 인간을 학생으로 분류하고 이들을 통제하는 수용소”(정용주 백석초등학교 교사)라고 말한다. 한 해에 300명 이상이 자살을 하고 6만명 이상이 떠나는 공간(진냥 대구학생인권연대 활동가)이기도 하다.

폭력을 제어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학교가
아이들의 일상을 통제하며
폭력의 숙주 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것은
가학적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의 내면과
그러한 내면을 만들어낸
학교와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다

학생들은 매일 아침 교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긴장한다. 교문 앞에 일렬로 늘어선 학생부장과 선도부원들의 시선이 자신의 몸을 훑어 내려간다. 명찰을 바로 찼는지 교복을 제대로 입었는지, 잘못이 없어도 두려운 순간이다.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일기장을 검사받고 선생님의 말 한마디면 어떤 심부름도 해야 한다. ‘정부-교육부-교육청-교장-교사’의 수직적 위계, 교사와 학생의 비민주적 관계는 학생들에게 ‘권력의 힘’이란 무엇인지 피부로 느끼게 해준다.

지난해 교육과학기술부가 벌인 ‘일진 색출’ 작업을 보면 교육 시스템 안에서 폭력성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볼 수 있다. 지난해 2월 교과부는 학교폭력 근절 종합대책을 내놨다. 이 대책의 가장 큰 핵심은 ‘일진 색출’이었다. 교과부는 일진을 가려내겠다며 각 학교에 일진 명단을 경찰에 보고하라고 해 학교 현장의 반발을 샀다. 이와 별도로 교과부는 학교폭력 전수조사에 나서 비밀을 유지한다는 약속을 하고 전 학교에 학교폭력과 관련한 설문지를 내려보냈다. 학교별로 회수율에 큰 차이가 보였는데 결국 교과부의 정책을 충실히 이행해 회수율이 높았던 학교가 학교폭력 발생 건수가 많다고 보고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런 부실한 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보도됐고 학교 이름까지 공개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쯤 되자 어떤 학교는 학생들에게 재조사를 실시하며 “정말 그것이 학교폭력이었는지 다시 생각해보고 응답하라”고 지시했다니 웃지 못할 일이다.

이런 학교에서 아이들은 우정도 잃어간다. 학교 폭력서클에 몸담은 적이 있는 아이들은 “신입생이 들어오면 싸움 잘하고 잘생긴 애들, 인기 있는 애들을 뽑는다”며 “못사는 애들하고는 안 논다. 사는 아파트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못생기고 옷 후진 거 입는 아이들’은 왕따를 시킨다는 이야기를 아이들은 쉽게 하고 있었다. 서로 어느 아파트에 사느냐고 묻는 모습, 아이들은 어른들을 무섭게 닮아 있다. 책은 이를 ‘우정이 불가능한 학교’라고 설명한다.

“아이들에게서 원인을 찾는 것은 비겁하다”고 지은이들은 입을 모은다. 학교가 가해자인 학생 한 명에게 지난 수십년간 한국 교육에서 벌어졌던 모든 학교폭력의 죄를 다 덮어씌우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폭력을 학교라는 정상적인 공간에서 몇몇 병적이거나 악마적인 학생들이 저지르는 물리적인 폭력으로만 단정할 때 더 큰 폭력이 감춰진다.”(조영선 교사)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것은 일진이 아니라 남을 이기지 않고는 안정감을 얻지 못하고 짧은 쉬는 시간에 가학적인 놀이로 스트레스를 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의 내면과 그러한 내면을 만들어낸 학교와 사회의 폭력적인 구조”(조영선)다.

공동체가 가진 힘은 어떤 문제가 벌어졌을 때 이 공간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다는 신뢰에서부터 시작된다. 애도는 학교 구성원들에게 이 신뢰를 가지게 하는 출발점이자 강력한 계기가 된다. “자기의 고통을 공동체가 경청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하며 자기를 기억할 것이라는 생각, 죽음을 제대로 애도하는 것, 우리의 학교는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엄기호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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